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소중한 기억들> 김영교의 수필세계

 

절제된 감정과 진솔한 삶

 

양 왕 용(시인, 부산대 명예교수,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이미 필자는 김영교 권사님의 시 세계를 <시와 신앙의 통합적 상상력>이라는 제목으로 살펴본 바 있다. 그 글은 국내의 문예지에도 발표되었고, 그 발표된 것이 LA의 배정웅 시인이 주도하는 <미주시학> 2013년 겨울호에 재게재되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 발간한 필자의 평론집 『한국현대시와 디아스포라』(2014, 작가마을>에도 수록되어 있다. 그런데 서울문학 출판부로부터 김 권사님이 수필집을 내면서 필자에게 해설을 부탁한다는 소식을 받았다. 사실 필자는 수필에 대한 글을 쓰는 전문가는 아니다. 이러한 뜻을 출판사 측에 내비추었으나 끝내 거절하지 못하고 결국 새 수필집에 수록될 수필들을 읽고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김 권사님을 처음 뵙게 된 것은 필자 내외가 큰 아들 내외가 2년 동안 머물고 있던 LA에 2011년 11월 초순부터 2012년 1월 초순까지 2 개월 방문한 동안 맨 처음 참석한 문학행사인 고원 문학상 시상식과 <문학세계>출판 기념회를 겸한 자리에서였다. 11월 17일 저녁 용수산에서 개최된 행사에서 경남 통영이 고향이라면서 경남 남해가 고향인 필자와 동향을 만나서 반갑다고 인사를 나누었다. 그런후, 11월 21일 점심 때에는 미주시인협회 문금숙 회장님의 초대로 가든 수위트 호텔 식당에서 시협회원들과 점심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 자리에서 시협 부이사장인 김 권사님을 다시 뵙게 되었다. .대화를 나누는 중 나성영락교회를 섬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필자가 오래 전에 출석했던 교회에서 전도사로 계시다가 나성영락교회 목양목사 이중수 목사님 안부를 묻게 되어 더욱 친근감을 가지게되었다. 2012년 9월에 개최된 경주 펜 대회에서 다시 뵙게 되었으며, 그 해 연말 LA에 다시 머문 1개월 방문 기간 동안에는 이 중수 목사님과 함께 식사도 하게 되었다. 김 권사님의 암의 극복과정과그 후의 시작 행위에 감동하여 앞에서 언급한 시세계에 대한 글도 쓰게 되었으며 수필집도 읽게 되었다. 시에 대한 글에서도 밝혔지만 김 권사님의 시작행위는 신앙과 분리된 것이 아니라 통합된 것이며 신앙시집이라고 밝히지 않은 시집에서도 무의식적 신앙시, 달리 말하면 기독교적 세계관이 형상화된 작품들이 많았다.

 

지난번의 수필집 『꽃구경』(2012, 서울문학출판부)의 수필들에서도 김 권사님은 시작 태도와 같이 신앙과 문학을 분리시키지 않은 글쓰기 자세를 견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장르의 특성상 그의 모습과도 닮은 학 같은 기품을 갖추고 있었으며, 삶에 대한 진솔한 고백을 직접적으로 하는 작품들이 많았다.

 

김 권사님은 외국유학이 어렵던 1960년대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교육부(그 당시는 문교부) 유학시험에 합격하여 뉴욕의 명문 콜롬비아대학에 유학, 미국에 정착하게 되었으며 영주권 때문에 고생하는 등 어려운 이민생활을 하였다. 지금은 사업하는 부군과 함께 LA 근교에서 두 아들은 잘 교육시켜 큰 아들은 목회자로 , 둘째는 남편의 사업을 이어받고 있다. 김권사는 나성영락교회권사로 오랫동안 신앙생활 그것도 헌신적인 봉사를 하면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또한 시창작 교실과 SB 글사랑 교실을 지도하는 등 후학 양성에 전념하고 있다. 이러한 보람 있는 삶이 그대로 묻어나는 것이 바로 김 권사님의 수필 세계이다.

