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칼럼] 단호박의 온기

 댓글 2025-12-23 (화) 12:00:00 김영화 수필가
 
아침저녁으로 싸늘한 바람이 속살까지 스며드는 늦가을이다. 하지만 호박은 서둘러 익지 않는다. 초록색 단호박일지 노란색 큰 호박일지 궁금했다.‘보름달처럼 크게 자라렴’노래하며 물을 열심히 주었지만, 더 커지지도 않고 색깔도 노랗게 변하지 않는다. 비로소 진초록색을 끝까지 고수하는 단호박은 자기 명함을 밝혔다. 한여름 뙤약볕을 견디고, 가을 서리 내리는 날까지 천천히 당도를 채워간 호박이다. 가끔은 주인의 손길이 닿지 않아도, 자연의 시간을 거스르지 않고 그 리듬에 순응하며 그 만의 달큼한 속살을 담아낸다. 추위가 다가와도 저항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그 기운을 흡수해 단단해진다. 기다림 속에서 자란 호박은 불필요한 쓴맛은 사라지고 본연의 단맛이 깊어진다. 가을을 기다린 우리의 관계도, 일도, 마음도 더욱 성숙해져서 단호박 맛처럼 달콤하게 익었으면 좋겠다.


잘 익은 호박은 우리에게 기다림의 소중한 교훈만 준 것이 아니다. 마음까지 따뜻하게 한 호박은 다양한 영양소가 풍부하여 면역력 강화, 항산화 작용, 부기 완화, 혈관 건강 개선,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된다. 단호박으로 어릴 적 어머니가 끓여주셨던 호박죽을 만들어야겠다. 음식 솜씨가 좋으셨던 어머니는 호박죽에 새알과 잣을 넣기도 했고, 팥을 넣기도 했는데, 어머니 사랑의 손맛이 나올는지 모르겠다. 몇 조각을 남겨서 단호박을 스팀에 쪄 먹어도 달고 맛있다. 겨울이면 호박을 크게 잘라 큰 가마솥에 삶아 엿기름가루를 넣어 만들어준 달고 찐득한 호박 조청에 흰떡을 찍어 먹었다. 그 겨울, 그 집의 꽁꽁 얼어붙은 툇마루, 상할머니, 할머니, 어머니가 그리워진다.

달콤한 호박죽 추억을 맛본다. 단호박의 온기를 봄을 기다리며 추운 겨울을 견뎌야 하는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김영화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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