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lp
이현숙
연필로 공책에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The Help라고 쓰는 손이 화면 전체를 차지한다. The Help는 가정부라는 뜻이다. 영화의 첫 장면이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원작은 캐서린 스토킷Kathryn Stockett이 유년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쓴 소설이다. 5년 동안 60여 곳의 출판사에서 퇴짜를 맞다가 2009년에 출판을 했는데 열광적인 호응을 얻으며 2011년에 영화로 만들어졌다.
배경은 1963년, 미국 남부 미시시피 주(state)의 잭슨이라는 도시다. 미국 역사에서 백인의 유색인종 탄압은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되어 왔지만 남부지방의 도시들은 차별이 더욱 심했다. 백인 여성 스키터는 대학을 졸업하고 엄마의 병간호를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다. 지역의 대표 언론사인 잭슨저널지의 살림에 관한 칼럼을 쓰게 되지만 그녀의 꿈은 작가나 기자가 되는 것이다. 마음속엔 소설을 쓰고 싶은 소망이 있다.
스키터는 가사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 친구인 힐리의 집에서 일하는 흑인 가정부 에이블린의 도움을 받는다. 힐리는 유색인종이 전염병을 옮긴다는 이유로 가정부용 화장실을 집밖에 별도로 만드는 법률안을 제출한단다. 심각성을 깨달은 스키터는 자신이 쓸 책의 소재로 삼고자 에이블린에게 가정부의 인생을 엮어 책으로 내자는 아이디어를 제안한다. 백인의 행동을 비판하는 것은 흑인에게 목숨을 내놓는 것만큼 위험한 일이었기 때문에 거절을 당한다.
한 가정부가 두 아들의 대학 등록금이 부족해 주인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단칼에 거절당한다. 집안 청소를 하다가 우연히 반지를 줍게 되고 전당포에 맡겼다가 발각이 된다. 그녀가 경찰에게 체포되는 과정에서 심한 폭행을 당하자 그 장면을 목격한 다른 가정부들이 분노한다. 이 사건으로 그들은 스키터에게 자신들이 걸어온 일생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로 결정한다.
결국 13명의 유색인 가정부들의 관점에서 소설은 쓰여지고, 힘들게 출판을 한다. 그리고 책은 순식간에 베스트셀러가 된다. 스키터는 자신에게 들어온 인세를 가정부들에게 공평하게 나누어 주고 출판사의 제안으로 뉴욕에 간다.
영화 속에서 나는 두 사람의 작가를 만났다. 스키터와 에이블린이다.
스키터는 강인한 작가이다. 출판사로부터 거슬리는 이슈, 혁신적인 소재로 글을 써보라는 제안을 받는다. 작가는 시대를 대변한다고 했다. 시청에서 <미시시피 소수 민족 행동 강령>을 찾아 읽으며 분개하는 그녀의 모습은 아름답기조차 하다.
그녀는 시대적으로 위험한 발상이지만 부당대우를 받는 흑인 가정부의 이야기를 폭로해야 한다는 결심을 굳힌다. 용기 있는 여성이자 작가이다. 주위의 백인들이 눈치 챌까봐 인터뷰를 하기 위해 몇 정거장 전에 내려 에이벌린의 집으로 걸어간다. 그들의 이야기를 한 줄도 놓치지 않으려 눈을 떼지 않고, 때론 밤샘을 할 정도로 열정적이다. 질문을 던지기보다 귀를 열고 듣는다. 끊임없이 적어 내려간다.
또한 자신을 헌신적으로 키워준 가정부 콘스탄틴의 이야기도 책에 싣는다. 엄마가 주위의 강압에 못 이겨 가정부를 부당하게 해고시킨 이야기를 쓰며 그녀를 그리워한다. 학창시절, 못생겨서 댄스파티에 참석하지 못하는 스키터를 위로하며 콘스탄틴이 해준 말을 떠올린다.
