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본능 / 맹경숙

 

발뒤꿈치까지 바싹 다가온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감히 돌아볼 수가 없었다. 돌아보면 바로 덤벼들 것 같았다. 등은 이미 축축이 젖어있고 이마에선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가슴은 쿵쾅쿵쾅 방망이질을 했고. 심장은 멎을 것 같았다.

처음 와 본 낯선 마을이었다. 창틈으로 스미는 햇살 한 줌이 서서히 어둠을 몰아내고 있었다. 평창의 새벽 공기는 유난히 맑고 차가운 느낌이 들었다. 어제 늦게 도착해서 짐을 풀고 경치를 바라볼 여유조차 없었던 터라 처음 와본 이곳이 궁금하여 마을을 꼭 걸어보고 싶었다.

문을 나서니 마을은 온통 초록 융단을 깔아 놓은 것 같았다. 펜션의 뒷길은 옅은 색의 들꽃들이 자욱하게 모여 있었다. 고요와 맑음이 합쳐지니 내 숨소리조차 커다랗게 울림으로 다가왔다.

풍경에 취해있던 그때 '컹컹!!'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서 고개를 돌려보니 커다란 개 두 마리가 나를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얼른 봐도 덩치가 매우 크고 엄청 사납게 보였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순간 누군가에게 들었던 말이 뇌리를 스쳤다. 개는 등을 돌려 도망가는 사람한테는 무조건 달려들어 물어버린다는 말이 생각났다. '그래 침착하자 뛰지 말자' 태연한 척 발에 힘을 주고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그 짧은 시간에 온갖 생각이 떠올랐다.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고 다리는 이미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 기도가 나왔다. 제발 이 상황을 모면하게 해 주십사 간절한 마음으로 빌었다. 무서운 개들을 제발 돌아가게 해 주십사 도와달라는 기도를 했다.

두 마리의 개는 마치 적전으로 돌격하는 군사처럼 ‘타각타각’ 빠르게 다가왔다. 세상을 살면서 이런 공포는 처음이었다. 쌕쌕 거리는 개의 숨소리가 바로 등 뒤에 붙은 것 같았다. ‘이제 죽었구나’ 하는 순간, 펜션이 눈에 보였다. 저곳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되니 일말의 희망이 보였다. '그래도 뛰면 안 돼!' 끝까지 태연하게 걸어서 들어갔다.

주차장 입구에 들어가는 순간 이제 살았구나 하고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런데 왠지 뒤가 허전했다. 뒤를 돌아보니 두 마리의 개는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긴장이 풀어지면서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아침잠에서 막 깨어 있던 가족들은 내 얼굴을 보고 새벽부터 어디 갔다 왔냐고, 얼굴이 왜 그러냐고 다급하게 물었다. 나는 흥분된 상태로 상황을 설명했다. 그런데 모두 박장대소를 했다. 생사를 넘나드는 긴장의 시간이었건만 가족들은 무슨 예능 프로라도 본 듯이 재미있다고 난리였다.

그들은 낯선 곳에 와서 겁도 없이 혼자 왜 나갔냐고 푸념을 했다. 순간적으로 의아했다. 정말 힘들고 엄청난 고비를 넘겼는데, 그저 우스개로 넘기는 가족들이 어이가 없었다. 아무도 그 공포를 실감할 수 없겠지만, 나는 스스로에게 대단하다고, 위험했던 순간을 지혜롭게 잘 모면했다고 다독거렸다.

마음이 어느 정도 진정되자 의심이 생겼다. 개가 왜 나를 따라왔을까? 개들도 시골마을에 갑자기 나타난 낯선 사람이 뭔가 석연치 않았는지 모른다. 내가 이 마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공격을 해온 것 같았다. 그 개들은 마을을 지키겠다는 강한 의지를 가진, 훈련이 잘 된 충직한 개였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우리의 인간도 마찬가지다. 처음 본 사람에게는 본능적으로 경계심을 느끼며, 때로는 방어적인 모습을 보인다. 본인이 아쉬운 상황이 아니라면 굳이 친해지려고 노력도 하지 않는다.

갓 결혼했을 당시였다. 처음 마주한 시댁 식구 모두가 낯설고 두려웠다. 이제 이 사람들과 한 가족이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평생을 같이 살아야 한다는 것이 무척 부담스러웠다. 오랫동안 지켜온 집안의 관습과 오고 가는 말투, 모든 것이 달랐다.

시집 식구들은 살아가는 생활방식도 판이했다. 하지만 남편이 옆에 있으면 두려운 줄 몰랐다. 익숙한 사람은 오직 남편 한 사람이었다. 낯선 가족들 사이에서 부담스럽고 불편했던 마음이 남편이 퇴근하여 돌아오면 금방 눈 녹듯 사라졌다. 시댁의 크고 작은 행사에 참석한 날이면 으레 남편 뒤만 졸졸 따라다녔다. 잠시라도 보이지 않으면 고개를 돌려 두리번거렸다. 시댁 식구들과 익숙해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그날 개에게 쫓기며 경계 본능을 톡톡히 맛보았다. 오래전, 내가 시집 식들을 경계했듯 개들도 타지에서 온 낯선 나를 충실하게 경계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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