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에게 말 걸기
鄭 木 日
오래 만에 K 씨 댁을 방문하였다. 실내엔 꽃꽂이 작품들이 네 개나 놓여 있었다. 그 중에서 수반에 50센티미터쯤이나 되는 실 갯버들을 꽂아 놓았다. 심장병을 앓고 있는 K 씨는 꽃꽂이를 하면서 안정을 찾았노라고 했다. 꽃들과 대화하는 것이 효과가 있는 모양이라고 미소를 지었다. 처음 꽃꽂이를 배울 때는 공간 속에 어떻게 선(線)의 아름다움을 살려놓느냐에 신경을 기울였다.
꽃꽂이를 하면서 조화의 미를 살리려면, 관계와 소통이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마음의 대화로써 화합을 이루어야 아름다움이 깃든다는 걸 알게 되었다. 꽃을 보고 있으면 거실 안, 화분과 꽃꽂이가 있는 곳엔 햇살이 더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햇살과 꽃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듯했다. 꽃들이 보기 좋아서 햇살 한 움큼씩이 더 오게 된 것이 아닐까 여겨졌다. 꽃이 있으면 햇살이 더 들어와 실내가 훨씬 환해진 듯했다.
K 씨는 꽃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꽃꽂이는 꽃과 대화 하는 것임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서로 간의 마음을 교류하면서 사랑을 속삭이는 것임을 느끼게 되었다.
그에게는 대학을 졸업한 딸이 있었다. 초등학생일 적부터 언니 집에서 공부하며 대학을 졸업하게 됐다. K 씨는 딸이 대학을 졸업하고 행복한 모습을 보는 것이 소망이었다. 학비를 보내며 경제적인 도움을 제공하기 위해 어려운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돌아온 딸은 뜻밖에도 마음이 황폐해진 우울증 환자였다. K 씨는 낙망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학비만 보내주면 되는 게 아니라는 걸 느꼈다. 꽃과 얘기하듯 딸과 대화하며 왜 자신이 햇살이 되지 못 하였을까 후회했다.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끼며 자신을 책망했다.
나는 근래에 화분 2개를 산 적이 있다. 매화 분재 한 분(盆)과 백리향(百里香) 화분이다. 매화는 꽃망울이 촛농처럼 방울방울 맺혀 있어서, 모습과 향기를 맡으며 산 것이고, 백리향은 백리까지 가는 향기가 아닐 지라도 실내엔 은은한 꽃향기가 퍼질 것이란 기대가 있어서이다.
서운하고 애석했다. 매화와 백리향은 두 달을 넘기지 못하고 시들어 죽고 말았다. 마음속으로 꽃향기를 흘려보내고 싶었는데, 사막처럼 황폐해진 듯 느껴졌다. K씨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꽃 보기만을 원했을 뿐, 꽃에게 말을 걸고 얘기를 나누지 않았다. 꽃들이 자신도 모르게 실내로 옮겨지고 누구와도 대화하지 못하자, 시들어 죽을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꽃들이 들판에 있었을 때는 바람, 구름, 새, 햇빛이 찾아와 마음을 나누고 얘기했을 터이다. 느닷없이 아파트의 폐쇄 공간에 놓이자 숨이 막혔을 것이다. 맑은 공기도 마실 수 없었고 하늘과 별도 볼 수 없었다. 아무도 눈길 한 번 제대로 주지 않았다. 마음은 삭막해지고 토양은 매 말라 갔다. 꽃들의 시듦과 죽음은 생명체가 살 수 없는 환경이었음을 모르고 꽃 피기만을 기다리던 이기심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꽃에게조차 말을 걸지 못하면 누구와 마음을 통할 것인가. 나는 삶을 영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유통 언어를 무수히 사용할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새 마음을 주고받는 말을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마음의 빗장을 닫아걸고 있었기에 누구에게로 다가가서 마음을 열어 보일 수가 없었던 게 아니었을까. 그렇기에 마음속으로 햇살과 물기가 닿지 않고 바람과 별들이 찾아들지 못했다. 어쩌면 마음으로 통하는 말을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나는 꽃 경매인 한 분을 알고 있다. 그가 경매인으로 나선 것은 1년도 안 돼 초보자나 다름없다. 새벽 5시이면 어김없이 일어나 꽃 경매장으로 향한다. 꽃과의 대면을 생각하면 잠을 설치며 가슴이 설렌다고 했다. 이른 아침에 수많은 꽃들을 바라보는 광경만도 삶을 환희로 몰아넣는다고 했다. 어느 식물이든 일생을 통한 최선의 경지와 공을 들여서 꽃을 피운다. 꽃들은 저마다의 모습과 빛깔과 향기를 지니고 있다. 꽃들마다 개성적인 모양, 빛깔, 향기를 내는 미(美)의 완성을 먼저 볼 수 있다는 것! 갓 핀 싱그러운 꽃들을 골라서 고객에게 전할 수 있다는 것에 기쁨이 벅차올랐다. 꽃을 산 사람들은 아름다움과 행복감을 느끼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꽃을 선물할 것이다. 초보 꽃 경매인은 제일 먼저 경매장에 가서 형형색색의 꽃들에게 인사를 나누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계절마다 색다른 꽃들의 이름을 부르며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가장 행복한 사람이란 걸 느꼈다.
편지를 받고 싶으면 자신이 먼저 편지를 써야 한다. 선물을 받고 싶으면 자신이 먼저 선물을 하여야 한다. 친구를 얻고 싶으면 자신이 먼저 친구가 돼주어야 하는 것을 망각하기 쉽다. 꽃을 피우고 싶으면 먼저 마음을 열어 대화하고 정성을 쏟아야 한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꽃을 피우려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여야만 인간관계도 꽃을 피우게 된다는 걸 알 듯하다. 나도 이제 화분의 꽃이 시들지 않도록 온전하게 잘 키워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