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틀담 성당의 흡혈귀
박진희
한 흡혈귀 형상의 조각물이 노틀담 성당을 지키고 있다. 머리 위엔 작은 원통모형의 긴 두개의 뿔, 뾰족한 코, 원숭이 보다 큰 눈과 입, 커다란 귀, 조소하는 듯 쑥 내민 혀, 턱을 괜 정교한 손과 기다란 손가락, 날렵해 보이는 몸매, 등에는 큰 두 개의 날개가 있다. 19세기 한 색맹의 예술가는 사람의 살과 피를 먹는 그로테스크한 ‘흡혈귀’라고 부르기도 하고 ‘욕망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만약 인간의 끔찍하고 더러운 욕망의 살과 피를 먹어치우는 창조물이라면 그는 착한 흡혈귀에 분명하다. 850년 된 파리의 노틀담 성당 앞 부분 맨 위에 위치한 양편 종탑에 오르기 바로 전에 있는 높은 층계의 가장자리마다 몸체 부분만 세워진 가고일 (gargoyles) 중의 하나로 그는 오른편에 1850년경에 첨가되었다. 그와 그의 친구들은 노틀담 성당에 사탄과 악령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지키는 파숫군이다.
고딕형식의 성당엔 성인의 팔보다 더 긴 곡선 모형으로 돌로 만들어진 가고일이 있다. 비가 왔을 때 마치 사람이 목을 가글하는 듯한 소리를 내며 지붕의 물이 몰려 내려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프랑스의 큰 도시마다 고딕형식의 노틀담 성당이 있고 가고일들은 목이 쭉 늘어난 동물과 악마 중간 형태로 대체로 흉측하게 생겼다. 그러나 자꾸 쳐다보면 ‘아, 처마의 낙수가 저 목구멍으로 흘러 나오는구나’ 란 상상을 반복하면 다행히 소름이 돋는 걸 막을 수 있다. 다른 도시의 노틀담 성당에서는 모두 가고일은 있지만 파리의 성당에 있는 흡혈귀와 그와 함께 악마의 영을 지키는 조각물을 보지 못했다. 땅에서 46미터 위에 위치해 있어 아래서는 그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지난 4월 15일 성당 지붕과 첨탑에 화재가 나기 전까지, 성당의 옆문으로 들어가서 8유로를 내면 석회암으로 만들어진 387개의 나선형 돌층계를 올라가면 비록 철창 울타리가 쳐져 있긴 했지만 그 흡혈귀와 친구들 옆과 뒷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루에 3-4만명의 여행객들이 성당 앞에서 혼이 빠진듯 정신없이 사진을 찍었지만 정작 흡혈귀와 친구들을 보고 종탑까지 올라오는 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힘겹게 거기까지 올라온 이들은 흡혈귀가 가장 친근하게 생겼다며 파리시내와 함께 신중하게 카메라에 담았다.
그 흡혈귀는 그저 조각물에 지나지 않을까. 아닐 것 같다. 세상을 관망하는 진지한 자세로 파리의 하늘 아래를 지키고 있다는 것은 크나큰 의무와 책임이 막중할 것으로 보인다. 그의 동그란 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센느 강, 반짝거리는 건물과 조각들, 박물관과 궁전들, 몽마르뜨 언덕, 그리고 오른쪽으로 에펠 탑이 들어온다. 그의 커다란 귀에는 프랑스 역사와 예술을 찬미하는 감탄사와 사랑하는 사람들이 속삭이는 여러 나라의 언어가 섞여 있고, 그가 퇴퇴하며 침들 튀기고 혀를 내두르며 조롱할 만한 더럽고 어이없는 말도 들릴 것이다. 파리의 맛나는 음식의 냄새가 그의 후각을 자극하지만 그 많은 사람들이 남기는 쓰레기를 본다면 구역질이 날 지경일 것이다. 세계 2차 대전에서 히틀러가 독일군과 와서 파리를 점령할 때처럼 참을 수 없이 화낼 만한 일들은 두개의 뿔로 수증기가 나가버리듯 빠져나가 감정조절이 가능할 것이다. 지난 봄, 노틀담 성당의 첨탑과 지붕이 불타는 9시간 동안 사람들이 모여 촛불을 밝혀 기도를 하고 노래를 부를 때 그는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그렇게 인간 세상과 깊게 이어져 있다.
여느 예술인들처럼 그를 만들어낸 가난한 조각가는 온몸에서 쏟아나오는 에너지를 손 끝으로 절제하고 다듬었으리라. 인생은 잠시 지나가는 여정이지만 예술은 한참일 거라며 하루하루를 벼텼을 것이다. 파리 노틀담 성당의 흡혈귀는 악마의 영을 쫓아내고 인간의 더럽고 추한 욕망을 먹어치우는 고된 일을 하며 얼마동안 세상을 지키며 견디고 있을지. 불타버린 지붕을 덮은 하얀 장막과 양쪽의 종탑에 둘러싼 흡혈귀와 그의 친구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나는 목을 있는 대로 빼고 성당 접근금지 구역 근처에서 오랫동안 그를 찾으려 한다. 파리 노틀담 성당의 복구를 위해 적어도 수십년 동안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자 나의 목구멍에서 그렁그렁 가글 소리가 세차게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