 

김 권사님의 이 번 수필에는 김 권사님이 최근에 접한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이 제재가 된 작품들이 많다. <생각 있는 잎새>에서는 두 달 동안의 여섯 번의 장례식과 그에 관련된 상념들이 형상화 되어있다. 그리고 선배 부부의 교통사고로 인한 죽음(<가을 비>), 친구 딸의 불행한 죽음(<어떤 해후>)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가까운 이들의 죽음에 대하여 슬픔을 직설적으로 들어내지 않고 있다. 말하자면 슬픔을 절제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슬픔을 절제하는 원동력은 그의 신앙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오래 된 얼굴 하나>는 1950년대 <문예>지를 통해 데뷔한 큰 오빠 김대규金大奎 시인과 얽힌 추억과 큰 오빠의 사고 소식에 태평양을 건너가 임종의 병상을 지킨 오누이의 사랑을 자세하게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그에게 큰 오빠는 10년이나 차이 난 나이였지만 그를 소녀 시절부터 문학의 길로 인도한 스승이자 멘토였다. 죽음 직전의 시어머니의 모습이 제재가 된 <늙지 않는 눈물>과 <소통의 굴뚝> 그리고, 시어머니 묘소 참배(<어떤 해후>)에서는 그의 시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담뿍 묻어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절제된 슬픔이 오히려 필자를 감동하게 만들었다.

 

다음으로는 이웃(<사랑의 집게>,<프리웨이에서>,<팔베개 쑥 베게>)과 친척과 자식의 삶(<눈은 마음의 창>,<가슴으로 낳은>)이 제재가 된 작품들에서는 그의 진지하고도 진솔한 삶의 자세가 그대로들어나고 있다. <팔베개 쑥 베개>의 경우 친구들과의 우정이 돋보이는 작품이며, 오랜 이민 생활 속에서도 자연과 한방치유를 즐기는 김 권사님의 전통지향적인 삶의 태도를 본받아야겠다는 생각을하게 하는 작품이다. 특히 목회자인 그의 큰 아들 내외의 이야기인 <가슴으로 낳은>에서는 아들 내외의 처조카 양육과 기러기 엄마가 남긴 두 아들 입양에 대한 이야기가 제재가 되고 있다. 미국에서태어나고 자란 교포 2세인 큰 아들의 가족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목회자의 자세와 입양에 대한 이웃 사람들의 태도는 우리 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휴매니티를 느낄 수 있었다.

 

김 권사님 자신의 삶에 대한 긍정적 태도를 분명하게 보여준 글들도 많다. 그러한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은 <짧음의 미학>이라고 볼 수 있다. 3대 독자 가문에 둘째 아들을 낳았을 때의 안도감, 베토벤 교양곡 9번 들을 때의 행복, 아이리스 꽃의 만개와 그에 얽힌 사연에서의 행복과 같은 작은 행복에서 좋아하는 일, 특히 글 쓰기의 행복까지 많은 것들에서 그는 행복을 느끼고 살아왔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는 그의 삶을 슬플 때와 외로울 때, 그리고 아플 때보다 행복한 순간들이 더 많았다고 긍정적으로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살기를 소망하고 있다. < 그 사람이 옷이라니깐>에서는 자기 자신의 옷 입는 습관에 대하여 자세하고 깊은 사유를 하고 있다. 끝 부분에서 자연스럽게 신앙고백을 하는 점은 일상과 연결된 원숙한 크리스천으로서의 삶의 태도를 엿볼 수 있었다. <가시나무 고기>는 산행 체험과 신선한 자연들이 제재가 된 작품이다. 이 작품 역시 일상생활에 대한 긍정적 태도가 돋보이고 있다.

 

어떠한 경향의 작품이든 그는 삶에 대하여 긍정적이고 진지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 심지어 죽음이 제재가 된 경우에도 그렇다. 이러한 글쓰기 태도는 그의 평소의 삶의 자세에서 나왔을 것이다. 이러한 삶의 자세가 두 번의 암을 물리쳤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신앙에서 나오는 천국에의 소망이 슬픔도 고통도 이기게 한 것이라 생각한다. 김권사님의 행복한 글쓰기에 박수를 보내며 그의 수필에 대한 소감을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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