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선물 / 김삼진

 

 

아버지가 쓰러지셨다. 고령의 노인에게 흔한 치매증상 외에는 특별한 지병 없이 건강했던 아버지는 백 세를 이태나 넘기고 있다. 우리 형제는 ‘저녁을 잘 드시고 기분도 좋으셨어요. 그런데 아침을 차려놓고 모시러 들어갔는데 돌아가셨지 뭐예요.’ 이렇게 곱게 마감하시기를 바랐다. 그러나 아버지는 한 해가 끝나가는 12월 말에 아침 식사를 마치고 거실 소파에 앉아 있다가 뇌경색을 맞았다.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여러 가지 검사를 받은 후 뇌졸중집중치료실에 입원, 치료를 받았지만 언어 장애와 반신불수는 회복할 수 없었다. 우리는 아버지를 집에서 가까운 요양병원으로 모셨다. 어느덧 한 달이 다 되어간다.

집에서 요양병원까지는 2백 미터 남짓. 나는 하루에 서너 차례를 드나들며 아버지의 머리맡을 지켰다. 고통이 없기를 바랐지만 가래나 욕창으로 얼굴을 찡그리는 횟수가 잦았다. 가까이 다가가 “저 왔어요” 하면 알아보는지 옅은 미소를 지으셨는데 이제는 반응이 무디어지셨다. 귀에 대고 인사를 해도 고개를 내 쪽으로 돌리지도 않는다. 소형 가습기에 물을 채우고, 면도를 해드리고 욕창이 더 이상 커지지 않도록 체위를 바꾸어 드린다. 이젠 내가 아버지를 위해 해드릴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한 시간여 만에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허전하다.

어머니께 점심상을 봐드렸다. 아버지가 입원하신 후 어머니의 단기기억상실증은 가히 초음속이라 할 만큼 빠르다. “아버지 어디 가셨어?” “아버지 왜 안 오셔?” 요즘 어머니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다. 어머니와 눈을 맞추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병원에 입원하셨다고 알려드린다. 어머니는 깜짝 놀라며 “왜?”라고 묻는다. 중풍을 맞으셔서라고 하면 “어머! 어떡하니? 큰일이네” 하며 흐느끼다가 기도로 이어진다. 그러나 기도를 하는 사이에 그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린다. 다시 반복되는 질문. 나는 아버지가 혼자 계시기 때문에 병원에 가봐야겠다며 일어난다.

병원 문 앞에 구급차가 서 있다. 새 환자가 왔나보다. 나는 병실로 올라갔다. 병실 입구 복도가 울음소리로 어수선하다. 순간 덜컥 가슴이 내려앉는다. 같은 병실 입구에 있던 환자의 얼굴이 시트로 덮여 있다. 그 환자는 참 시끄러웠다. 걸핏하면 침대를 배설물로 더럽혔다. 그걸 치우는 간병인의 손길은 거칠었다. “아! 저쪽으로 좀 쳐들어!” 시트를 갈아 눕혀주고 나면 노인은 누군가를 찾곤 했다. “을순아~ 을순아~” 간병인이 빨랫거리를 챙기며 툴툴거렸다. “아이씨! 시끄러! 오지도 않는 건 왜 그렇게 찾아?” 그렇게 구박을 받더니 저렇게 가는가.

그들이 탄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틈새로 새어나오던 흐느낌이 작아진다.

아버지의 침대 곁으로 가서 아버지를 내려다본다. 아버지는 언어능력만 상실했을 뿐 시각 청각 후각 등은 정상일지 모른다. 삼인실의 작은 방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은 누워 눈을 감고 있지만 생생하게 느끼셨을 터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吾不關焉오불관언이다. 지척에서 일어난 죽음의 현장에도 아버지는 무심하다. 아버지의 평온한 얼굴에 빠져 있다가 문득 ‘心子閑심자한’이라 새겨진 목판이 떠올랐다.

심자한은 李白이백의 절창 「산중문답」두 번째 연의 시구에 나온다. 이백이 산속에 살 때 친구가 찾아와 당신은 왜 이런데 사느냐고 묻자 ‘笑而不答心自閑소이부답심자한(웃으며 대답은 안 하지만 마음은 한가롭네)’이라고 답하는 내용이다. ‘왜’라는 질문에 그는 ‘복숭아꽃이 냇물에 떠서 아스라이 흘러가는 자연과 일체가 되었으면 됐지 무엇을 또 바라겠냐 桃花流水杳然去 別有天地非人間’는 의미의 시구로 답한 셈이다.

십오 년 전쯤이다. 사업에 실패하여 본가 가까운 근교에서 전원생활을 할 때였다. 낮에는 텃밭에 매달려 땀을 흘리고 밤에는 마을사람들과 술을 마시는 晝耕夜飮주경야음의 시절이었다. 아버지는 자식을 염려하여 산에 자주 오셨다.

어느 날 서각書刻 도구 일습을 가기고 오셔서는 내 앞에 펼쳐놓았다. ‘나이 육십쯤 되면 몰입할 수 있는 취미를 갖는 것도 좋다’며 나에게 서각을 권하셨다. 서각은 아버지가 은퇴한 후 열중하셨던 취미였다. 나무판에는 어머니의 필체로 心自閑심자한이라고 쓰여 있었다. 내가 초심자임을 감안하여 ‘소이부답’은 떼어내고 획수가 적은 후렴 ‘심자한’만 고르셨으리라. 아버지는 조각도를 잡은 내 손을 잡아 각도며 힘을 주는 요령 등 서각의 기초를 가르쳐주셨다. 과연 나는 서각에 몰입할 수 있었다. 열흘쯤 후 아버지는 완성된 심자한을 보며 흐믓해하셨다. 아버지의 깊은 뜻이 헤아려졌다.

후에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서각은 차츰 잊혀져갔다. 십여 년이 흐른 지금 그 ‘심자한’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불현듯 아버지께 ‘심자한’을 파 드리자는 생각이 떠올랐다. 십오 년 전 아버지가 내게 파게하셨던 세 글자. 나의 상실감이나 무력감을 또 자괴감을 잊게 해주었던 ‘심자한.’ 그것을 십오 년이 지난 후 돌려드리는 것이다.

서각 도구를 다시 찾았다. 붓을 놓은 지 오래된 어머니께 ‘심자한’을 연습하게 했다. 며칠 지나자 한창 전성기 때였던 어머니의 필력이 되살아났다. 나는 바로 ‘심자한’을 파기 시작했다. 완성되기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이 들었다.

며칠 걸러 완성한 ‘심자한’이 제법 그럴듯했다. 나는 뒷면에 ‘오당서 심진가 梧堂書 心自閑’이라 쓴 후 아버지께 가져다 보여드렸다. 아버지의 눈이 커진 것 같았다. 나는 아버지의 귀에 대고 말했다. “아버지 이거 보이세요? 그러면 눈을 깜빡깜빡 해보세요.” 아버지가 눈을 깜빡깜빡 했다. 마스크 밑이 움직거렸다.

십오 년 전 아버지는 ‘심자한’으로 자식이 마음을 다잡고 세상 속으로 돌아오기를 바랐다. 오늘 그 자식은 복숭아꽃이 냇물 따라 아득히 흘러가듯 아버지도 편안히 머물다가 흘러가시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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