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유숙자

토요일 이른 아침, 손자 윌리엄의 전화를 받았다.

‘하이 할머니, 굳모닝’.

‘할머니, 눈이 오는 꿈을 꾸었어요. 어젯밤에.

샌타바바라에 눈이 오려면 아직 멀었는데 꿈에 본 눈도 되나요? 눈 꿈을 꾼 건 처음이니까 첫눈이 아닌가요? 아빠는 안 된다는데요. 진짜로 내리는 첫눈을 봐야 한다고.’ 잔뜩 흥분한 어조로 보아 ‘안돼’하면 금방 울어버릴 것 같다.

‘윌리엄, 되고말고. 처음 본 눈은 첫눈이니까 꿈에 본 눈도 되지. 할머니가 다음 주말에 갈게. 그때 네가 봐 두었다는 바이크를 사러 가자.’

’고맙습니다. 할머니.’ 윌리엄의 목소리가 새가 되어 날아갔다.

 

윌리엄은 작은아들이 입양한 흑인 손자다. 올해 7살이 되었는데 발육이 빨라 또래 아이보다 크다. 축구를 좋아하고 자전거도 잘 탄다. 일찍이 아빠가 카메라 다루는 법을 가르쳐 주어 사진 찍는 솜씨가 남다르다.

윌리엄이 4살 되었을 때 다시 백인 아기 빅토리아를 입양했다. 두 아이 모두 부모가 있는데 다만 기를 능력이 없어 출산 전부터 입양기관에 의뢰했단다. 윌리엄도 빅토리아도 출산 시 아들 내외가 탯줄을 잘랐다. 갓 태어난 아기가 아들 품에 안겼을 때 여린 심장의 박동이 전해져 눈물이 나더라 했다.

 

미국 내에서 신생아 입양이 무척 어려워 첫아기 윌리엄 때는 5년이 걸렸다. 입양 시 적지 않은 금액을 입양기관에 지급해야 한다. 아이들이 성년이 되기 전까지 입양기관과 긴밀한 관계하에 있는 탓이다. 입양아를 키우며 애로사항을 서로 나누며 도움을 주고받는다.

 

지난 몇 달은 작은아들 집에 머문 시간이 많았다. 봄부터 빅토리아가 프리스쿨을 다니게 되어 외할머니와 격주로 손녀의 등 하굣길을 도와주었다. 집에서 샌타바바라까지 편도 160km의 거리가 멀게 생각되지 않은 행복한 작업이었다. 잠시나마 손녀를 돌볼 수 있어 감사하고 행복했다.

 

샌타바바라에서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아이들이 보고 싶다. 언제 다시 그런 기회가 올 수 있을까. 천진한 아이들에게서 때 묻지 않은 세상을 보았다. 아들 내외의 교육도 한몫이겠지만, 아이들 성품이 착해서 곱게 잘 자랐다. 1년에 몇 번 가족 모임이 있을 때 보면 부산하지 않아 요즘 아이들 같지 않다고 칭찬해 주었는데 함께 지내는 동안에도 여전했다. 내 아들 며느리가 낳아도 이보다 더 만족스러울 수 없을 정도로 귀엽고 사랑스럽다.

 

윌리엄이 새 자전거가 갖고 싶다고 이따금 씩 투정했다. 내가 봐도 몸집보다 자전거가 작았으나 아들 내외는 못 들은척했다. 아들네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데도 아이들에게 철저하게 절약 정신을 가르친다.

 

내 소임을 마치고 샌타바바라를 떠나던 날 윌리엄에게 꿈을 심어 주었다. ‘첫눈 오는 날’ 할머니가 바이크를 사주겠다고. 오래전 첫눈을 기다리던 정아처럼 그 설렘과 기쁨을 윌리엄에게도 맛보게 해주고 싶었다. 약속한 지 한 달 만에 윌리엄이 꿈을 꾼 것이다. 지난번 며느리 전화에서 ‘눈이 빨리 오게 해달라고 윌리엄이 기도한다.’는 말을 들었다. 어린 마음에 얼마나 첫눈을 기다렸으면 그 기도가 꿈속을 찾아갔을까. 처음으로 눈 꿈을 꾸었으니 첫눈이 아니냐는 손자의 기발한 생각이 더없이 사랑스러웠다.

 

첫눈을 기다리던 7살 소녀 정아가 있었다. 영리하고 감성이 풍부해서 피아노 치는 솜씨가 탁월한 소녀였다. 그해 초겨울로 접어들자 정아는 눈을 몹시 기다렸다. 나를 만나기만 하면 눈이 언제쯤 올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정아야. 이제 곧 눈이 올 텐데 왜 그렇게 성화를 하니?

‘아빠가 ‘첫눈 오는 날’ 피아노 사준다고 약속했어요.’

정아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숨이 멎을 것 같이 감동했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전율과 같았다. 아! 얼마나 멋진 아빠인가. 돈이 생기면, 말을 잘 들어야 사준다는 것이 아니잖은가. 1960년대에는 대부분 경제 사정이 어려웠다. 당시로는 물량도 귀하고 엄청난 가격, 재산 목록에 들 수 있는 피아노를 순수하게 ‘첫눈 오는 날’로 약속하여 기다림을 키우게 한 그 아빠가 멋졌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저릿저릿한 가슴, 그날부터 나도 정아와 함께 첫눈을 기다렸다.

 

겨울은 첫눈과 함께 오는 것 같다. 첫눈이 내려야 비로소 겨울 맛이 난다. 첫눈은 기다림을 키우게 하고 마음을 설레게 한다. 아직 그 누구의 발길이 닿지 않은 희고 순결한 꽃잎을 보기 위해 밤잠을 설쳤던 이가 있는가. 은빛으로 덮인 세상 위를 걸을 때 뽀드득 부서지며 밟히는 눈의 촉감을 잊을 수 없다.

 

쏟아지는 눈을 맞으며 걷는다. 아! 이 기분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첫사랑 같은 굉장한 경험이 기다릴것 같은 설렘. 예전에 보았던 흑백 영화의 한 장면처럼 우연히 마주치게 되는 어떤 운명적 만남을 상상해 보기도 하고.

또 이런 날, 가로수가 눈꽃을 피우는 날이면 버릇처럼 발걸음이 옮겨지던 곳이 있었지. 고요가 신비처럼 감도는 비원. 늦가을 천지연을 향해 걷던 좁은 길은 단풍 색깔이 유난히 고와 즐겨 찾던 곳이나 겨울은 겨울대로 깊은 정적이 내려앉아 아늑하고 한가롭고 고즈넉한 뜨락.

 

나는 겨울이 좋다. 코끝에 감기는 찬바람이 상쾌하고 정신이 번쩍 들도록 볼을 때리는 찬 기운이 좋다. 눈 내음에 취해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곧잘 감정의 수위가 무너지기도 하고 노래가 되었다가 춤이 되었다가 마침내 눈이 되는, 현실감 없는 그런 내가 좋다. 꿈속에서만 머무는 아득함이 있어 좋다.

눈이 올 리 만무한 글렌데일 우거에서 나는 지금 첫눈을 꿈꾸며 기다린다.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