쨍 / 김애자 - 제15회 천강문학상 우수상
시작을 알리는 애국가가 울린다. 수십 개의 악기가 내는 소리는 연주 홀의 구석까지 돌고 나와 청중의 가슴을 휘어잡는다. 노래에 휩쓸린 입술이 최면에 걸린 듯 가사를 읊조리자 무덤덤하던 마음이 진중해진다. 마지막 소절 ‘대한 사람’에서 수천 년의 역사를 품은 민족의 정기가 심벌즈의 파열음 따라 하늘로 솟구쳐오른다.
친구의 부탁이다. 시골에서 온 그의 아버지에게 음악회를 안내하라는 책임을 맡겼다. 두루마기 차림의 아버지를 보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서양음악을 연주하는 자리에 옛 선비의 모습은 양복에 갓 쓴 것처럼 어색하다. 주변의 시선들이 촌부와 내게 꽂히는 것이 싫었지만 친구의 곡진한 청을 피할 수가 없었다.
공연문화가 낯선 친구 아버지는 어리둥절한 눈치다. 무대 뒷자리에 선 아들을 일러주자 당신의 눈과 귀는 자식에게만 꽂혔다. 바이올린과 나팔이 분주하게 연주하는 동안 당신의 아들은 약방주인처럼 우두커니 서 있다. 수십 분이 흘렀을까. 슬그머니 일어선 아들이 양손에 냄비 뚜껑 하나씩 움켜쥐고는 청중이 기겁할 만큼 쨍하고 부딪친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는 아버지의 얼굴이 조금씩 불편해진다. 음악이 막바지를 향해 치달리는데 친구 아버지가 휑하게 연주회장을 빠져나간다. 당신의 마음이 읽혀 황급히 뒤를 쫓았다. 두루마기 자락을 휘날리는 아버지의 발이 땅에 닿지 않는 것 같다. 당신을 모시고 학교 근처 찻집까지 가는 길이 멀게만 느껴졌다.
펜대 굴리며 폼나게 살라고 논밭 팔아 대학 보냈다. 조금만 더 고생하면 아들 뒷바라지하는 수고도 끝날 것이라 철석같이 믿었던 아버지다. 자식이 딴따라 한다는 것은 부모의 꿈과 희망을 짓밟는 불효였다. 친구는 자신의 욕망을 적당히 감추고 아버지가 바라는 대답으로 얼버무렸다. 속마음이 들키면 쉽게 조종당할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기에 부모님을 속이며 시간을 끌었다. 자식이 무슨 공부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당신이 소상하게 알 길이 없었다. 사학년이 되어 막다른 곳까지 이르자 친구는 정기연주회에 아버지를 초대했다. 혼자 뒷일을 감당하기가 엄청났는지 그는 아버지를 이해시키는 초벌 작업을 내게 맡겼다.
무겁고 어색한 분위기가 찻잔 속에 내려앉는다. 어금니를 꽉 다문 당신 앞에서 말문을 열 수가 없다. 무거운 침묵을 깬 아버지는
“당장 짐 싸서 집에 오라 카소.”
섬찟할 만큼 단호하다.
“수년 동안 애비 뼛골 녹이며 냄비뚜껑 두드렸단 말인겨? 손뼉 칠 줄 아는 삼척동자도 하는 걸. 숨이 턱에 차도록 해도 시원찮은데 실컷 놀다 한두 번 치고 밥이나 먹고 살겠능겨?”
아버지의 물음에 깡마른 침이 목구멍에 걸린다.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려는 듯 마담이 찻잔을 내려놓는다. 할 말을 찾느라 머릿속이 분주하다. 자칫 잘못했다가 친구가 영영 학교에 돌아오지 못하면 합주반에 비상이 걸릴 게 뻔하다.
아버지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보기엔 별것 아닌 것 같으나 타악기 전공자는 팀파니나 큰북, 작은북, 심벌즈는 물론이고, 장난감 같은 트라이앵글이나 캐스터네츠, 실로폰, 마림바까지 두드릴 수 있는 악기는 다 익힌다. 친구에게 변고가 생기면 당장 그 자리를 아무도 대신해 줄 이가 없으니 얼마나 귀중하고 대단한가를 주절거렸다.
심벌즈는 아무나 부딪치기만 하면 되는 악기가 아니다. 엄청난 소리 때문에 친구는 아무도 없는 지하공간을 찾아다니며 홀로 연습했다. 악기와 힘의 부딪힘이 어긋나 맥없이 ‘픽’ 사리를 칠 때나, 원하는 음향이 나지 않을 때 몸이 악기 속으로 연장되고 악기가 몸속에서 살아나도록 수십 번씩 반복하며 소리의 파고를 살폈다. 울림의 길이를 조절해야 할 때는 심벌즈를 겨드랑이에 껴 소리를 멈추길 수없이 되풀이한다. 작곡자가 원하는 소리를 만들기 위해 악기를 흔들거나 배에다 붙이고, 더러는 관객에게 울림을 보여주듯 머리 위로 올려 흔들면서 쇼맨십을 한다. 절정의 쨍은 음악 전체를 휘어잡고 한 단계 위로 끌어올리거나 산산조각 낼 수 있기에 그 어떤 악기보다 긴장되고 책임이 막중하다.
아버지의 얼굴엔 여전히 찬바람이 인다. 축구 경기가 한창인 텔레비전에 당신의 시선을 꽂은 채 무거운 침묵만 뿜어낸다.
