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인가, 신인류인가

 

                                                                                                                                                    한영

 

  

   ‘나는 구름 위에서 살기 때문에 주소가 없어!’ 조카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 집 주소를 알려달라고 연락한 그녀에게 보낸 답장이었다식료품이 필요하지 않으냐고, 얼마 전에 내게 물었다먹을거리를 주문해주려고 하는 것 같았다. 사양하고 싶어서 주소를 주지 않으려 하긴 했지만 엉뚱한 답이 됐다.

 

   요즈음 매일 창밖을 쳐다봐서 그런가 보다나갈 수도 없고, 하고 싶은 일도 별로 없으니 많은 시간을 창문 밖 풍경을 보며  지낸다주룩주룩 내리는 겨울비를 보기도 하고 조금씩 색깔이 변해가는 나뭇잎을 보기도 하지만 제일 많이 보는 것은 구름이다기분에 따라서 구름의 모양이 다르게 보이기도 하고때로는 그 모습 때문에 기분이 변화되기도 한다. 

잠시 후 조카는 휴대전화의 메시지로 ‘하하하를 많이도 써 보냈다문자에도 표정이 있는가 보다. 그녀가 고개를 뒤로 젖히고입을 크게 벌리고 웃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연이어 ‘구름 위에서 사는 것은 천사뿐이야’ 하는 그녀의 메시지가 왔다. 그렇구나, 하고는 조카에게 집 주소를 주고 말았다.

 

 

   그래, 구름 위에서 사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땅을 딛고 사는 것 같지도 않다. 그럼 어디에 사는 거지? 마음도 생각도 안정되지 않고 붕 떠 있는 것 같다. 비즈니스를 했었기 때문에 비교적 일찍 컴퓨터를 만지기 시작했고, 사이버 세상을 알게 됐다. 전자메일을 보내게 되면서 예전처럼 손편지를 쓰고 부치고, 다시 답장이 오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신기한 세계를 경험하기도 했다. 그러나 모든 게 너무나 빠르게 변해서 이제는 남의 꽁무니를 따라가기도 힘들다.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나도 참여해서 존재를 알리지 않으면 잊히고 마는 듯하다. 목이 마를 때, 소금물을 마시면 점점 더 갈증이 나듯이 끊지 못하고 자꾸 빠져든다. 집에 묶여있는 요즈음은 더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시간의 개념이 없어져 버렸다. 이제 지루함이란 없어 보인다. 너무 바빠서 다른 것을 할 여유가 없다. 꼭 해야 할 중요한 일도 뒤로 미루고 때로는 아주 잊어버린다.

   휴대폰에 잡혀서 공중부양을 한다. 선을 따라서, 요즈음은 줄도 없이 공중을 난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과 만나고 대화한다. 밤에도 늘 깨어 있다. 불면의 밤이 길어지며 점점 좀비가 되어가는 것 같다. 세상에는 나 같은 좀비가 너무 많다. 그들은 시차로 움직이긴 하지만, 항상 어딘가에 있다. 어디 있는지 모르는데 갑자기 나타나기도 하고 한꺼번에 싹 사라지기도 한다. 그들이 잠잠하면 불안하고, 나타나면 요란하고 시끄럽다. 하루 24시간 일주일에 7일 쉬지 않고 몰려오고 몰려간다. 무리에 끼어 다니는 것은 혼자서 뒤처질까 두렵기 때문일 것이다. 외로워지는 게 싫어서 초조하게 서성인다. 문득 거울에 비치는 모습, 밤을 잊은 꽹한 얼굴은 진짜 좀비를 닮은 모양새다.

 

   좀비들은 각자 논다. 때론 같이 있되 자신이 할 일에 몰두할 뿐이다. 좀비가 된 사람들은 숨어들어 서로를 피한다. 대부분은 혼자 어두운 곳에서 웅크리고 있다가 같이 있고 싶을 때만 나타나고 마주쳐도 서로 외면한다. 앞만 보고 달린다. 그런 것이 용납되는 세상이 때로는 편하다. 반드시 만나야 할 때도 거리를 둔다. 좀비가 되었으나 문득 외로워진 어느 날,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다. 그러나 만날 마음도, 준비도 되어있지 않은 그들은 그저 스쳐 지나간다. 넓은 공간을 각자의 선호도에 따라 자기만의 속도로 무한한 시간 속에서 헤맨다. 점점 그런 것에 익숙해져서 만남은 끊어져 버린다. 좀비들이 많은 세상은 점점 다른 세상이 된다. 그렇게 변해버린 인간들, 새로운 세상을 사는 사람들, 그게 신인류가 아닌가? 나는 좀비인가 신인류인가 아니면 그 길로 가고 있는가.

 

    너무 오래 집에 갇혀 있었다. 생각이 자꾸 공중에서 떠돈다. 아무래도 길을 잃어가고 있다는 불안한 느낌이 든다. 얼핏 잠이 들었던 가 보다. 꿈속에서 나는 두 팔을 든 채 외치고 있었다.

나 다시 돌아갈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