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뿌리 / 김미란 - 2025 경북이야기보따리수기공모전 입선
수백 년 나무가 호수에 빠졌다. 아름드리 왕버들이 호수에 뿌리를 내리고 하늘을 향해 우듬지를 쭉 뻗었다. 밑동은 물 아래 잠겨도 가지마다 연둣빛 잎사귀가 무성하다. 물이랑에 윤슬이 반짝이고 그 위로 봄 산이 내려앉았다. 바야흐로 봄빛이 절정이다.
여행 중인 지인한테서 사진 한 장을 받았다. 청송의 속살, 주산지였다. 볼수록 태고의 신비를 담은 듯한 풍경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나무가 물속에서 살아남은 비결이 무엇일까. 둘레를 보아하니 수백 년 고목 같은데, 긴 세월 썩지 않고 어찌 버텨온 걸까. 궁금증이 앞서 마음은 벌써 주산지로 달려갔다.
산새들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물길을 거슬러 오르던 중, 주산지의 사계를 찍은 표지판을 만났다. 봄여름가을겨울, 저마다의 빛깔로 물든 풍광을 보자 기대감이 한껏 더 부풀었다. 드디어 주산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물이 빠진 풍광이 해쓱했다. 바닥을 드러낸 모습을 보러 온 건 아닌데, 설레던 마음이 풍선에 바람 빠지듯 꺼져버렸다. 일행은 저마다 탄식을 내뱉었다.
“사진에서 본 경치와 너무 다르잖아.”
“갈수기라 물이 적어서 그래. 좀 더 빨리 올 걸…….”
아쉬움을 달랠 곳은 없을까. 산책로를 따라 걸으니 눈앞에 왕버들이 나타났다. 오, 맙소사! 물속에 잠긴 신비로운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질척한 바닥 위에 희끔한 밑동과 뿌리까지 그대로 드러내 그 모습이 초췌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밑동에는 누리끼리한 새끼줄 같은 것이 너저분히 엉켰다. 억새 줄기라도 달라붙었나 싶어 사진을 찍어 확대해 보았다. 이도 저도 아니었다.
나오면서 안내판을 읽어 보았다. 나무 밑동에 수북하게 달라붙은 것은 물풀이 아니라 수없이 많은 잔뿌리, 호흡근(呼吸根)이었다. 왕버들이 아무리 물을 좋아한다지만, 물속에서 숨을 쉴 수는 없다. 물속에서 삼백 년 넘도록 버텨낸 비밀은 바로 숨을 쉬는 뿌리에 있었다. 주산지의 비경 아래 숨은 비밀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해졌다. 나 또한 꽉 막힌 현실에서 숨통을 트기 위해 몸부림치지 않았던가.
가을바람이 소슬히 불던 어느 날, 아버지가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우리 곁을 떠났다. 홀로 집안을 이끌어가야 할 어머니를 위해 내가 할 일이 뭘까 고민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중학생인 나로서는 용돈을 아끼는 것이 전부였다. 참고서는 사지 않고 노트와 교과서로만 공부했다. 외출복이나 평상복은 언니들의 옷을 물려받아 입었다.
방학이면 나들이는 생각지도 못했다. 집안에만 갇혀 지내다 보니 현실에 갑갑증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리저리 뒹굴다가 공깃돌 대신 국문학도인 언니가 읽는 소설 전집을 손에 잡았다. 어른의 세계는 복잡하고 어려웠다. 의미를 잘 몰라 건너뛰어도 시간이 날 때마다 책을 읽었다. 그러다 보면 나는 어느새 어른이 되어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더 큰 숨을 쉬려고 숨뿌리를 뻗은 곳은 책이었다.
넉넉하지 못한 환경의 여섯째, 각자의 개성이 뚜렷한 언니들 사이에서 느끼는 심리적 압박감, 어머니의 노동과 한숨…. 숨 막히는 일이 이어졌다. 대학 졸업 후 일을 하며 결혼 비용을 모은 나는 집에서 벗어나 새로운 꿈을 찾기 위해 또 다른 탈출구를 찾았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 남자와 결혼했다. 그리고 기회의 땅, 서울로 입성했다.
현실은 달콤하지만은 않았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니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건 시어머니의 싸늘한 표정이었다. 예전의 봄꽃처럼 화사한 표정으로 되돌리기 위해 마음을 다했지만, 네가 아버지 없이 자라서…, 라는 말을 들었을 땐 숨조차 쉴 수 없었다. 남편에게 하소연하면 오히려 나무라는 듯한 말투로 집안 분위기를 서늘하게 만들었다. 숨이 막히는 일상이 겹겹으로 쌓이면서 어느 날부터인가 목이 긴 티셔츠를 입으면 옥죄임에 질식할 것만 같았다.
머릿속에는 우울, 절망, 도피라는 단어가 헤엄치고, 의지는 수면 아래로 점점 가라앉았다. 살기 위해, 숨을 쉬기 위해 이리저리 더듬거렸다. 촉수에 무언가라도 잡히면 그것을 붙잡고 뛰쳐나가고 싶었다. 구인 광고를 계속 살피다가 어렵사리 직장을 구해 수면 바깥으로 뛰어나갔다. 다행히 직장에서는 일에 쏟은 나의 노력과 진심을 헤아려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여러 일터를 거치는 동안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서 많은 경험을 쌓고,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혔다. 그러면서 나라는 나무는 우듬지를 높이며 생장했다.
사람은 누구나 이 땅에 불시착한 존재다. 어느 핏줄 어느 집안에 태어나는지 미리 알고 오는 영혼은 없다. 첫울음을 터트리고 눈을 떠보면 이미 모든 것이 정해져 있다. 바꾸는 건 함부로 허락하지 않는다. 뿌리 내린 자리에서 땅을 꽉 잡고 생의 줄기를 밀어 올리거나 아니면 어디로든 정착할 곳을 찾아 떠나야 한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어디 있으랴.
이 땅에 온 이상 이를 앙다물고 살아내야 한다. 가물고 척박한 땅이든, 질척해서 발이 푹푹 빠지는 땅이든, 삭풍이 몰아치는 절벽 틈새든, 모두 살아남으려 몸부림친다. 업무든 사교든 친목이든, 숱한 사람을 만나면서 알았다. 경쟁에 밀리고 지위에 눌리고 숨 막히는 세상을 견디느라 다들 수면 아래 숨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숨탄것은, 태어난 자리가 운명이면 살아남는 일은 숙명이다. 가뭄에 목이 타도 한파에 얼어붙어도, 생을 송두리째 뒤엎으려 달려드는 바람의 멱살잡이에도 견뎌야 한다. 무슨 수를 쓰든 살아남아야 꽃을 피우고 튼실한 열매를 맺는다. 꽃이 핀 풍경과 열매를 맺은 풍경은 그래서 볼수록 아름다운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왕버들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물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 모습은 볼수록 경이롭다. 생존이라는 절박성 그 수면 밖 풍경이 왜 아름다운지 안 오늘, 길섶에서 살아가는 키 작은 풀 한 포기도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