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바벨탑 위에서 /중앙일보/이 아침에 11/2/2020
코로나의 계절 겨울이 마치 간 보듯 주춤거리며 첫발을 들이민다. 우리 삶은 뒤죽박죽인데 우주는 질서정연하다,
이번 가을 학기에 손자가 처음으로 한국어를 수강신청 했다.
며칠 전이다. 손자가 엄마 곁으로 조용히 다가오더니 한국말로,
“나는 영민이입니다.”하더란다.
영민은 손자 데이빗의 한국 이름이다. 완전 영어권이던 아이가 던진 한마디는, 손자가 어려서 처음 말문을 열었을 때와 맞먹는 일대 사건이었다. 딸네로 건너가서 간식을 먹고 있는 손자와 대화를 시도했다.
“나는 할머니입니다.”
데이빗은 당황해서 ‘오 마이 갓’ 하더니 제 방으로 달아났다. 처음 배운 한국어 문장을 한 번 연습해 봤을 뿐인데 어른들의 반응이 지나쳤나 보다. 손자가 앞으로 치러야 할 긴 한글과의 전쟁이 안쓰럽다.
전공으로 선택한 프랑스어와 미국의 일상어인 영어, 그리고 우리말의 늪에서 평생을 허우적거린다. 프랑스어는 끊임없는 연구와 조탁으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자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지만손 본 만큼 섬세하고 까다롭다. 영어를 이해하는데 프랑스어 전공은 조금도 도움이 안 된다. 두 언어는 글자의 생김새만 비슷할 뿐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있는 ‘영불 해협’의 깊이만큼 다르다. 그 해협이 가르는 북해와 대서양만큼이나 그 기원과 어순과 동사 활용에서 차이가 난다. 가진 수를 초기에 다 내 보이는 프랑스어에 비해 영어는 좀처럼 그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언어라는 생각이 든다.
외국에 살면서 문법과 띄어쓰기를 거의 잊어버린 모국어로 글을 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자주 바뀌는 우리 국어 맞춤법은 복잡한 가전제품 조립 설명서처럼 여간해서 익숙해지지 않는다.
70세에 교통사고를 내서 아쉽게 운전대를 놓은 언니는 나를 운전 도우미로 수시로 호출했다. 철 따라 감나무밭, 대추농장 원정은 물론이고 때론 친구들의 병원 출입도 도와주기를 원했다. 언니가 당당하게 권하는 차편을 이용하던 언니의 지인들은, 며느리나 딸이겠거니 했다가 차를 몰고 나온 늙수그레한 동생을 보고 대개는 미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한국인 심장 전문의들이 ‘불친절해서’ 미국인 의사와 예약을 했다는 언니의 지인을 위해 그날은 내가 기사 외에 통역까지 겸하게 되었다. 심전도와 여러 가지를 체크한 후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자 노인네가 영 미심쩍어했다. 의사는, 원한다면 하스피탈에 가서 심장 체크 다시 하고 여차여차한 검사를 해보고 그때도 이상이 없으면 'leave it alone' 하라고 했다. 한마디로 심장 이상 없음이 선포됐는데 오피스를 나서는 노인네가 퍽 섭섭한 표정이다.
“아니, 심장이 그렇게 튼튼하면 재혼을 하라고 해야지 왜 혼자 살라고 하지?“
'신경쓰지 말라(leave it alone)'는 말을 ‘혼자 살라(live alone)'로 알아들으신 거다.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태초에 우주에는 하나의 언어밖에 없었다고 한다. 인간이 하늘에 닿으려고 바벨탑을 쌓자 신이 노해서 우주의 언어를 흩으셨단다.
세 개의 언어 가운데서 끝없이 헤매는 나는, 어쩌면 바벨탑의 가장 높은 곳에서 작업하다 신의 눈총을 받게 된 어느 무리의 후손인지도 모르겠다. 내속의 유별난 고소공포증 DNA로 미루어 볼 때 그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글을 쓸때 가장 어려운 부분이 첫문장인데
글을 이끄는 첫문장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