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브로큰<Unbroken>이 강추의 손짓을
그 안목은 관객을 감동의 물살속으로 그 압도시간 의 계곡으로 초대해주었다. 생명 파도가 높게 험하게 덮치는 먹먹함이 통괘한 기쁨으로의 전환 되면서 인간의 존엄성이 밑바닥 저 아래에서 아름답게 꽃피워 물살위로 떠올라 환하게 폈다, 절망의 순간에도.
고도의 장인 정신과 안목. 한 인간의 일대기가 동시대의 우리 세대의 이웃 아저씨 자서전을 읽는것 같이 선명했다. 감동. 내가 사는 이곳 Torrance 출신의 육상선수 루이 잠페리니 Louis Zamperini 의 실화를 바탕으로 엮었다. 큰길 신호등 네개만 지나면 있는 토랜스 비행장, 그 활주로를 잠페리니 필드로했다. 그 뿐인가, 육상경기장, 스테디움, 잠페리니 플라자등등
가난한 이탈리아 이민자 집안 의 아들로 태어났다. 3살 부터 남가주 이곳 토랜스에서 자라면서 서투른 영어로 따돌림을 경험했다. 이민자 가정이 겪는 동질의 애로사연에 같은 공감의식을 느끼게 만든다. 이민자로서 받는 냉대와 왕따를 달리기로 이겨낸다. 청소년기에 토랜스 고등학교 달리기 선수로 뽑히는 것을 계기로 전미국 고교 육상대회에서 신기록을 수립한다. 베르린 올림픽 국가대표 선수, USC (Univ. of Southern California)진학, 2차 대전 육군 항공대 입대, 임무수행중 피격. 흥미 진진한 인간드라마가 펼쳐진다. 태평양 한 가운데 추락 후 47일간 악전고투의 모습에서 그의 불굴의 정신을 엿보게 한다. 포로수용소의 노역과 악랄한 체벌, 종전과 함께 극적으로 생환. 한 인간의 역전 인생 드라마가 전체를 흐른다
숱한 상과 훈장, 명예학위가 깃빨처럼 휘날리는 삶의 활주로, 그게 다 였을까? 채워지지 않는 게 있었다. 잠페리니를 구원한 것은 그런 명예가 아니었다. 일본군에 대한 복수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에 대한 용서를 통해서 였다. 드리어 평화는 용서를 통해 완성된다는- 빌리 그래함 목사 의 감화로 크리스챤이 된다. 그 영향으로 신앙인-선교팀으로 일본을 용서. 그 용서가 바로 치유라는 것을 체득하게 된다, 치유는 용서를 통해서 왔다. 와타나베 일본군 간수와 악랄한 일본군을 종교적 힘으로, 복음으로 용서했다고 고백하는 잠페리니 <부서질수 없는 언브러컨>은 인간의 존엄성, 인간승리의 서사시다. 여운이 가슴에 남아 생명의 귀중함과 인류에 기여도등 세삼 세상을 깨우고 인간애를 상기시켜주는 영화였다. 잔상이 오래 남아 삶의 의미와 가치를 짚어보게 해주는 방향제시의 영화였다.
2014년 7월 2일 97세로 서거했기 때문이다. 많이 안타까웠다. 역사를 만든 그는 역사적인 장미 꽃전차 Rose Parade에 마지막으로 참여했드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만 불참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안타까움을 안겨주었다. 아쉽다, 아쉬웠다. 안식을 빌며.... 라고 그날 저널에 적었다.
정기적으로 나는 토랜스 메모리얼 병원에 검진과 치료를 위해 자주 방문한다. 그 병원 갈 때 나는 일부러 이 곳을 지나서 간다. 약간 돌지만 나는 크랜셔에서 Airport Way나 Skypark 길로 우회전 해서 잠페리니 비행장을 옆에 끼고 쭉 지나 간다. 번잡하고 복잡한 도시 한복판이다. 분주한 큰길을 벗어나 훤히 넓게 뻗어 있는 확 트인 비행장을 바라보며 운전할 때 기분이 아주 좋아진다. 시원한 활주로는 동서로 넓게 펼쳐저 있다. 그 옆길을 따라 천천히 속도를 늦추며 운전해 갈 때면 조그만 경비행기가 쉬고있는 활주로가 하늘과 맞닿아 있는 게 보인다. 그 펼처진 경치가 참 시원하다. 그가 추진하고 그가 남긴 족적들, 역사에 남아있는 루이 잠페리니 생생한 흔적을 떠 올린다. 후세에 남겨져 살아있는 생생한 업적들이 내 상념과 교류하며 함께 달려간다. 바다도 가깝지만 비행장이 가까워 나는 특히 잠페리니 비행장 가까이 살고 있는 토랜스 소시민의로서 긍지를 갖는다. 사랑한다. 환영한다. 언브로큰<Unbroken>이 강추의 손짓으로 우리들 곁으로 다가옴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