봄맞이/ 법정
나는 금년에 봄을 세 번 맞이한 셈이다. 첫 번째 봄은 부겐빌리아가 불꽃처럼 피어오르던 태평양 연안의 캘리포니아에서였고, 두 번째 봄은 산수유를 시작으로 진달래와 산벚꽃과 철쭉이 눈부시도록 피어난 조계산에서였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이 두메산골의 오두막에서 무리지어 피어난 민들레와 진달래 꽃사태를 맞은 것이다.
올 봄은 내게 참으로 고마운 시절 인연을 안겨주었다. 순수하게 홀로 있는 시간을 마음껏 누릴 수 있게 해 주었다. 홀로 있을수록 함께 있다는 말씀이 진실임을 터득하였다. 홀로 있다는 것은, 어디에도 물들지 않고 순진무구하며 자유롭고 홀가분하고 부분이 아니라 전체로서 당당하게 있음을 뜻한다. 불일암에서 지낸 몇 년보다도 훨씬 신선하고 즐겁고 복된 나날을 지낼 수 있어 고마웠다.
살만큼 살다가 이 세상을 하직하게 될 때, 할 수 있다면 이런 오두막에서 이다음 생으로 옮아가고 싶다. 사람이 많이 꼬이는 절간에서는 마음 놓고 눈을 감을 수도 없다. 죽은 후의 치다꺼리는 또 얼마나 번거롭고 폐스러운가.
나는 이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두메산골의 오두막에서, 이다음 생에는 그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고 앞뒤가 훤칠하게 트인 진정한 자유인이 되고자 원을 세웠다. 그 원이 이루어지도록 오늘을 알차게 살아야겠다.
- 산문집 「봄 여름 가을 겨울」 (2001, 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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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느 것에도 메이지 않고 집착하지 않는 삶을 살다간 법정스님의 법구가 밤새 참나무 장작 속에서 환한 불꽃으로 타올라 몇 조각의 유골로 수습된 지도 7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스님은 입적을 앞두고 “내 이름으로 번거롭고 부질없는 검은 의식을 행하지 말고, 사리를 찾으려고 하지도 말며, 관과 수의를 마련하지 말고, 편리하고 이웃에 방해되지 않는 곳에서 지체 없이 평소 승복을 입은 상태로 다비하여 주기 바란다”는 말씀을 남겼다. 마지막까지 철저한 무소유의 실천이셨다. 스님 가신 날이 양력 2010년 3월11일이니 오늘이 기일이다.
스님께서는 추모의식 같은 것도 번잡하고 부질없는 짓이라며 손사레를 치시겠지만 중생들로서는 스님의 부재로 인한 헛헛함과 추모의 정념이 쉬 사그라지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이승과의 육신의 인연은 아름답게 마무리되었으나 스님이 남기신 소중한 말씀과 가르침은 두고두고 사람들의 가슴과 머리에서 되새김될 것이다. 당신께선 그동안 풀어 놓은 말빚을 다음 생에까지 가져가지 않겠다며 자신의 이름으로 출판한 모든 출판물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하셨지만 어느 집이고 스님의 책이 한두 권 꽂혀있지 않는 곳이 어디 있으랴.
이 글은 내 집에 있는 네 권의 법정스님 책 가운데 <봄 여름 가을 겨울>중 한 대목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봄맞이’란 제목은 다섯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의 ‘봄’에 속한 산문 가운데 하나로 아마 스님이 처음 미국이란 나라를 방문하고 돌아와 강원도 오두막에서 봄을 진하게 맞으면서 쓴 일기체 글인 것 같다. 이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스님이 얼마나 좋은 글과 말씀을 많이 남겼는가에 있지 않고 그 가르침을 새겨듣고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느냐에 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