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치 아워
정오가 조금 넘은 시간에 피츠버그의 한 의료센터의 커피향이 가득한 직원 라운지에서 여유 있는 점심을 시작한다. 전자 레인지에 만두를 데우고 과일과 야채를 런치백에서 꺼내다가 문득 12층이나 한 병원에서 간호사로 있던 점심 시간이 떠올랐다.
수당도 나오지 않는 '런치 아워 (lunch hour)'가 30분간 있긴 있었는데, 늦게 먹는 음식은 자신의 자존감을 식어 빠지게 했다. 갑자기 의식을 잃는다거나 중태가 되는 환자들과 있다 보면 예민하고 긴급하게 움직여야한다. 그러니 당연한 일이니 제때에 먹는다는게 전혀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간호대학 학생 시절에 중환자실에서 한 간호사를 졸졸 따라다니며 임상 경험으로 회색깔의 딱딱해진 차가운 시체를 처음으로 만져 보았다. 금발의 젊고 아름다운 간호사인 레이첼은 사십 대의 백인 남자 환자가 마약 중독으로 합병증을 얻게 되어 엉덩이 중간 부위에 욕창이 생겨 며칠만에 패혈증 (Sepsis)에 걸려 죽었다고 태연하게 말했다. 레이첼은 남자 간호사인 크리스에게 도움을 요쳥하여 그 시체를 깨끗이 한 후에 큰 검은 비닐백에 넣는 작업을 함께 하면서 내게 그 욕창 부위를 자세히 보라고 했다.
키가 180센치는 되어보이고 겉으로 보기엔 별다른 점이 없었지만, 그의 몸을 돌리자 허리 중간 아래로 정말 큰 주먹만한 구멍이 꽤 깊어 몸 안쪽까지 얼마나 뚫려 있었는지 잘 보이지 않았다. 욕창의 박테리아가 근접한 등뼈로 옮아가 온몸에 퍼져 버린 것이다. 처음으로 시체를 만지는 것도 그렇고 욕창이 그처럼 빨리 진행된다는 사실에도 놀랐다. 난 구역질이 나는걸 의연한척 참았다. 곧 간호사가 될텐데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되기 때문이었다. 곧 시체실로 운반된 후에 레이첼과 크리스는 깔깔거리며 잡담을 하면서 맛있게 점심을 먹는 것이 아닌가. 갑자기 까뮈의 <이방인> 뫼르소가 어머니의 시체가 누워있는 관 앞에서 유유하고 담담하게 마시는 장면이 떠오르며 정신이 아뜩해졌다.
그 중환자실의 경험이 충격적이어서 중환자실과 일반 병동의 중간 단계인 신경/트라우마 스텝다운 (Step-down) 병동 간호사가 되어 9년동안 토끼처럼 뛰어다니기가 일쑤였다. 1번 방 환자가 적혈구 숫자가 7 단위로 떨어져서 수혈해야 하는데 환자가 그것을 허락하는 증명이 없다. 그러면 빨리 의사에게 알려야 하는데 담당의사가 누구인지 또 그의 번호를 알아낸다 해도 통화가 바로 안되는 경우가 많다. 그럼 수혈할 피를 바로 돌려보내야 한다. 모든 일이 잘 진행되어 수혈하게 되면 혹시나 몸에서 이상현상이 올지도 모르니 15분 만큼 세번 환자의 맥박, 체온, 혈압, 몸상태를 체크한다. 5번 방 환자가 발작 (seizure)을 일으키고 있는데 저혈당에서 올 수도 있으므로 당장 혈당을 체크해야 한다.그건 담당 간호보조사에게 부탁을 하고 발작 상황을 언제 얼마동안 어떤 상태로 어떻게 시작해서 어떤 모습으로 끝났는지 자세히 의사에게 보고하고 컴퓨터에 작성해야 한다. 4번방 환자가 200킬로가 넘는 거구가 꼼짝도 못해서 곧 CT를 찍으러 갈 시간에 맞춰 이동 침대에 네 명을 동원해서 옮겨야 한다. 그 환자가 돌아오면 다시 4명에게 부탁해서 침대로 옮기는 일을 몇번하게 되면 우리는 허리도 다리도 휘청거렸다.