필드에서는 열 명의 선수들이 쉴 틈 없이 뛴다. 각자의 자리를 지켜내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며 헐떡거리는데, 문지기는 먼 곳을 쳐다보고 내내 제자리걸음만 한다. 좁은 문 앞에서 눈을 치켜뜨고 줄곧 공만 노려본다. 선수들이 종횡무진으로 뛰어다니며 공격하고 수비해도 문지기가 한눈을 팔면 모든 수고는 헛방이다. 결정적인 순간 문지기의 실수는 팀의 승패를 가름한다. 운동장을 누비는 선수들과 달리 자신과 외로운 싸움을 해야 하는 것이 최종수비수인 골키퍼의 운명이 아닌가. 최고의 스타가 되기도 하지만 한 번의 실수로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상대 팀 문이 열렸나 보다,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진다.
심벌즈는 골키퍼와 닮았다. 주자는 수많은 시간 다른 파트의 연습을 지켜본다. 심벌즈의 쉼표는 빼곡한 음표의 숲속에서 소리의 울림을 짚으며 묵묵히 차례를 기다리는 시간이다. 긴 터널 같은 쉼표는 음악의 여정을 이어 가기 위해 설계된 것이기에 마침표처럼 쉴 수 없다. 한 시간을 전후하는 교향곡에서 한두 번 연주하는 심벌즈 주자는 음표보다 쉼표가 많은 악보를 보면서 쨍의 순간을 창조하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박자를 센다. 긴 쉼을 견디지 못하고 순간을 놓치거나 삐걱거리면 합주는 엉망이 된다. 골문을 지키지 못한 콜키퍼처럼.
교향곡에서 심벌즈는 없어도 되는 악기로 착각하기 쉽다. 박수받으며 오케스트라를 장악하는 지휘자도 아니고 쉴 틈 없이 활줄을 긁어대는 바이올린 주자도 아니다. 번쩍거리는 관을 뽑아내며 솔로로 이목을 끌지도 못한다. 다른 파트가 연주하는 동안 악보를 따라 소리 없는 연주를 하며 쨍의 순간을 몸과 마음에 각인시키기 위해 수십 수백 번 음악을 되뇐다. 공연 내내 가만있다가 가끔 양손을 힘껏 부딪치는 게 전부다. 겉으로 보기에 심벌즈 주자는 놀며 쉬며 기척이 없다가 한두 번의 쨍으로 날로 먹는다고 여긴다.
한 곡 속에서 천여 개의 음표를 연주하는 바이올린은 백 원 백 원 하면서 부지런히 모아야 하고, 삼 백여 개의 음을 내는 관악기는 천 원 천 원을, 어쩌다 한두 번 치는 심벌즈는 십만 원 십만 원이다. 음표가 적다고 연습 시간과 노력한 시간이 결코 적은 게 아니기에 모두 같은 급여를 받는다. 좁쌀 백 번 구르는 것보다 호박 한 번 구르는 것이 괜찮지 않은가. 두 눈 부릅뜨고 쉴 틈 없이 손발을 움직이는 것만 중요한가. 축구선수와 꼴 키퍼를 들먹이며 언젠가는 심벌즈 연주자인 아들을 자랑스러워할 것이라고 장담하며 친구 아버지 눈치를 살핀다. 조금은 성화가 누그러지는 눈치에 나는 더욱 열을 올린다.
십여 년 전 독일의 한 오케스트라에서 심벌즈 주자를 도마에 올렸다. 바이올린 주자가 타악기 주자와 같은 급여를 받는 것이 부당하다고 제소했다. 처음부터 쉴새 없이 연주하는 바이올린에 비해 몇 번 두드리는 타악기 주자가 같은 대우를 받을 수 없다고 여긴 모양이다.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법원은 타악기 연주자의 손을 들어주었다는 기사가 생각난다. 저짓 해서 밥이나 먹고 살겠느냐는 친구 아버지의 시름을 덜어줄 만한 사건이었다. 노기가 덜 가신 당신이 자식을 믿고 편안히 돌아갈 수 있을까.
심벌즈 연주자를 보면 조연자들이 떠오른다. 누구나 주연이 되고 싶으나 주연만 사는 세상이 아니지 않은가. 번듯하게 티 나는 일만 중요한 게 아니라 하찮아 보이는 것도 위대한 힘을 낼 수 있다. 한두 번 울리는 심벌즈지만 꼭 들어가야 할 자리에 빠지면 음악 전체가 휘청거린다. 오랜 쉼을 침묵으로 견디다 절정에서 터트리는 파열음은 음악의 분위기를 극적으로 바꾸어 객석에 가득 찬 관객들에게 존재감을 드러낸다.
우주의 모든 것들은 각각의 자리와 특별함이 있기에 귀중하다. 무료하게 보이는 심벌즈 연주자에게 빛나는 순간이 오듯 인생에도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절정의 순간이 올 것이다. 그때를 섬광처럼 빛내기 위해 뒷자리 앉은 연주자는 소리 없는 소리를 수없이 만들어가며 자기 시간을 뚜벅뚜벅 걸어간다.
피와 땀으로 얼룩진 연습은 무대 위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고스란히 드러난다. 현악기와 목관악기의 절묘한 조화와 금관악기의 힘찬 소리가 합세하여 폭풍처럼 몰아치며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절정에서 쨍의 폭발음은 하늘을 찢는 오르가즘을 느끼게 한다. 수십 분 동안 심벌즈의 외로운 침묵도 오케스트라 음악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순간을 창조하기 위한 집중과 인내의 열매가 홀 안 가득 펄럭인다.
등록 기간이 한참 지난 뒤 나타난 친구는 졸업하기 바쁘게 유학길을 떠났다. 황금빛 번쩍이는 쨍에 날개를 달기 위해 하늘을 가르며 멀리 날아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