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06 (화) 12:00:00 홍용희 수필가
내가 그토록 굳세게 끌어안은 밥사랑-‘ 밥심으로 산다’라는 말은 바위처럼 내 안에 굳게 자리 잡고 있었다. 특별히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닌데, 부지불식간에 보이지 않는 편식의 원인이 되었을까. 딸은 여러 번 말했다.
“엄마가 고혈압이라는 사실은 엄마의 식사에 원인이 있어요. 나도 엄마가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얘기 안 해요.” 하면서 영상을 보내주기도 하고, 볼 때마다 조심스럽게 말해주었다. 나는“알았어. 너는 너대로 해, 나는 나대로 할게.” 하면서도 속으로는 밥을 줄이려고 생각은 했다. 이제는 말을 듣는 처지가 바뀌었다. 저 어렸을 땐 내 말을 안 듣더니 이젠 반대가 되었다.
그런데, 그 결과를 지금 겪으니 밥에 대한 신념의 바위가 깨어지고 있다. 이 고집을 깨트리기까지 십 년도 더 걸렸다. 무식해서 용감하다가 병이 생기니 그제야 어리석은 나를 돌아본다.
생각해보면, 세대마다 밥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할머니 세대는 밥을 곧 생명으로 여겼다. 굶주림의 기억 속에서 밥은 사랑이자 보호였다. 그것은 자기 경험을 기반으로 한 인식이다. 그러나 딸 세대는 풍요 속에서 자라 건강을 먼저 생각한다. 흰 밥을 줄이고 채소와 단백질을 챙기며, 몸의 균형을 지키려 한다. 나는 오래된 습관을 붙들고 있었고, 이제야 두 세대의 목소리를 함께 듣는다. 그렇게 말해도 듣지 않는 엄마를 딸은 얼마나 답답했을까. 나의 믿음과 습관의 허망함을 느낀다.
병원에선, ‘저탄고단’을 권한다. 탄수화물은 적게, 단백질을 많이 섭취하라고 한다. 지방도 필요하다. 음식은 내 몸의 상태에 따라 알맞게 섭취해야지, 뜻 없이 기호에 맡길 것은 아니라는 것을 오랜 세월을 통해 배운다. 아무리 밥도둑이 있어도, 도둑은 멀리해야 한다. 이제는 몸의 소리를 듣고자 한다. 더 이상 병이 깊어지기 전에. 내일의 힘찬 맥박을 기대하면서. 그래도 문제는 남는다.
나는 또 무슨 바위를 쌓고 있을까. 나의 다짐은 언제까지 미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