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다리를 건넌다.

 

                                                                                      이현숙

 

1984년 1월의 22일, 미국에 도착했다. 밤 10시가 넘은 엘에이 공항은 대낮처럼 밝다. 아는 사람이라고는 동아리활동을 하면서 만난 선배, 당랑하나. 이미 이곳에 와서 살고 있는 그를 믿고 단행한 이민이다. 유리문이 열리자 훅하고 낯선 냄새가 얼굴을 스치며 줄달음친다. 사람들에 밀려 출구를 나오는데 휘청거려 잠시 가방에 몸을 의지했다.

귀에서는 여전히 붕하는 소리만 들리고 땅을 딛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 선배와 그의 친구가 공항으로 마중을 나왔다. 간단히 인사를 나눈 뒤, 대화는 이어지지 못한 채 차안의 셋은 말이 없다.

동서남북이 구분되지 않는다. 엘에이 다운타운은 밤안개를 두르고 깊이 잠들어 있다. 그 사이를 달리며 자동차의 두 갈래 불빛이 앞을 연다. 간판에 적힌 낯선 글자들은 피곤한지 반쯤 눈을 감은 채 지나는 우리 차를 힐끔거린다. 길쭉한 상자들이 건물의 벽에 반쯤 기댄 채 여기저기에 누워있다. 깊은 골목길 안쪽에는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검은 움직임들이 어둠을 술렁거리게 한다.

자동차의 불빛이 50미터 앞의 다리에 머문다. 양쪽으로 팔각의 기둥이 곧게 올라가며 점점 좁아지더니 위에는 꽃 봉우리 유리관이 올라앉았다. 그 안에서 흐릿한 빛이 새어 나온다. 기둥의 허리춤부터는 다이아몬드 모양의 구멍을 낸 난간이 옆으로 이어지며 다리의 모양새를 편안하게 받쳐준다.

차가 안개를 누르며 다리 위로 올라선다. 다운타운을 지나며 건물을 따라 우중충했던 기분이 날렵한 다리를 만나자 좀 나아진다. 멋지네요. 어색한 공기를 흔들며 내가 말했다. 이 다리가요? 운전을 하는 선배의 친구가 되묻는다.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풍겨요. 앞좌석의 두 남자는 서로 마주보며 고개를 살래살래 흔든다. 엘에이 다운타운과 4가 길을 연결해 주는 ‘4가4Th Street 다리’라고 한다. 낮에 보면 실망할거라고 그들은 입을 모은다.

이 다리를 건너면 집에 다 온 것이라는 선배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미국에 오긴 왔구나. 곧 가족들과 첫 대면을 할 것이다. 등을 타고 한 줄기 땀이 흘러내린다. 두꺼운 모직겨울코트가 무겁다. 목주위에 붙은 인조털이 거북스럽고 불편하다. 명동의 신세계 백화점에서 거금을 주고 산 것인데 이제 바꿀 수도 없다. 후회해도 소용없다.

미국은 어릴 적부터 나에게 꿈과 동경의 나라다. 입국비자를 기다리며 한 달에 한 번꼴로 통화를 할 때면 선배는 내가 원하는 데로 학교에 갈 수 있다고 했다. 자동차가 발인 이곳에서는 운전면허증을 취득해야 한단다. 곧 자가 운전자 대열에 끼일 것이다. 빨리 이곳 생활에 적응해서 미국 사람이 되어야해. 이곳에 든든하게 뿌리를 내려야지. 그래, 잘 살 수 있어. 내가 운전대를 잡고 달리는 모습을 그려본다.

4가 다리는 안개를 휘휘 감은 채 양팔을 벌려 포근하게 나를 품어준다. 걱정하지 마. 모든 게 다 잘 될 거야.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절박한 심정이 다리에 매달린다. 중간쯤에 세 개의 텐트가 어깨를 나란히 밤샘을 한다. 자동차가 지나니 순간 부르르 떨더니 다시 잠에 빠져든다.

다리를 건넌다. 이제 곧 시댁에 도착 할 것이다. 손바닥 가득 땀이 고인다. 속에서 더운 기운이 울컥울컥 올라온다. 막내둥이 응석을 받아줄 사람이 이곳에는 없다. 몸을 슬쩍 비툴어 코트를 벗는다. 어깨가 한결 가벼워졌다. 숨을 깊게 들이 마신다.

시차에 적응하느라 몸살을 심하게 앓았다. 아니 서울에서부터 꼬리를 이어 달려온 것들을 잘라내려는 아픔이었는지도 모른다. 한 달 후 쯤, 한인 타운에 있는 마켓으로 장을 보러 가는 가족들을 따라 나섰다. 오랜만의 외출이다. 그 길에서 4가 다리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날 느낀 만큼 길지도 또 높지도 않았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져 바닥과 강둑이 모두 콘크리트로 덥힌 LA River. 밸리지역 공장과 가정의 오폐수를 정수한 물이 졸졸 흐른다고 한다. 주변은 공장과 철길들이다. 난간은 낙서로 지저분하다. East LA갱들이 자신들의 지역이라고 알리는 표시란다. 다리 중간에 누덕누덕 헌옷을 겹겹이 쌓아 만든 텐트가 햇볕아래 무심하게 널브러져 있다. 걸인들이 하루 밤을 지내기 위해 만든 것들이다. 무언가가 등 뒤에서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다리의 실체를 보고난 뒤, 이민생활이 녹록치 않다는 것을 깨닫는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영어도 제대로 못하면서 미국대학의 캠퍼스를 거닐 꿈을 꾼 내가 바보지. 시댁에서 운영하는 마켓에서 당장 잔돈 거슬러 주는 일부터 배워야 했다.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민생활이 30년을 넘는다. 셀 수 없이 4가 다리를 건너며 시간은 줄달음쳐 가버렸다. 그 세월 속에서 다리는 이어준다는 것을 배웠다. 건너려고만 했기에 겪은 시행착오 덕분이다. 내 몸 안에 한국인의 정서가 녹아 있고, 머리는 미국식 사고방식을 따르는 Korean American으로 절충하며 산다.

 

4가 다리는 여전히 그곳에 있다. 난간의 낙서는 지워졌는가 하면 다시 써지고, 걸인의 텐트는 허물어도 어느새 또 세워진다. 나는 어제도 그 다리를 건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