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내 안의 보물을 찾는 일

정찬열 / 시인
정찬열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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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학기가 시작된다. 오래 전 이맘 때 일이다. 대학 3학년을 마치고 휴학계를 냈다. 일 년 동안 졸업까지의 학비와 생활비를 벌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결심은 야무지게 했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배낭을 메고 혼자서 무작정 여행을 떠났다. 강릉에 도착하여 마지막 떠나는 시외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고 보니 소금강 골짜기였다.

자고 일어났더니 온 세상이 눈에 갇혀 꼼짝 할 수가 없었다. 무릎까지 쌓인 눈을 헤치며 소금강 골짜기를 혼자서 한없이 걸어 올라갔다. 얼마나 걸었을까. 힘에 겨워 눈 위에 벌렁 누워버렸다. 찬바람이 골짜기를 휘돌아 갔다. 한참 후, 가만히 귀 기울이니 어디선가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누워있는 두꺼운 얼음장 밑으로 봄이 오는 소리였다. 눈이 쌓이고 모든 것이 얼어붙어 죽은 것 같지만 어디선가 생명이 흐르고 있었다.

무거운 눈을 견디다 못해 등뼈가 휘어진 나뭇가지 사이로 푸른 하늘이 보였다. 생각 하나가 머리를 쳤다. 벌떡 일어났다. 가자-아! 큰 소리로 외쳤다. 메아리가 골짜기를 울려 여기저기 눈발이 흩날렸다.

그 길로 서울로 돌아왔다.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그렇지만 돈을 모으는 일이 마음처럼 그렇게 되는 일이 아니었다. 5개월이 훌쩍 지났다. 답답했다. 졸업이 가물가물 멀어지고 있었다.
 
다급했다. 그럴수록 침착하자.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곰곰이 따져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길을 걸어가는데 ‘주산학원’ 간판이 눈에 띄었다. 저거다. 시골 초등학교에 가서 여름방학 동안 주산 가르치는 일을 해보자. 당시 주산교육이 붐을 이루고 있었지만 읍 단위 정도까지만 학원이 진출해 있었다. 주산 1급자격증을 가지고 있던 터라 방학 동안 아이들을 7급 정도 실력까지 가르쳐 낼 자신이 있었다.

당장 시골로 내려가 몇 학교 교장을 찾아갔다. 수강료는 학원의 절반, 방학 한 달 지도로 7급을 딸 수 있다니, 학교도 학부모도 대환영이었다. 그해 여름방학에 몇 개 초등학교를 순회하면서 아이들을 지도했다. 수강생이 많아 후배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한 달 동안 아이들의 주산 실력을 예정대로 올려놓았고, 나도 필요한 돈을 얻었다. 학교를 졸업했다.

하마터면 학교를 중도에 포기할 뻔 했던 그때 일을 회상하며 혼자서 웃음 짓는다. 인간이 자신을 제대로 아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내가 내 안의 나를 찾아내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생각해본다. 간절하면 보인다. 간절해야 보인다.

사람은 누구나 여러 개의 보물을 품고 있다. 내 안에 담겨있는 그것을 찾아내지 못하면, 숨겨있는 값진 능력을 발굴하여 사용하지 않으면 긁지 않은 복권에 그치고 만다. 갈고 닦지 않으면 빛을 볼 수가 없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9월. 책가방을 들고 교문을 들어서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