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셔에서] 크리스마스와 쌀 한 포대

 댓글 2025-12-04 (목) 12:00:00 성민희 소설·수필가
 
나는 옛날 생각이 났다. 그러니까 우리가 미국에 첫발을 디딘 해였다. 11월에 도착하여 어리둥절하는 중에 크리스마스가 되었다. 이웃집은 창문 너머로 반짝이는 트리와 그 밑에 수북이 쌓인 선물 상자가 따뜻해 보였지만 낡은 창문이 덜컹거리는 우리 아파트는 크리스마스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선물을 들고 갈 곳도, 선물을 들고 올 친구도 없다는 사실이 쓸쓸한 이브 날 오후, 중년을 훨씬 넘긴 집사님 부부가 쌀을 한 포대 들고 찾아오셨다.


방이 밝아서 좋다는 덕담과 함께 기도도 해주셨다. 두 분이 가시고 난 후, 엉거주춤 깎아 낸 과일 접시를 치우며 남편과 나는 갸우뚱했다. 왜 오셨을까?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면 아이에게 줄 과자나 일상용품을 사오셨을텐데 웬 쌀이야? 지나가다 들리셨나? 어디서 공짜로 생긴 건가? 우리는 의아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극빈자 취급을 당한 것 같아 살짝 기분이 나쁘기도 했다. 그 쌀은 며칠이나 우리의 관심도 받지 못한 채 문 앞에 서 있었다.

어느덧 40여 년이 지나가고 중년을 훌쩍 넘긴 이제, 나는 안다. 함께 어울리지도 않는 연령대의 부부에게 관심을 주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바쁜 이브날 오후에 다우니에서 엘에이까지 30분 거리를 운전해서 온다는 것이 얼마큼 힘든 일인지를.

“그분들은 가난한 젊은 부부에게 다른 것보다 쌀이 더욱 필요할 거로 생각하셨을 거야. 지금 돌아보니 정말 고마운 분들이셨어. 감사한 줄도 모르고 감사하단 표시도 할 줄 몰랐던 게 죄송해. 저 부부도 다음에, 나이가 더 들어 우리 나이쯤 되면 그때에야 참 고마운 권사님들이셨어. 할 거야. 내가 깨닫듯이 말이야.” 내 얘기를 듣고 있던 친구가 창밖을 바라보던 시선을 내게로 돌렸다. “그래, 크리스마스 날에 참 좋은 일 했다.” 우리는 서로 마주 보며 웃었다.

<성민희 소설·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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