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이룬 소년, 탐소여와 마크 트웨인

                                                                                이현숙

 

하얀 등대를 바라보며 오르는 길은 숨이 헉헉 막힌다. 이어지는 가파른 계단에 질려 몇 번 멈추기도 했다. 뒤로 밀려 난 길보다 올라갈 계단이 더 짧다고 스스로를 부추켜 겨우 정상에 올랐다. 등대를 빙 두른 보호 난간에 몸을 기대고 미시시피 강을 내려다본다. 아, 드디어 왔구나. 숨을 깊게 들이 마신다.

미 중부 미조리 주의 한니발은 대작가인 마크 트웨인이 자란 곳이다. 이 미시시피강 줄기를 배경으로 그의 대표적인 삼부작 <톰 소여의 모험><허클베리 핀의 모험><미시시피강의 생활>이 세상에 나왔다.

 

강의 넓은 폭을 푸르른 숲이 양쪽에서 아우르고 물줄기는 잔잔히 흐른다. 이곳에서 마크 트웨인은 소년기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아니 필명을 사용하기 전, 어릴 적 이름은 사무엘 랭흔 클레멘스이니 샘이라 불리울 때다. 학교 수업을 빼 먹고 이 언덕에서 돌멩이를 굴리며 놀다가 먼 옛날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해적 선장이었다는 이야기를 떠올리며 자신도 해적이 되고 싶어 했다. 강을 오르내리는 증기선을 보면서 수로 안내인이, 또 배를 타고 세계의 이곳저곳을 다니는 모습을 그려 보기도 했단다. 미시시피강에서 그의 숨결을 느끼고 싶었기에 미 중부 문학여행의 일정이 발표된 후부터 내 마음은 이미 이곳에 와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마크 트웨인의 작품을 만난 것은 결혼 전에 유치원 교사를 할 때이다. 어린이들의 나이에 맞게 각색된 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을 구연동화로 들려주면 초롱초롱 눈동자들이 내 주위에서 춤을 추었다. 집중해서 듣는 모습들에 신이 나서 더 재미있게 해주려고 목소리 톤에 신경을 쓰던 기억이 난다. 결혼 후 두 아들이 태어나고 함께 만화로, 또는 영화를 보거나 Bed Time Story로 자주 들려주었다.

톰은 아주머니의 말을 안 듣고 2층 방에서 몰래 물통을 타고 밖으로 놀러 나간다. 베키에게 사랑의 메시지를 석판 위에 써서 보여주고 동굴에서 놀다가 함께 길을 잃기도 한다. 담장에 페인트를 칠하라는 벌을 받고는 마치 특별한 행위처럼 각색해 동네아이들에게 시키며 간식까지 상납 받는 사기꾼의 기질도 발휘한다. 헉과 함께 한밤중에 공동묘지를 돌아다니다 살인 사건을 목격한 후 그 범인을 체포하는 등 동네의 사고뭉치이자 골목대장이었다. 노예인 짐과 인디언 조를 등장시켜 어른들 사회 안에서 펼쳐지는 허식과 위선에 반발하고 거부하는 내용들이다.

<톰 소여의 모험>의 서문에 ‘어린이용으로 쓰여졌지만 개구쟁이 시절을 거친 어른들에게는 즐거움과 아쉬움이 섞인 추억을, 그와 전혀 다른 시간과 공간 안에 있는 아이들에게는 신선하고 가슴 두근거리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라고 밝혔다. 아이들에게 들려주기 적합하지 않은 상황들이 나오지만 세대를 아우르는 많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특히 미지의 세계에서 펼치는 모험이 흥미진진해서 아직까지도 읽히고 영화로 만들어지고 있다.

마크 트웨인은 학교의 정규 수업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독학과 꾸준한 독서 그리고 기자로 세계각국을 돌며 겪은 풍부한 경험이 그의 작품 안에 담겨져 있다. 미국의 사회상을 해학과 풍자를 담은 필치로 예리하게 그려내 '미국적 리얼리즘'과 '지역적 리얼리즘'의 결합된 형태라는 평을 받는단다. 헤밍웨이는 '미국 현대문학은 허클베리 핀 이라는 소설 한 권에서 시작되었다' 라고 극찬을 했다. 사회적으로는 반제국주의와 노예해방 그리고 여성 참정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도 기록되어 있다.

그의 필명인 마크 트웨인에 담긴 의미처럼 그는 ‘두 길’만한 길이의 비석 옆에 잠들어 있다. 75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마지막을 맞게 될 때까지 50편이 넘는 작품을 발표했다. 헬리혜성이 나타날 때 태어났고 다시 나타날 때 함께 사라질 것이라는 스스로의 예언과 함께 신화처럼 떠나갔다.

나는 요즘 그의 작품집을 구입해서 다시 읽고 있다. 작년에 코네티컷주 하트퍼드의 마크 트웨인 집과 박물관에 가서 자극을 받았기 때문이다. 많은 자료를 보면서 그에 대한 호기심이 일었다, 미국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마크웨인을 톰소여로만 한정지었던 나의 얕은 지식이 부끄러웠다.