아침 7시에 환자 네 명을 분담 받으면 대체로 2시 안에 런치 아워가 가능했고 다섯 명이면 거의 불가능했다. 그들의 가족,의사, 사회복지사, 재활담당자, 레지던트 팀 등등과 대화를 하는 시간이 무척 중요했다. 그리고 모든 환자 기록을 꼼꼼히 컴퓨터로 작성하다 보면 오후 두시 경에 겨우 앉아 물이라도 들이킬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시간 관리에 대한 갈등을, 채우지 못하는 갈증처럼 못마땅하게 삼켜버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5년전 부터 두 간호사가 조를 짜서 한 간호사가 점심을 하는 동안 그녀가 맡은 환자들까지 번갈아 맡으면서 점심시간으로 30분을 가지라는 병원의 강력한 정책이 실시되었다. 밤 근무인 경우, 대체로 자정이 넘은 시간에 먹을 때도 런치 아워라고 한다. 낮 근무와 밤 근무가 12시간씩 나뉘는데 점심 포함해서 12시간 반이 정식으로 일하는 시간이다. 내가 있던 병동에는 낮과 밤 근무를 반반씩 하라는 원칙 뿐 아니라 다른 원칙들을 다 따르기 힘들고 못마땅하다며 간호사들이 차츰 떠나갔다.
밤에 일하는 경우, 대부분의 간호사들은 잠이 들지 않기 위해서 커피나 카페인이 가득한 음료수를 내내 마신다거나, 칼로리가 높은 기름진 음식으로 자신들을 위로라도 하는냥 혀의 감각을 아주 잠시라도 즐기려 든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미국 간호사들은 한국 간호사들 보다 거의 두 배 이상의 육중한 몸을 가졌다. 낮과 밤이 수시로 바뀌는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 찾는게 초콜릿이고, 환자나 동료들에 대한 잡담을 화두로 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20번 방, 오십 대 환자가 싸이코 같더니 이십 대 여자친구의 칼에 찔려 입원했는데 이번이 세번째로 찔렸고 세 번 모두 여자가 다르다는 사실에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5번 방 사람은 발작을 간헐적으로 가짜로 일으킨다는데 아무래도 정신병 치료가 필요한 이유가 주의의 관심을 갖고 싶어해서 생기는 현상이라 안타깝다는 얘기였다. 7번 방 환자는 사람이 무척 선해 보이는데 교통사고로 그 환자가 차로 친 사람이 사망한 것도 모르고 있는데 치료가 끝나면 경찰이 와서 데려가기로 되어 있단다. 우리는 치료해주는게 의무이니까 그 이상은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 오갔다. 얼마 전부터 안 보이는 간호사, 알렉싸는 환자들의 통증약을 가로채 오다가 들켜서 강제로 쫓겨났는데 초내기가 정말 기막힌 일을 저질렀다면서 불쌍한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낮에는 너무 바빠 이런 얘기를 나눌 겨를이 없지만 밤 근무에는 간호사 라운지에 얼마간 모여서 컴퓨터로 환자 기록을 하면서 가끔씩 뒷담화를 즐긴다. 그러나 환자들과 우리의 사적인 얘기는 런치 아워가 끝나면 음식을 싼 종이처럼 바스락 거리다 쓰레기통 속으로 버려졌다.
나에게 런치 아워는 죽음이 코 앞인 환자들을 돌보면서 생기는 혼잡함과 혼동상태를 바로잡는 시간이기도 했다. 간혹 정신이 혼미해진 환자들이 간호사나 간호보조사들에게 욕을 하거나, 주먹을 날리고, 할퀴고 발로 차는 경우를 바로바로 용서하고 잊어야만 살아갈 수 있었다. 병동을 나서는 순간까지 우리는 건전지가 든 것 처럼 환자들을 위로하고 돌보기 위해 때에 따라서는 로봇처럼 움직이므로 30분의 런치 아워 동안 서둘러 자신을 치료하고, 남은 시간을 위해 충전해야만 했다.
12시가 넘으면 환자들이 화장실에 가겠다, 의사와 반드시 할 얘기가 있으니 몇분 안으로 데려와 달라, 고통이 너무 심해 견딜 수 없으니 진통제를 지금 당장 갖다 달라는 등 쉴 새 없이 벨을 눌러대서 몸이 반사적으로 그들에게로 향하는 시간이었다.
이제는 원격 의료(Telemedicine)로 화상 (Video-visit)으로나 전자 방문(Electronic-visit)으로 환자를 치료하는 직장에서 일년이 넘게 런치 아워를 맞고 있다. 아무런 생각없이 유유하고 담담한 이 시간이 무척이나 적막하고 오랫동안 어색하기만 하다. 난 어느새 데운 음식이 식는 줄도 모르고 서성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