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참기 / 유혜자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것들, 아름다운 꽃과 지저귀는 새, 풋풋한 숲이 활기를 주지만, 소중한 사람과의 만남이 인생을 역전시키는 것을 본다. 일생 동안 태어난 형태로 편안하고 순탄하게 살아가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질병으로 고생하고 경쟁에서 처지고 가난으로 좌절의 늪에 빠지기도 하지만 역경을 눈물로 이겨내고 변신, 새로 태어나는 삶에 가치를 두게 된다.

최근에 본 인도영화 <블랙>(Black, 2005 산제이릴라 반살리 감독) 은 보고 듣지 못해 어둠 속에서 자기 의사표시도 못하고 음식도 아무 것이나 손으로 움켜 먹고 난폭하던 소녀 ‘미셸’이 ‘사하이’라는 교사를 만나 기적 같은 발전을 이뤄가는 이야기다. 사하이는 미셸의 눈과 귀가 되어 말과 소리, 그리고 단어를 가르치며 새로운 인생을 열어주는 생명과 사랑에 대한 믿음을 준다. 좋은 스승과의 만남으로 어둔 장막 같던 그의 무대에 환한 조명이 비춰지기까지 그 과정은 눈물겹고 또 뿌듯하다.

여중 때, 눈물을 흘리지 않는 것이 용기 있고 강한 의지의 소유자로 여겨 영화 보면서 잘 우는 아이들을 경멸하고 울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눈물은 슬프거나 실패하고 흘리기도 하지만, 그것이 위로가 되고 도리어 큰 힘을 갖게 하는 눈물의 의미를 모르던 때처럼 <블랙>을 보면서도 이를 악물었었다.

사하이 선생이 짐승처럼 날뛰는 미셸의 손을 자신의 입에 대게 하여 말을 가르치려 해도 반항하는 것을 본 미셸의 아버지는 사하이에게 떠나라고 한다. 그 어머니는 남편의 출장 기간만 미셸을 맡기겠다고 허락하는데 미셸은 사하이를 피해 도망가다가 선인장에 부딪쳐 손을 찔린다. 지성으로 치료해주며 따뜻하게 감싸준 사하이 선생의 정성에 굳어 있던 감정의 벽이 허물어져 사하이 선생의 손에 ‘호’하고 플라잉 키스를 날리는 미셸. 마음을 연 미셸에게 빛이 스며들기 시작하여 처음 익힌 단어가 ‘water(물)’이다, 사하이 선생이 정원의 분수대에 가서 시원한 물의 감촉을 알게 하고 수화를 가르친 끝에 더듬으며 말해낸 water란 단어. 두 사람의 노력 끝에 미셸이 말한 첫 단어 ‘워터’에 감동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눈물 속엔 기쁨과 슬픔이 다 녹아 있지만 감동 끝에 흘리는 눈물이 가장 가치가 있을 것이다.

눈물 참기가 어려웠던 여고시절, 슬픈 영화를 보면서도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눈물을 삼키던 끝에 허물어지고 나서 얼마나 후련했던지 모른다. 그것도 월트 디즈니의 만화영화 <백설공주>를 관람하러 가서였다. 극장 안에 여러 학교 학생들을 얼마나 밀어 넣었던지 앉을 자리는 커녕 다리에 힘을 주고 버티고 서있기가 너무 힘들어 나도 모르게 눈물이 솟구쳤었다. 그 눈물이 영화의 슬픈 장면 때문에 나온 것은 아니었지만 그 뒤로 울보 칭호를 들으면서도 마음 놓고 영화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뿐만 아니라 눈물예찬자가 되었다. 약한 심성이나 비겁함 대신 인간미와 참회, 기쁨을 진솔하게 표현하는 것이 눈물이고, 감동을 느낄 줄 알고 순수한 영혼을 지닌 사람이 흘리는 것이라고 미화시키기도 했다.

여린 감성을 지녀서 눈물을 자주 흘리는 울보는 어디까지나 여성의 경우였기에 크게 흉이 되지는 않았다. 남성들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남자답지 않게 여기는 것이 통념인데 영화 <블랙>의 경우 국내의 모니터 설문조사에서 영화에 대한 감동의 정도를 묻는 질문에 남성관객의 63%가 눈물을 흘렸다고 답했다고 한다. 남성들이 냉정하거나 무디어서가 아니라 겉으로 눈물을 보이지 않을 뿐이지 않을까.

<블랙>에서, 미셸은 대학에 입학하여 사하이 선생의 도움으로 수업을 받으며 계속 낙제를 하면서도 사하이 선생에게 애틋한 여자의 감정을 느끼는데, 알츠하이머 증세를 느끼기 시작한 사하이 선생은 미셸의 졸업도 책임지지 못하고 종적을 감춰버린다. 혼자서 계속 낙제하면서 학교에 다니던 미셸은 어느 날, 모든 기억을 잊은 채 12년 만에 나타난 사하이 선생의 존재를 알아채게 된다. 이번엔 거꾸로 그에게 기억을 되찾아주기 위해 노력하고, 드디어 졸업하게 된 미셸은 요양소에 묶여 있던 사하이 선생 앞에 사각모자를 쓰고 보여드리지만 알아보지 못하는 선생님. 번개 칠 때 창밖으로 내리는 빗물을 손으로 만지면서 제일 처음 미셸을 가르치기 위해 정원의 물 안에서 ‘워터’라고 말하는 장면과 겹쳐지고 드디어 사하이 입을 통해서 나오던 ‘워터’, 미셸과 끌어안은 사하이 선생의 왼쪽 눈에서 흘러내린 가느다란 눈물, 그 눈물에 나는 왈칵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가 끝나고 복도로 나오면서 나는 다른 사람들의 얼굴을 살폈다. <백설공주> 소녀 시절부터 울보였던 나만 울고 나오나 했더니 그게 아니었다.

그런데 큰 거리로 나와 보니 지나가는 사람들 얼굴은 모두 밝거나 무표정했다. 너무 행복해서 좋아하는 연인들의 얼굴도 있었다. 그것은 몇 분 전에 <블랙>을 본 사람과 안 본 사람들의 차이였다. 그렇다면 방금 울던 나도 몇 분 후면 그들과 같아질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곧 사라질 눈물이라면 영화가 픽션이듯이 내 눈물도 값싼 픽션에 불과했나?

미셸이 사하이를 만나기 전의 어린 시절처럼 블랙 존은 영화가 아니라도 이 세상 어디에나 있다. 문명과 야만, 후진과 선진을 가릴 것 없이 차별과 학대와 음모와 탐욕이 있고 슬픔과 외로움이 있는 곳은 모두 미셸의 블랙 존이다.

그리고 그 곳에 가보지 못했어도 마음으로 이를 볼 수 있고 함께 아파하고 사랑하고 또 그 자리에는 없었어도 그 아름다움에 감동하는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게 된다.

이렇게 눈물이 있는 세상은 눈물이 없는 세상보다 더 따뜻하고 아름답고 건강하고 살만한 가치가 있다. 그러니 나오는 눈물을 참고 부끄러워할 일만은 아니다. 날이 갈수록 정서가 메말라가는 현대사회에서는 웃기 보다는 울기 운동으로 더 많이 진한 눈물로 이 세상을 촉촉이 적셔줌이 더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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