그가 사랑하는 아내와 세 딸들과 단란한 가정을 꾸렸던 하드포드의 집은 외관부터 남달랐다. 빅토리아풍으로 ‘어른이 만든 붉은 레고’라는 별칭에 맞게 각도에 따라 모양이 다르고 전체적으로는 유람선처럼 보였다. 당시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구리 관을 이용한 온수시설과 방마다 벽안에 관을 설치해 인터폰시설을 설치했다. 거실 한 켠에 온실을 만들어 사계절 자연을 즐기고 그곳에서 자신의 작품인 <왕자와 거지>로 아이들과 함께 연극놀이를 즐겼단다. 길게 차양이 드리워진 현관 앞에서 가족들과 지내기를 즐겼던 그는 첫아들과 딸 둘을 먼저 저세상으로 보내고 자책하며 우울하게 지냈다. 유머와 위트로 설계된 집이라는 표현에 맞지 않는 슬픔이 배어 있다. 그래서인지 유난히 창이 많고 티파니가 화려한 문양으로 장식을 했다는데도 어두운 느낌이 강하다.

그를 파산에 이르게 한 자동식자기가 박물관에 자리 잡고 있다. 몸체만큼이나 큰 부채를 그에게 안겨주어 노년에 아픈 몸으로 세계 각국을 돌며 강연을 해야만 했다. 다행히 달변가인 그의 강연은 많은 어록과 인기를 끌며 빚을 다 갚을 수 있었다. 그는 발병가로 불리는 것을 좋아했다. 병약한 아내의 힘을 덜고자 고안해낸 브레지어 후크와 신문사에서 일하던 경험을 살려 풀을 사용하지 않는 스크랩북과 멜빵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탄력 끈'도 만들지만 실용화 되지는 못했다. 실패라는 불명예와 고통의 흔적이 아직도 그를 따라 다닌다.

마크 트웨인이 중국 통이었다는 것도 알았다. 그는 젊은 시절 남북전쟁이 터지자 금광에 대한 꿈에 역마차를 타고 서부로 갔지만 실패를 하고 기자로 활동을 했다. 그때 중국인 광산 노동자들의 성실성을 보고 좋은 인상을 받았다. 이후 중국인들이 미국에 자리를 잡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그에 얽힌 활약상이 사진으로 진열되어 있다.

하드포드의 마크 트웨인 집과 박물관을 돌아보며 소설가이고 발명가며 강연자인 그를 만났다. 집에 돌아와서도 하얀 정장에 곱슬머리인 그가 자꾸 머리에 맴돌아 작품을 통해 그를 만나고 있었다. 작가를 알려면 그가 태어나고 자란 곳과 마지막을 보낸 지역에 가봐야 반절은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니발을 방문하고픈 생각이 간절했었는데 기회가 온 것이다. 하드포드와 달리 마을 전체가 마크 트웨인와 톰의 그늘 아래에 있다. 차에서 내려 걸어가는 길 양쪽의 건물들은 현대식은 보이지 않았다. 소설속의 세인트피터즈버그 마을로 변해버렸단다.

그가 살던 집은 박물관이 되었다. 맨 먼저 눈에 들어 온 것은 마크 트웨인 서재로 꾸며 놓은 작은 공간이다. 의자에 마크 트웨인이 책을 펼쳐 들고 앉아 있다. 그의 시선은 마주한 의자의 톰을 향하고 있다. 톰은 맨 발로 특유의 멜빵바지를 입고 턱을 고인 채 애도 어른도 아닌 얼굴로 생각에 잠겨 있다. 마크 트웨인의 뒤에는 남자 아이가 그의 어깨너머로 책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 자체만으로도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어 한참을 머물렀다.

마크 트웨인 작품의 원천인 미시시피강을 보고 싶다. 길거리로 나와 골동품을 파는 상점들을 지나 카티프 언덕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톰과 헉의 동상이 서 있다. 생각보다 관광객이 많지 않은 거리를 그 둘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내려다본다. 그 옆을 스쳐 계단을 오른다. 멀리 하얀 등대가 보인다. 저곳에 가면 혹시 그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한발 한발 올랐다.

강은 조용히 흐른다. 전처럼 증기선이 부지런히 오르내리지도 않는다. 톰이 낚시대를 어깨에 메고 강가를 따라 걷지 않을까, 톰과 헉, 두 개구쟁이들이 뗏목을 타고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지. 난간에 기대어 바람을 맞는다.

오래전에 한 소년이 이곳에서 꾸던 꿈을 이야기로 남기며 좋아하는 일을 잘하는 일로 만들었다. 저 강물처럼 그의 작품은 세대를 넘어 끊이지 않고 흐를 것이다. 나도 꿈을 따라 여기까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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