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초 광고녀
박진희
"어머, 너 아니니?" 요즘 팔자에도 없는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얼마 전 내가 일하고 있는 원격치료 (Telemedicine) 광고에 출연하게 됐는데, 그 영상을 본 지인둘이 확인 겸 인사차 연락을 많이 해온다. 난감한 것은 친구들이 답글을 보내올 때마다 어색한 모습을 반복해 보게 된다는 것이다. 광고에서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빨리 낫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하고 손을 흔든다. 젊고 매력이 넘치는 모델 대신에, 어설픈 모습의 내가 민망하기만 하다. 지금이 '코로나 시대의 미국'이 아니어도 이런 일이 있었을까. 아니라고 확신한다.
중년의 나이에 간호 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원격치료가 미래라는 것을 직감했고 졸업 후 그런 직장에서 일하게 되었다. 올해 코로나가 퍼지면서 일이 엄청나게 많아졌다. 응급실에 가지 않고도 경증, 중증, 그리고 코로나 증세를 가진 환자들에게 원격 방문과 진료가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처럼 쉽게 코로나 테스트를 받는 게 아니라, 우리가 환자의 증상에 따라 필요한지 아닌지를 결정하고 드라이브 스루 (Drive-Thru)로 검사를 받게 하는 일마저 맡게 되었다. 누구나 13세 이상이면 스마트폰 앱에 깔아 자신의 의료 정보를 넣고 예약하면, 비디오로 원격 방문이 언제든지 가능한 시스템이다. 누구나 편리한 것을 알면 바로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환자들은 침대에 누워서, 소파에 걸터앉아, 기침을 하거나 체온을 재어 보여주고, 아픈 곳이나 상처 난 곳을 보여준다. 이런 어려운 시국에 병원에 가지 못하는 이들을 도울 수 있는 이 일에, 난 사명감을 느낀다.
하지만 내 직업을 자랑스러워하는 것과 직장을 대표하는 얼굴이 되어 자신을 노출시키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다. 처음 마케팅 팀에서 광고 모델로 제안을 받았을 때 "무슨 소리야" 하면서 대꾸도 안 했다. 그러다 두번째 연락을 통해 나의 직속 상사가 추천했다는 말에 응하기로 했다. 한두 컷을 찍기 위해 촬영 팀은 오랜 시간을 보냈고, 얼굴이 빛에 반사되어 번쩍이지 않게 평소에 잘 하지도 않는 화장도 하고 방문한 환자와 말하듯이 연기도 했다. 줌 (Zoom)으로 추가 촬영도 했는데 역시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었다. 카메라 앞에 수시로 서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나 연예인이 아니라 다행이다.
왜 하필 내가 이 광고를 찍게 됐을까.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았지만 짐작하기 어렵지 않았다. 코로나바이러스가 특히 미국 사회의 가장 취약한 아킬레스건을 건드려 심각한 문제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그 와중에 아토피가 아주 심각하게 도진 것처럼 인종 문제가 부각되고 있다. 백인 경찰의 폭력적 진압으로 흑인 시민이 사망한 사전을 계기로 'Black lives matter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라는 슬로건은 모두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이 일을 계기로 흑인을 모델로 하는 광고가 늘어가는 느낌이 든다. 몸의 색깔이 다르다고 아픔의 강도가 다르고 질병의 취약성까지 커다란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환자 중에 대충 흑인이 35-40 퍼센트, 유색인종이 5 퍼센트, 나머지는 백인이 차지한다. 원격치료는 주로 몸값이 비싼 의사 대신에, Nurse Practitioner (전직 간호사)나 Physician's Assistant (간호사 경험 없음)가 맡아 하는데 안타깝게도 흑인이 2-3 퍼센트 정도밖에 안 된다. 우리 팀에서도 아직까지는 내가 유일한 유색인종이고 모두 백인이다. 흑인도 백인도 아니기 때문에 공평하고 객관적인 마케팅으로 홍보하는 모델로 선택됐다는 생각이 든다.
공들여 두 시간 넘게 찍은 광고 사진은 그런대로 봐줄 만하다. 그런데 현장감 있게 재택근무 하는 모습을 담아야 한다면서 갑자기 Zoom에서 30분간 정신없이 진행되었던 비디오 영상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눈화장은 짝짝이에 분명히 립스틱은 바른 줄 알았는데 입술은 푸르죽죽, 얼굴은 풍선 같고 무너진 목선, 목걸이 앞면은 뒤집혀 있고, 게다가 문장 중간에 숨마저 들이쉰다. 내가 미쳐! 엎질러진 물이니 어쩌겠는가. 6초 동안 사람들은 그것을 보면서 "동양 여자네. 아니 휴대폰으로 치료를 받는 세상이 오다니..." 그렇게 아주 잠시 생각하고 잊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내가 진료한 환자들은 날 기억한다. 한 흑인 환자는 갑자기 천식증상으로 숨을 못 쉴 지경이었지만 코로나가 무서워 응급실로 가지 못하고 원격치료로 목숨을 구했다는 내용의 글을 실었다. 참 고마운 사람이다. 그녀에게 감사하다는 답글을 달았다. 코로나 이전과 이후, 나와 나의 일, 그리고 미국 사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돌아볼 수 있는 증거로, 내 인생에 크나큰 사건이 된 것은 분명하다.
<한국산문 12월호,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