“사람은 매일 아침에 눈을 떠서 땅에 묻힐 때까지 항상 무언가를 결정해야 한다. 네 자신에게 물어봐. 오늘 나를 험담하는 바보 같은 말들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을까?' 내 삶은 내가 결정하는 거야. 스키터양,”
가정부가 그녀에게 해준 말이 평생 좌우명이 되었다. 선택당하지 말고 선택해야 한다는 의지로 갑에 맞서 을의 편에 서는 당당한 모습을 보여준다. 자신의 집안 이야기를 풀어내며 그들에게 진심을 전한다. 할머니처럼 돌봐준 콘스탄틴에 대한 사랑을 보이며 피부색은 살아가는데 어떤 차이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글로 알린다.
에이블린은 준비된 작가다. 스키터가 인터뷰를 할 때 말을 하는 것보다 자신이 꾸준히 써왔던 일기를 꺼내어 읽어준다. 글로 쓰면 생각이 정리된다고 그녀는 말한다, 기도조차 말로 하지 않고 글로 적었다. 일상을 기록한다. 에이블린은 글을 읽고, 쓸 수도 있을 만큼 교육을 받은 여성이다. 그러나 할머니는 노예로, 어머니는 가정부로 살아왔기에 다른 인생은 꿈꿔보지도 못한 채 17명의 백인 아이를 헌신적으로 돌봤지만 정작 자신의 아들은 사고로 잃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현실에 순응하며 최선을 다하는 그녀의 가슴에는 항상 긍정의 힘이 담겨져 있다. 자신을 업신여기는 백인주인의 어린 딸에게 반복적으로 말해준다.
"넌 친절하고, 넌 똑똑하고, 넌 소중한 사람이야. You is kind. You is smart. You is important "
아기에게뿐 아니라 본인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다. 주술처럼 자신에게 최면을 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에이블린이 장식한다. 그녀는 억울하게 도둑 누명을 쓰자 백인 주인에게 당당하게 결백을 주장하고 그 집을 박차고 나온다. 나무가 울창한 큰길을 그녀는 씩씩하게 걷는다. Mary J. Blige의 The Living Proof 가 흘러나오며 그녀의 선택을 응원한다.
<길고 긴 여정이 될 거예요 It's gonna be a long long journey
그건 힘겨운 등정이 될 거예요 It's gonna be an uphill climb
힘겨운 싸움이 될 거예요 It's gonna be a tough fight
외로운 밤들이 있을 거예요 There's gonna be some lonely nights
하지만 난 계속 갈 준비가 돼있어요 But I'm ready to carry on
(중략)
내가 살아있는 증거이기 때문이죠 'Cause I’m the living proof >
그녀는 말한다. 아들이 우리 집안에서 작가가 나올 것이라더니 바로 나일지도 모른다고. 그녀가 새로 엮어갈 삶을 대신해 준다.
스키터와 에이블린이 작가는 주위의 삶을 섬세한 눈으로 바라보고 꾸준히 기록으로 남기라고 말한다.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귀를 항상 열어 놓으란다. 열심히 쓰라고 용기를 준다. 왜냐하면 넌 친절하고, 똑똑하고, 소중한 사람이니까.
인종차별을 다룬 영화는 다소 폭력적이고 어둡다. 그러나 이 영화는 주제에 비해 화면이 밝고 화려하다. 일찍 결혼해서 아름다운 정원과 가정부를 부리며 사는 것이 최고의 삶이라는 여인들의 의상과 헤어스타일 때문일까. 아니면 눈이 부시도록 찬란한 칼라들 속에 무채색의 유니폼을 입은 검은 피부의 가정부들을 더 튀어나게 하려는 의도였는지도 모른다. 배우들의 익살스런 연기와 내용으로 눈물이 미처 뺨을 타고 내리기도 전에 웃음으로 바뀌어 버린다. 무거운 주제에 가벼운 소재들을 적절히 배합해 유머와 감동을 주는 영화다.
The Help. 희망과 긍정을 전해준다. 선택의 기로에 놓였을 때 다시 꺼내서 봐야지. 영화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도움을 줄 것이다.
*You is kind. You is smart. You is important 는 그 시대에 그들의 영어를 옮긴 것으로 오자가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