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에 즈음하면/ 유안진

 

송년에 즈음하면

도리없이 인생이 느껴질 뿐입니다

지나온 일년이 한생애나 같아지고

울고 웃던 모두가

인생! 한마디로 느낌표일 뿐입니다

 

송년에 즈음하면

자꾸 작아질 뿐입니다

눈 감기고 귀 닫히고 오그라들고 쪼그라들어

모퉁이길 막돌맹이보다

초라한 본래의 내가 되고 맙니다

 

송년에 즈음하면

신이 느껴집니다

가장 초라해서 가장 고독한 가슴에는

마지막 낙조같이 출렁이는 감동으로

거룩하신 신의 이름이 절로 담겨집니다

 

송년에 즈음하면

갑자기 철이 들어 버립니다

일년치의 나이를 한꺼번에 다 먹어져

말소리는 나직나직 발걸음은 조심조심

저절로 철이 들어 늙을 수밖에 없습니다.

 

 

 

- 시집『월령가 쑥대머리』(문학사상사,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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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년에 즈음하면 갑자기 철이 들어 버립니다’ 올 한해 받은 우정과 사랑에 감사한 마음이 생깁니다. 한해의 잘못을 뉘우치며 겸손한 마음으로 길을 가게 해달라고 소망합니다. 보고 듣고 말할 것들이 너무도 많아 멀미나는 세상에서 마음을 계량하지 않고도 온유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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