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생각] 잃어버린 시간

2026-10-25 (일) 23: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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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놓쳤다. 뒤엉킨 생각들이 넓은 호수 위를 달린다. 한여름의 뜨거웠던 햇볕과 뱃전을 부딪치던 물소리, 바람 소리가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오른다.

다 늦은 저녁, 우연히 보게 된 사진 몇 장 때문이다. 그곳은 내가 잘 알던 곳이었다. 그러나 너무나 낯선 곳이 되었다.

몇 개의 낚시 좌대가 물 위에 낭만을 부르고, 매운탕을 끓여주던 아줌마가 소박하게 웃어주던 곳, 눈에 거칠 것 없는 적막한 호수가 마음을 보듬어 주던 곳이었다.

현대식으로 탈바꿈한 예당호의 모습은 놀라울 만큼 화려했다. 그러나 시골 마을에 찾아든 문명이 반가우면서도, 이 풍경 뒤에 따라오는 상실감은 무슨 일인가.

사진 속 출렁다리를 바라본다. 평지를 걸어도 어지러운 세상에 요즘 사람들은 그 흔들림마저도 재미로 바꿔놓았다.

그 옛날, 이 다리 밑에서 팔뚝이 울퉁불퉁한 젊은 아저씨가 목선의 노를 저어 호수 구경을 시켜주었다. 물살이 뱃전을 칠 때마다 열네 살 소녀들은 비명을 질렀고, 아저씨는 신이 난 우리를 놀리려고 노를 잡은 팔뚝에 힘을 더 주었다.

물살이 끊임없이 부딪치며 물보라를 피워내던 예당저수지에서의 한때였다.

예당저수지는 예산과 당진 일대의 넓은 곡창지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곳은 바다처럼 넓어 보였다.

물이 차오르면서 고향을 떠나야 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그때만 해도 조상의 묘와 대대로 살아온 집을 두고 떠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 마을에서 오십 리쯤 떨어진 곳에 저수지가 건설되던 이야기는 삼삼오오 모여 앉는 자리마다 빠지지 않았다.

팔뚝 굵은 아저씨가 자기 집에 가서 물 한 모금 마시자고 했다.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기와집이 갑자기 나타났다. 집 앞에서 흰색 치마저고리를 입은 젊은 새댁이 우리를 반겼다. 얼굴에 핏기도 없고 병약해 보이는 모습에“저 언니 폐병 환자가 아닐까?”하며 우리는 소곤거렸다.

그 언니가 물과 함께 찐 감자 몇 개를 우리 앞에 내놓았다. 착한 언니였다.

예당저수지에서 물 위의 기와집과 흰옷 입은 언니를 만난 것이 꿈속인 듯 느껴졌다. 내가 만들어낸 환상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어떻게 물 가운데 집이 있을 수 있으며, 가녀린 언니는 왜 그리 우리를 아련하게 바라보았을까. 그 헤아릴 수 없는 슬픔이 전해져서 나는 의식적으로 기억을 잠가버렸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그 의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대청댐 건설로 당시 수몰지구 주민이 된 시아버님에게 어릴 적 예당저수지에서 물 위에 있던 집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자 시아버님은 둔덕에 세워졌던 집에서는 물이 차오르는 동안에도 사람들이 살 수 있었다고 하셨다.

한국을 떠나기 전, 예당저수지에서 몇 날을 보냈다.

밤안개에 싸인 외로운 섬 같은 낚시 좌대에 앉아 불빛에 드러난 물결을 바라보고 있으면, 온 세상은 고요를 품은 듯 바람도 몸을 사리고, 물소리마저 속살거렸다.

그러나 그 밤, 느리게 흐르던 시간에도 문명은 새 시대의 도약을 품고 있었나보다. 멈출 수 없는 이상을 찾아 길 떠나야 하는 이방인처럼.

예산 황새가 접은 날개를 활짝 펴고 비상했다. 음악 분수가 하늘 높이 치솟는다.

이 밤, 나는 잃어버린 시간을 불러내어 글로 숨을 불어 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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