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지금
박진희
“마른 기침이 나고 가슴이 불타는 느낌이에요. 온몸이 쑤시고 아무리 자도 피곤해요.” 화면너머로 보이는 건장하고 파란 눈의 청년이 고통을 호소한다. “두통이 심하고 온몸이 물 속에 잠긴 것 같고 열이 내리지 않아요.” 몇개의 주를 넘어 다니며 대형 약국 체인에 약을 배달한다는 젊은 트럭 운전사는 누운 채 머리를 들지도 못한다. “어제부터 갑자기 냄새를 못 맡겠고 맛이 느껴지지 않아요. 손에도 벌겋게 뭐가 나기 시작했어요” 당뇨병과 합병증이 있는 50대 남자는 오랜 흡연자이기도 하다. “갑자기 피가 보이는 설사를 하루 종일 했고 구역질이 나요. 열은 그다지 심하지 않은데 기침이 나고 가만히 있어도 숨이 차요.” 이제 막 소년 티를 벗은 금발의 청년의 얼굴은 창백하다. “열이 나고 감기 기운이 있는데 혹시나 코로나 바이러스가 다른 환자들에게 옮기면 안되니까…” 푸석푸석한 얼굴의 이 20대 여자는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레지던트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노출된 사람들의 온라인 진단 요청이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온다. 나는 현재 미국에서 NP (Nurse Practitioner: 간호사 경험을 가진 석사 소지자로 국가고시를 거쳐 의사처럼 환자를 진단하고 처방해줌)로 일하고 있다. 화상으로 환자를 진료하는 원격 의료 (Telemedicine) 시스템을 통해 일하는데 3월 두번째 주부터 감당하기 벅찰 정도로 바빠졌다. 많은 이들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의심하며 코로나 (COVID 19) 검사를 받기 원하지만 테스트 키트 등의 물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증상이 확실한 환자에게만 진단서를 주라는 지침을 따르고 있다. 감기, 독감, 알레르기 현상, 부비동염, 기관지염 등을 가진 사람들과 구별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요 요인은 물량 부족이었다. 짧은 시간동안 비디오로 얼굴을 보면서 증세를 듣고 진단을 내리고 약을 처방해서 약국으로 보내는 일은 어렵지 않지만 시간이 갈수록 코로나 바이러스의 증상으로 알려진 이외에 새롭고 다양한 증상을 보이는 환자들이 생겨서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코로나 바이러스 검사 없이 의심 증상만으로 진단하기 어렵기도 하고, 아직 확실한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에 무엇보다 자가격리를 크게 강조하고 있다.
코로나 감염이 의심되어 진단서를 받아 정해준 장소와 시간에 맞춰 한국에서 도입한 ‘드라이브 스루’(Drive-Thru) 방식으로 검사를 받는다 해도 결과가 나오기까지 5일 걸리던 것이 수두룩하게 밀려 일주일도 더 걸린다고 한다. 병원에서 하는 속성 검사는 아직까지는 의료인과 중환자들만 하고 있다. 아무 문제없으니 걱정 말라고 큰소리치던 트럼프 대통령은 반복해서 대중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언급으로 거센 여론의 반박을 받아 요즘 더욱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검사 결과가 몇 분 안에 나온다는 기기를 들고 나와 ‘미국의 힘’을 과시하기도 했지만 정작 언제쯤 의료 현장에 보급될지는 미지수다.
몇 주 전 까지만 해도 코로나 바이러스를 두려워 하는 미국사람은 거의 없었다. 중국에서 박쥐 때문에 유행하게 된 독감이라며, 강 건너 불 구경하듯 봤던 ‘남의 일’ 이었을 뿐이다. 사스 (SARS)나 메르스 (MERS)를 치르지 않아 안전불감증에 젖어왔었다. 코로나에 감염된 사람들이 사방에서 미국으로 옮아오면서 역사상에 없던 쓰나미 같은 재해로 인해 대혼돈에 빠지게 되었다. 응급실이 없는 작은 병원은 문을 닫았고 대규모 병원도 암 같은 중병의 치료나 예약된 수술은 취소되었다. 또 주치의가 있는 의무실을 닫고 온라인으로만 진료를 하게 됐다. 원격 진료를 감당할 인력이 부족해지면서, 임시방편으로 주치의, 가정의, 내과의, NP등으로 비상 원격 의료팀을 구성해 온라인으로 하루에 수백명의 케이스를 밤낮으로 가동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증의 질병을 앓는 환자들의 케이스가 넘쳐나는 코로나 환자들로 인해 가볍게 처리될 위험도 생겨나고 있다.
많은 의료기관이 물품 부족을 이유로 문을 닫았다. 그간 병원에서 한번 쓰고 마구 버리던 가운, 장갑, 마스크를 이젠 없어서 못쓴다. 개인 보호 장비를 갖추지 못하면 무기도 없이 전쟁에 나가는 거와 마찬가지다. 기본적인 방어망이 뚫리면서 최전방에서 분투하던 응급실 의사와 간호사들이 죽고 있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의료인들 뿐 아니라 그들이 돌보는 환자들의 생명도 촌각에 달려있다. 인공호흡장치가 부족해 죽어가는 환자는 포기하고 살 가능성이 있는 환자들에게만 준다는 소문도 있다.
자가격리 기간이14일에서 30일로 연장되고, 그 이상이 될 가능성이 확연히 높아지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취약한 면역력이 약한 사람들은 차치하고, 비만증, 고혈압, 당뇨병 환자가 전 국민의 34%에 이르는 미국은 바이러스와 전쟁을 어떻게 치룰 것인지 매우 착잡하다. 이제 겨우 시작인데… 코로나 검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는 사람들, 뚜렷한 증상이 없어서 검사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잠정적인 감염환자로 본다면, 그 숫자는 수백만을 웃돌게 될 것이다. 인공호흡장치와 개인보호장비 부족으로 치사율이 수치스럽도록 높아지고 있다.
세계 최강 국가라고 자부하던 미국이 전세계적 재난 앞에서 최악으로 바닥까지 떨어지는 무력함에 어이가 없다.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아마도 말도 많은 의료보험의 유무와 허점 뿐 아니라 ‘기본’의 중요성을 잊고 자만심과 편견, 안일함으로 살아 온 까닭은 아닐까. 겸손하게 생명을 존중하는 진실함, 국민을 위한 안정적이고 기본적인 시스템, 서로를 배려하는 예의를 지켜 이 시대의 비극을 딛고 각자의 일상으로 ‘함께’ 무사히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더 나아가 자가격리의 시기를 거쳐 ‘기본’을 복구하고 지금 보다 나은 모습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
누군가 “Going back to the basics strengthens your foundation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은 당신의 기초를 강하게 한다).”고 말했다. 나에게 묻는다. “기본은 갖추고 사니?”
<한국산문 5월호, 2020>
어려운 시기에 의료진으로 애쓰고 계신 많은 분을 기억합니다.
박진희 선생님께서도 각별히 건강에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어서 지나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