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약을 짠다. 이를 닦으며 광주를 생각한다. 치약을 눈가에 바르고 금남로 거리를 뛰어가던 그날. 40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그 때의 장면들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5월 18일 아침 10시경, 시내 분위기도 살필 겸 평소 다니던 금남로 모 다방에 나갔다. 소문이 흉흉했다. 전날 공수부대원의 과격한 시위 진압으로 수많은 학생이 다치고 시민들도 무차별 폭행당했단다. 임신부가 계엄군에게 살해되었다는 섬뜩한 얘기도 돌았지만 유언비어려니 싶었다. 차 한 잔을 놓고 금남로를 바라보았다.

거리는 통행이 금지되고 군 트럭 옆에 학생들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갑자기 학생 대여섯 명이 다방으로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주방장이 학생들을 숨겨주었다. 곧바로 공수부대원들이 쫓아 들어왔다. 그들은 경찰과는 수준이 달랐다. 숨어있는 학생들을 끌어내 곤봉으로 가차 없이 머리를 후려갈겼다. 학생들이 피를 쏟으며 마루바닥에 쓰러졌다. 실신한 아이들을 질질 끌고 나갔다. 살기가 등등했다. 한 공수부대원이 앉아 있던 나를 한 번 쓰윽 훑어보더니, 그냥 지나갔다. 오싹 소름이 돋았다. 지금 생각해봐도 아찔한 순간이었다.

80년 5월, 광주는 깜깜한 섬이었다. 전화도 통신도 끊긴 고도였다. 분수대는 타오르는 한 자루 촛불, 세상이 내 팽개친 도시의 펄떡이는 한 줌 심장이었다. 사람들은 도청 앞 광장으로 밀물처럼 모여들었다. 수 만 명 시민이 분수대를 둘러섰다. 분수가 멈췄다. 수 만개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정적이 흘렀다. 50대 아주머니가 분수대 위에 올라 공수부대원 곤봉에 맞아 죽은 자식의 죽음을 오열했다. 가정주부 학생 농민 등 차례로 올라와 몸소 겪은 공수부대의 만행을 폭로했다. 사람들은 치를 떨었다.
 

한 시민이 외쳤다. 신문은 우리를 폭도라고 부릅니다. 수많은 사람이 죽고 다친 사실을 TV는 철저히 외면하고,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를 방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게 말이 됩니까. 한 청년이 절규했다 “광주를 살립시다, 빛 고을 광주를 살려냅시다!” 함성이 솟구쳤다. 복받치는 분노는 용암이 되어 펄펄 끓었다. 불길이 분수처럼 뿜어 올라 넘치고 넘쳐 금남로를 따라 흐르기 시작했다.

역사의 증인 금남로! ‘앞서서 가나니 산 자여 따르라’ ‘자유여, 민주여! 이 나라의 십자가 광주의 외침을 들어라’ 용암은 흐르고 넘쳐 온 도시로 번져갔다

목련꽃이 아스팔트 위에 뚝뚝 떨어지던 날. 우리는 눈물 콧물을 흘리며 금남로 거리를 뛰었다. 군인들이 불꽃놀이처럼 최루탄을 쏘아댔다. 시민들이 상점 앞에 치약을 쌓아놓고, 물통에 물을 담아놓았다. 치약을 짜서 눈 밑에 발랐지만 눈은 맵고 재채기는 그치지 않았다. 자욱한 연기를 뚫고 청춘들은 가슴에 가슴을 맞대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밤은 길고 새벽은 멀고도 멀었다. 오월이 지나면서 대부분 유언비어는 사실로 밝혀졌고, TV방송국은 시민들에 의해 불타버렸다.

마흔한 번째 5.18을 맞았다. 5월은 어김없이 돌아오고, 나는 아침마다 치약을 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