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의 결과는 흰머리가 좋다에 5표, 아직은 염색을 해야한다에 1표, 단 한 명만이 나이의 앞 숫자가 바뀔 때까지는 염색하라고 조언한다.
그 옛날, 어머니는 낡은 양재기에 염색약을 끓여서 머리에 바르시곤 했다. 가끔은 내가 칫솔에 약을 묻혀 뒷머리 염색을 도와 드리면 무척 좋아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머니 머리에도 흰서리가 남들보다는 일찍 찾아왔던 것 같다.
염색의 긴 여정이 끝난 뒤, 새까매진 머리카락에 동백기름을 바르고 은비녀로 쪽을 찌르며 하시는 말씀은 “개운하다”였다. 그러나 세월을 속이는 것이 염색이라 하지만 언제까지 가릴 수 있을까. 어머니는 노후에 은빛으로 빛나는 커트 머리를 하셨다.
누가 오는 세월을 막고, 누가 가는 세월을 붙잡을 수 있겠는가. 흰머리는 단지 색을 만드는 멜라닌 색소가 줄어들어 생기는 현상일 뿐이다. 그런데도 나는 흰머리의 어르신들이 건강 악화와 무너지는 자존감 속에서 젊은 날의 영광마저도 상실감으로 느끼며 쓸쓸해하실 때 인생의 허무를 보는 것 같아 슬프다.
그러나 세월의 속성은 흘러가는 것이 아닌가. 흰머리라는 이정표 앞에서 나를 다시 한번 다독이며 주어진 시간과 사이좋게 공존해야 할 것 같다.
오늘은 모임이 있는 날이다. 동백기름으로 흰머리를 매만지고, 긴 치마에 시골 할머니들의 꽃무늬 누비 조끼로 복고적인 패션을 연출했다.
오늘로써 나는 노년의 첫 발을 내딛는다. 이제는 탈바꿈했으니 우아하고 고결한 아폴로 나비 (Parnassius apollo)를 닮아 볼까, 개운한 마음이 날개를 편다.
<조옥규 수필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