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보속                                                      

 

고해성사의 긴 차례를 기다린다. 삶 속에서 알게 모르게 지은 무수한 죄가 한꺼번에 스쳐 지나가니 무엇부터 성찰을 해야 할 지 머릿속이 멍하다. 생각만으로, 말로, 때론 행위로써 얼마나 많은 사람을 단죄하며 아프게 했는가. 행여 남들에겐 교양 없는 인간으로 보일까 위선으로 침묵할 때도 많았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고백이 이어졌던가, 또 앞으로 몇 번이나 이같은 기다림의 자리에 서게될 것인가. 신자된 의무로서 행하는 고해성사가 아니라면 그나마 죄를 돌아봄 없이 살아갈 나를 생각하니 엄청난 두려움에 가슴이 쩡 한다.

길게 늘어선 신자들의 표정은 무척이나 숙연한 모습이다. 각자의 삶의 무게와 조건 속에서 하느님을 향한 희망의 끈을 굳게 붙들고 있는 각오에 찬 눈빛이다.

  

고해소에서 무릎을 꿇었다.

어두운 불빛이 장궤틀의 위치 만을 희미하게 비치고 있어 하마터면 넘어질 뻔 하였다.

방금 이 고해소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저지른 잘못 중에서 가장 심각한 내용들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어쩐 일인지 기억이 지워져 버렸다.

'나의 범한 모든 죄를 전능하신 하느님과 사제에게 고한다'며 내 입술은 습관처럼 읊고 있었다. 다시는 같은 잘못을 되풀이 하지않겠다는 결심을 몇 번이고 마음에 새기건만, 이미 나쁜 타성에 젖어버린 고백은 이어진다. 하느님께는 물론 가족과 이웃에게 못 다한 의무들을 나열하며 참으로 부끄러운 마음에 목이 멘다. 조금 더 겸손한 마음이었어야 했는데, 잠깐 더 기다려 주었어야 했는데, 더 많이 사랑할 수 있었는데. 어쩔 수 없는 나의 오만과 무관심으로 무너져 버린 것들을 모두 내어놓는다.

다시는, 다시는 그렇게 살지 않겠노라고 마음속으로 외친다.

 

사제의 훈계와 보속을 기다린다.

미국에 유학중이신 손님 신부님의 따뜻한 음성이다. 의례적인 권면일 것이라는 나의 짐작을 뒤엎는 차분한 말씀이 이어진다. 기죽은 마음에 용기를 불어 넣어주는 위로, 하느님의 가장 큰 사랑 안에 있는 나의 존재를 일깨워 주는 듯한 힘을 느꼈다. 지금껏 받아본 적 없는 신선한 보속이었다.

마주치는 이들에게마다 미소를 주라고, 이웃에게 사랑의 마음을 전하라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힘이 되어주라는 아름다운 보속이었다.

 

평화의 물결이 은은히 흐른다.

살아있기 때문에 용서받을 수 있음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죽음의 순간에는 하느님의 모든 은총과 회개할 기회마저 멈춘다지 않는가. 열심히 살아가자. 넘치는 축복에 끝없이 감사하자며 내 마음을 다독거린다.

비라도 곧 뿌릴 것 같은 회색빛 하늘, 구름 사이 햇빛과 작은 미소를 나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