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14 (수) 12:00:00 이명숙 수필가
대구 간송미술관에 갔다. 바람에 한 방향으로 잎이 날리는 ‘풍죽(風竹)’이라는 작품이 인상 깊었다. 부끄러워 한사코 외면하는 여인의 모습과도 같았고, 약한 듯하면서도 꺾이지 않는 부드러운 기개가 느껴졌다. 사방이 대나무로 가득 찬 영상으로 ‘풍죽’을 재현하는 방에 들어갔다. 그 스산한 대숲의 소리가 아직도 들려온다.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 진품은 보지 못했으나 단원 김홍도의 작품과 그 외 다른 보물들, 우리 역사의 수준 높은 흔적을 보았다. 이 모든 위대한 수집을 한, 간송 전형필 선생에게 감사함이 저절로 끓어올랐다.
대구 출신 지인의 안내를 받아 수성못에 갔더니 ‘상화 이상화’의 동상이 있었다. 큰 바위에 쓰인 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시문을 봤다. 마침 문화 해설사이기도 한 지인의 설명으로 바로 그 앞의 거대한 옥토가 일본인의 집요한 애착에 다 빼앗긴 뒷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앞으로 그 시를 생각할 때마다 지금은 빌딩과 집들로 가려졌지만 드넓었던 그 땅, 빼앗긴 그 논과 밭을 상상하게 될 것 같다.
이렇게 지나는 여정마다 시와 문학, 예술이 있어 스며들고 흠뻑 젖었다. 이런 환경이 국민을 문화적으로 성숙하게 한 것은 아닐까? 아니면 중앙이나 지방 공무원의 안목이 높은 것일까?
지하철 안전문에 시가 쓰여 있다. 곧바로 전철이 도착해 다 기억이 나진 않고 끝의 시구만 뚜렷이 남는다. 어렴풋이 떠오른 내용은, 추운 겨울 벤치에 앉은 이가 일어났다 다시 자리에 앉는다. 자신이 앉아 데워놓은 자리에 앉으며 ‘아! 나는 따뜻한 사람이었구나!’ 이 표현이 내게 강하게 다가왔다. 이 말은 한국 여행의 마지막 선물로 마음에 깊이 심어졌다.
이렇듯 한국의 문화는 시민들의 일상생활 곳곳에 흘러넘친다.
<이명숙 수필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