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일기장
유숙자
노인 문제가 날로 심각하게 대두 되고 있다. 그것이 어제오늘 드러난 새삼스런 일은 아니나 근자에 자녀가 있음에도 외롭게 살다가 숨진 지 며칠이 지난 후 발견된 한 할머니의 죽음을 보며 다시 한 번 노인 문제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노인 아파트에 계신 분들은 이미 연세가 많은 분이다. 부모가 노인 아파트에 계신다면 적어도 2, 3일에 한 번씩 짧게나마 안부를 여쭈어야 할 것이다. 예전 우리나라에서는 ‘나이 드신 부모님을 두고 10리 밖에서 살지 말라’고 효에 근본을 둔 말도 있었다.
주로 한인타운에 거주하는 노인들과 자녀는 지역적으로 떨어져 있어 자주 찾아뵙지 못한다 해도 안부만큼은 수시로 전했어야 했다. 늙어보지 않고는 나이 든 사람의 외로움을 모를 것이라는 말이 이 할머니의 죽음을 통해서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사설 양로원에 계신 노인들을 몇 년간 지속해서 방문한 적이 있었다. 매달 찾아뵈었으나 단 한 차례도 우리가 방문하는 때에 그분들의 자녀와 맞닥뜨린 적이 없었다. 자녀가 찾아오지 않는다. 정부에서 노인들에게 나오는 생활 보조금이 양로원으로 자동 이체되기에 일상생활에는 문제가 없으나 노인들이 그리운 것은 피붙이들이다. 자녀가 보고 싶고 손주가 보고 싶어 눈이 짓무른다. 그러면서도 노인들은 한결같이 자신의 자녀가 효자 효녀라고 칭찬한다. 다만 생업이 바빠 찾아오지 못할 뿐이라고 스스로 최면을 건다. 1년에 한 번도 찾아오지 않는 자녀라 할지라도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 애쓴다.
내 친정어머니는 84세에 돌아가셨다. 그때까지 정신이 젊은이 못지않게 또렷하셨으나 이따금 전에 하셨던 말씀을 처음 하시는 양 반복하셨다. 내가 어머니를 뵈러 서울을 방문할 때면 그 증상이 더 심하셨다. 모처럼 외국에서 딸이 왔으니 신이 나신 거다. 우리가 자랄 때 이야기를 재미있게 해주신다. 형제들이 약속했다. 언제나 처음 듣는 것처럼 들어 드리자고.
어느 날 아침에 하신 말씀을 낮에 또 하시자 참다못한 언니가 어머니 말씀 끝에 ‘한 번만 더 들으면 백 번’ 하고 일어났다. 그때 어머니 표정이 민망 반, 익살 반이셨다.
“너희가 하도 재미있게 들으니 엄마가 신이 난거지.” 우리는 모두 손뼉을 치며 웃었다. 어머니는 재치있는 분이셨다. 아시면서 반복하셨는지 아니면 무안하셔서 임기응변하셨는지는 모르겠으나 외로우셔, 관심을 끌려고 그러시는 것만은 틀림없었다. 그때 젊었던 우리 형제는 늙어보지 않았기에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여기 한 시인이 아버님의 고독한 노년을 헤아려 보는 회오의 마음이 있다.
‘아버님 돌아가신 후 남기신 일기장 한 권을 들고 왔다. 모년 모일 ‘종일 본가’.(終日 本家) ‘종일 본가’ 가 하루 온종일 집에만 계셨다는 이야기다. 이 ‘종일 본가’ 가 전체의 팔 할이 훨씬 넘는 일기장을 뒤적이며 해 저문 저녁 침침한 눈으로 돋보기를 끼시고 그날도 어제처럼 ‘종일 본가’를 쓰셨을 아버님의 고독한 노년을 생각한다. 나는 오늘 일부러 ‘종일 본가’를 해보며 일기장의 빈칸에 이런 글귀를 채워 넣던 아버님의 그 말할 수 없이 적적하던 심정을 혼자 곰곰이 헤아려보는 것이다.’
유한한 삶을 살고 가는 인생이기에 부모님 살아 계실 때에 효도해야 함을 잘 알면서도 늘 내 곁에 계실 것 같아서, 오래도록 사실 것만 같아서 무심해지기 쉬운 게 효도이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어른들이 본을 보여야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웃어른을 섬기게 될 것이다. 효심은 샘물 같은 것이어서 물의 근원이 마른 곳에선 절대 솟아나지 않는다. 내면에서 은은히 우러나오는 샘물 같은 정만이 인간의 근원적인 목마름을 풀 수 있는 가족 간의 사랑이고 향기일 것이다. 따뜻한 말 한마디, 넉넉한 사랑의 마음을 전할 때 우리의 삶이 윤택해지고 보람과 인정을 맛보게 된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이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첫 번째 계명이자 살아가며 반드시 지켜야 할 인간의 도리이다. 가시고 난 다음의 후회는 사후 약방문이다. 살아 계실 때 하는 효도가 진정 자식 된 도리일 것이다.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