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의 꽃 / 최원현


 
드디어 꽃을 보았습니다. 기다림의 꽃, 여려 보이지만 노오랗게 아름다운 꽃입니다.

봄에 심었던 수세미가 줄기는 치렁한데 가을이 되어가도록 꽃이 피지 않았습니다.

두 그루가 사이좋게 잘 자라 꽃도 보고 열매도 보겠거니 기다렸던 기대가 실망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침 출근길마다 혹시 꽃이 피지 않았나 살펴보는 게 습관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백과사전을 뒤져보니

수세미 꽃은 7월에서 10월까지 핀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직 희망이 있는 겁니다. 하지만 10월에나

꽃이 피면 언제 열매를 맺어 자란단 말인가요.

7월쯤엔 피어줘야 열매를 맺고 그게 자라 가을에 황금빛 수세미로 열릴 것 아닙니까.

 

그러나 지금은 꽃이라도 볼 수 있었으면 하는 게 절박한 내 심정입니다. 정성을 기울이고 기다린 보람도

없이 꽃도 피우지 못한다면 얼마나 억울하고 서운한 일인가요.


그런데 오늘 아침 출근하다 보니 노오란 꽃송이가 보였습니다. 놀랍고 반가워 달려가 봤더니

노오란 꽃 한 송이는 피었다가 그새 떨어져 이파리 위에 얹혀 있습니다. 그러나 줄기의 여기저기에

꽃몽우리가 맺혀 있습니다.


하찮은 식물임에도 저들은 결코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것입니다. 다만 때가 지나기도 전에 성급하게

실망부터 한 내 부끄러움이 큽니다. 때가 되어야 꽃봉이 맺히고 꽃이 피는 것,

그렇다면 언제 열매를 맺혀 수세미를 볼 수 있겠느냐는 내 의구심이나 불안함도

지나친 조바심일 것 같습니다.


수세미에게서 자연의 질서를 봅니다. 성급함으로 일을 그르치는 것은 늘 인간입니다.

씨를 뿌리면 싹이 나고 싹이 나면 자라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것이야말로 순리입니다.

그런데 순리를 믿지 못하거나 그를 역행하여 사는 것이 인간입니다.

제대로 씨를 심었다면 분명 날 것이고 정성을 기울였다면 의당 튼실한 열매를 볼 것입니다.

그것이 진리임을 다시 배웁니다. 내일 아침이면 몇 송이가 한꺼번에 필 것 같습니다.

내일은 더 일찍 일어나 카메라에 저들의 모습을 담아 두어야겠습니다.

내가 얼마나 기다리던 꽃인가요.

 

수세미꽃.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