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월쯤 샌프란시스코 약간 남쪽에 위치한 산 마테오에 살고 있는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재작년 그러니까 2018년 10월달에 딸이 딸을 낳은 뒤 3개월이 지난 무렵이었다.
딸은 다짜고짜 출근을 해야 되니까 엄마나 아빠 중에 한 분이라도 와서 자기 딸을 봐주어야 한단다.
갑자기 받은 부탁(명령에 가까운)이라 황당하기도 했지만, 많은 걱정이 몰려와 급히 가족 회의가 열렸다.
정식으로 열리는 가족회의 같은 없었지만 워낙 급한 상황인지라 아들 내외와 옆 동네에 살고 있는 처제 내외가 함께 모여 상의를 해 본 것이다.
우리는 버지니아에 살고 있다.
샌프란시스코까지 갈려면 비행기를 타고 가도 대 여섯시간이 걸리는 거리다.
무슨 일이 발생하면 금방 다녀 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기 때문에 걱정이 많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내는 하던 일이 좀 있었고, 나는 그저 컴퓨터 앞에서 낙서를 하거나 바둑 두는 일 외에는 하는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내가 가기로 결정했다.
"형부가 어떻게 아기를 봐? 아기 보는 일이 그렇게 쉬운 일인 줄 알아?" 말도 안된다는 듯이 처제는 열을 올리며 반대했지만 상황은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손녀 딸 바보의 시간이 시작되었다.(처음엔 이글 제목을 '손녀 딸 바보'라고 했다)
워낙 착하고 예쁜 아이라 그런지 별로 힘든 줄 모르겠으나, 내가 딸 집에 도착하니 온통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다.
"아빠! 카메라 비치는 곳에서만 아기 보세요." 자기 딸이 보고 싶어서 설치했다고는 했으나 내가 영 못 미더워서 그랬을 것이다. 그것이 오히려 나에게는 더 힘들었다. 그래도 둘 다 내 새끼라는 생각때문인지 손녀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온갖 재롱을 다부리면서도 왠지 행복감이 들었다. 사람들은 손자 손녀 재롱 덕분에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마무리 삶이 즐겁다고 말하지만, 내 생각에는 손자 손녀들이 할아버지 할머니의 재롱을 보고 자라는 것 같았다.
작년 5월말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던 친구가 은퇴를 했다며 미국에 놀러왔다.
나도 마침 휴가도 즐길 겸 함께 '옐로우 스톤' 국립 공원에 함께 갔었다.
아기를 띠로 앞가슴에 안은 채 집앞에 마중나온 나를 친구가 한심한 듯이 바라보았다.
"요즘 시간이 많이 나면 그동안 못했던 취미 생활을 해봐."
생리학이 전공인 그는 늘 시골에서 작은 텃밭이라도 일구며 사는게 취미라고 말했었다.
"미국은 땅도 넓으니까, 한적한 곳에 마당이 넓은 집을 사서 채소도 가꾸고 그래봐. 무척 재미있어. 잘 모르면 내가 자주 놀러와서 가르쳐 줄께.^^" 내 처지가 영 못 마땅한 듯이 자못 심각하게 제안했다.
"그래? 그럼 나.... 아기 보는 걸 취미로 삼아 볼까? 하하, 수석보다도 귀중하고 꽃보다 예쁘니까, 이걸 취미생활로 해도 괜찮겠는데....." 우리는 그냥 웃고 말았다.
친구는 못내 아쉬워 한마디 더 붙인다.
"요새 한국은 아들을 딸보다 더 선호하는 경향이 생기고 있어." 의외였다. 딸을 낳으면 '금메달', 아들을낳으면 '목메달' 이다 라고 하는 소리는 들어 보았지만, 요즘 세상에 아들을 더 선호한다니 믿기지 않았다.
"왜?"
"응~, 그건 아들은 낳아서 결혼시키면 끝이지만, 딸은 평생 모시고 살아야 해서 그렇다네.^^"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너도 자식 결혼시켜 손주들 봐 봐라." 나는 속으로 혼자 속삭이며 그 상황을 위로했다.
요즘 딸은 몹시 바쁘다. 회사일도 일이지만, 아빠가 편하게 지낼 수 있는 방이 있는 집으로 옮겨야 한다고 부동산 사이트를 뒤지느라 그렇다.
'평생 같이 살자는 뜻인가?'
지금 버지니아에 사는 친지들 가운데 내 소문이 자자하다고 한다. 칭찬인지 비아냥인지 잘 모르겠지만, '할아버지가 혼자 손녀를 키우고 있다니 참 대단하다.' 고.....
암튼 나는 일년을 훌쩍 넘긴 지금 어려운 일을 해내고 있다고 자만하며 자칭 개선 장군(?) 처럼 딸에게 대접 받으며 살고 있다.
웃으며 이글을 쓰고 있는데,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집에서 일하고 있는 딸이 급하게 부른다.
"아빠! 지민이 응가 했어요."
손녀 키우는 할아버지. 쉽지 않은 중책을 맡으셨습니다.
얼마나 자상하고 얼마나 부지런해야하는 일인지. 한편 또 얼마나 행복하고 보람된 일인지. 알 것 같습니다.
틈틈히 글까지 쓰는 그 성실에 박수를 보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