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용서받는다

 

어지간히 메마른 겨울이었다. 극심한 물 부족을 겪고 있는 캘리포니아가 계속된 절수정책에 고심하며 극단의 처방을 내렸다. 식수를 제외하고는 제한적으로 물을 사용하도록 일깨우는 일이다. 그중에서 가장 효과적이며 반감이 적은 잔디 대체하기 작전을 주변 이웃들이 어느새 이룬 것이다. 나도 우리 집 앞마당의 잔디를 엎어내고 잔잔한 돌과 선인장으로 꾸미기 위해 한동안 물 공급을 하지 않았다.  보통 겨울 동안에 가끔 내리는 비로 마당 둘레에 심어진 나무들이 제법 자라나서 봄이면 싹을 틔우며 무성한 잎으로 여름을 맞지만, 이번에는 초여름이 다가오도록 겨우 작은 잎들을 매달고 있다.

누구나 꽃을 사랑하리라. 어릴 적을 떠올릴 때마다 수돗가 화단에 많은 색깔이 어우러져 피어있던 꽃이 그려지고, 남의 집을 방문할 때면 거의 꽃을 준비한다. 예전에는 이름도 모르던,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꽃들을 계절을 즐길 수 있으면서 받을 사람의 개성에 맞게 고르는 일이 아주 행복하다. 꺾어서 만든 한 다발의 꽃보다 예쁜 화분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땅에 옮겨심어 오랫동안 가꾸며 즐거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내게 준 화분의 꽃이 다 떨어져도 한두 해가 지나 다시 꽃망울을 피워낼 때의 환희는 어디에도 견줄 수 없을 만큼 크다.  정성껏 돌보아 온 대가인 셈이다. 그 꽃을 주신 분에 대한 기억이 새로워짐도 놓칠 수 없는  기쁨이다.

이웃과의 담장 노릇을 하는 큰 나무가 있다. 사이가 좋은 옆집이라면 굳이 없어도 될 듯한데 먼저 살던 사람도 그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은 것 같다. 커다란 달걀 모양의 원형으로 다듬어 놓아 가끔은 삐죽이 나오는 곁가지를 잘라내 주어야 한다. 처음부터 자연스럽게 놓아두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아침 가드너는 사다리 위에 올라 모터의 힘으로 돌아가는 큰 가위를 빠르게도 움직인다. 매끄러운 외형을 만드느라 잘리는 푸른 잎들이 공중에 휘날린다. 잠시 지켜보고 있다가 윗가지 끝에 하얗게 피어난 꽃대를 발견하였다. 분명히 꽃이었다. 나는 큰 소리로 가드너의 손동작을 중단시키며 그것은 자르지 말도록 청했다. 차마 꽃을 매달고 있는 가지를 쳐낼 수가 없었다. 사실 그 나무가 그런 꽃을 피우는 것조차도 난 모르고 있었다.

 

사람에게도 자신만의 꽃이 있다. 높이 매달려 있는 꽃망울은 알아채지도 못하면서 내 눈높이 만큼에서 상대를 평가하고 마음에 걸어놓은 적이 많았다. 내 겉모양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말로 소중한 부분을 또 얼마나 소홀히 하고 살아왔는가. 큰 나무가 되어 서 있는 내 모습을 본다. 여린 싹에서부터 시작된 인생은 때론 감당할 수 없을 무거운 가지들을 등에 업고 참아야 했다. 시간은 그렇게 흐르면서 푸름과 화사한 꽃잎의 향기에 취해 보기도 했으니 어려움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제 가위를 들어 가지치기할 때다. 밑동은 튼튼하게 지탱하되 온갖 부정적인 생각과 고통의 기억들은 말끔히 잘라내고 싶다. 내 삶에서 정리된 꽃가지 사이로 드러난 파란 하늘을 보리라. 만발한 꽃들의 노래도 즐겨보리라. 잘 피워낸 꽃을 벌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