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무지개 / 김영교 3/22//2017

 

 

오늘처럼 비 내리는 날이면 나를 젖게 하는 풍경 하나 떠오른다. 잊을 수 없는 풍경이다. 비 그치면 끝에 쌍무지게 뜰까?

 

 

그 날은 일요일, 가을비에 고속도로가 젖은 것 빼고는 이른 오후 교통은 복잡하지도 않았다. 주일 예배 후 댁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나의 선배 내외분의 3중 교통사고는 신문에도 아주 크게 보도될 만큼 처참했다. 중앙분리대를 들이박고 부인은 현장에서 사망하고 남편 선배님은 UC병원에 도착한 후 사망한 사고 소식이었다. 충격, 충격 그 자체였다. 어찌 이런 일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같은 날, 부부 같이 우리 곁을 떠나갔다. 내 고등학교 선배 내외분의 얘기였다. '청천 하늘에 날벼락’이 이런 때 적용되는 말이 분명했다. 장례식 날은 비 그친 뒤 끝이라 질척, 마음은 더 질척였다. 60번 고속도로, 그 젖은 길을 택하지 않았더라면 하고 부질없는 생각도 해보게 했다.

 

 

동창회 <한줄기>모임에 모처럼 참석한 지난 주말, 앞으로는 자주 얼굴보자 선배님은 직접 말씀 하셨다. 그게 바로 일주일 전이라고 믿어지지가 않았다. 아침이 되면 눈을 뜨고 일어날 수 있다는 것, 자고나서 신었던 신발을 또 신을 수 있을까, 손, 발, 몸을 움직이며 걸을 수 있고, 눈알을 깜박이며 듣고 말하고 볼 수 있다는 것, 숨을 쉴 수 있고 불편함 없이 음식을 먹고 맛있게 먹었다고 감사 할 수 있고 또 안면 근육 있는 대로 펴서 웃을 수 있는 것이 사실은 모두가 크고 작은 놀라운 기적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불현듯 살아있어 커다란 손 안에서 보호 받고 있다는 그 느낌이 전신을 감쌌다. 놀라운 각성이었다.

 

 

장례식에 많이 참석해 보았지만 부부 쌍 관을 놓고 치룬 이런 장례행사는 처음이었다. 읽은 적도 들어 본 적도 참석해 목격한 적은 더더욱 없었다. 사고 발생 시 차안에 자녀들이 동석하지 않아 그나마 얼마나 다행인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미혼 딸의 통곡이 하늘을 찌르는 듯 장내를 덮었고 내 가슴 깊이 파고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날은 10월 24일 엄마의 70회 생일이었다. 그토록 싱싱하던 육신이 지상에 머물렀던 한 생애가 한줌 흙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길, 그것도 생일이 그 귀의의 날이었기에 딸은 너무 억장이 무너져 저토록 가슴 아파하리라 싶었다. 

 

 

풀잎의 이슬 같은 순간적 존재가 인간이라 했다. 육체의 탐욕을 위해 쌓아 놓은 것, 모든 것 내려놓고 떨어져 가는 한 잎 한 잎의 사람 낙엽이었다. 나무는 봄이 되면 싹이 트지만 사람은 싹을 틔울 수가 없다. 지음을 받을 때 1회의 삶을 입력받았기 때문이다. 이웃의 죽음을 접함으로 겸손과 감사를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구원의 확신을 가진 선배 내외분께 주님 품에서 ‘편히 쉬소서’를 울먹여드렸다. 목숨의 소중함과 생명의 유한성을 두 눈으로 확인하는, 관속에 누운 훗날의 내 자신을 대입 체험을 하는 심각한 예식으로 여겨졌다. '나도 언젠가 죽을 목숨이구나' 겸허하게 창조주를 경외하는 지혜를 일깨워주는 체험실습장이기도 했다. 대속자 목수청년의 출현으로 가능해진 것이 분명 하나 있지 않는가. 인류에게 지상의 한계를 뛰어넘는 영생의 그 약속이었다. 그 약속을 믿기에 본향을 두고 이 세상 삶을 잠간 다녀가는 나그네 삶이라고도 하고 그래서 죽는 것을 돌아간다고 하지 않는가.

 

 

선배 내외분의 죽음을 가슴으로 받아드리기에는 너무 놀라워 나는 거부하고싶었다. 애처가로 소문난 선배님은 이 세상 떠날 때도 부부 함께 손잡고 떠나자고 기도하신 것은 아닐까, 우리를 놀라게까지 하면서 하나님은 그 소원을 들어 주신 것은 아닐까, 이런 저런 생각에 한없이 마음은 젖어들었다. 악수하며 따스한 체온을 느낀다던가, 말할 때 침이 튀는 성정으로는 만날 수 없는 아쉬움은 있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 안에서 나누고 베풀며 서로 사랑하고 감사하며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남은 자의 몫을 깨닫게 해 주었다. 이런 암시를 남겨주고 나란히 '이 세상 소풍 끝내고’의 천상병 시인 말처럼 아픔도 이별도 없는 천국에의 입성에 그제사 손과 마음을 포게어 드렸다.

 

 

창밖에는 비바람이 불고 있다. 계절을 재촉하는 이 젖은 비 소리 보다 더 크게 들리는 미혼 딸의 오열이 나의 단잠을 방해한다. 곁에 있다면 나는 그 딸을 다독이며 위로해주고 싶다. 황량한 삶의 들판에서 더 심한 고통의 폭우가 또 쏟아질 수도 있을 것이다. 믿음 하나로 잘 견뎌 내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뿐이다. 고운 장미꽃 환하게 뒤덮은 쌍관 주검에 피어나는 소망 한 가닥, 언약의 쌍무지개 소망이다. 딸아, 힘 내!

 

 

* 이 글의 주인공 최덕희, 심순복 내외분은 필자의 사대부고 선배부부.

67년도 도미 서울 상대 졸 Kotra 근무 남가주 거주

슬하에 결혼한 아들과 미혼 딸 하나 두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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