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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주년 한인의 날 축제 시화전에 선정된 나의 시에 대한 표창이다. 신춘문예 회장과 함께

 

 

잃어 버린 워커

                                                        김수영

   50주년 한인의 날 축제가 엘에이에서 개최되었다. 10월 12일에서 15일까지였다. 오렌지 카운티에 사는 나로서는 엘에이에서 열리는 어떤 행사도 참석하기 참 힘들다. 나이 탓에 장거리 프리웨이 운전은 삼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행사에는 나의 서화작품도 전시 된다고 해서 꼭 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행사장에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어 멀리 사는 딸에게 도움을 청했다. 내 시화전이 열리는 엘에이에 가야하는 데 라이드를 해주면 좋겠다고 했더니 기꺼이 오겠다고 했다. 딸은 새크라멘토에서 단숨에 달려왔다. 어찌나 고마운지 마음이 울컥했다. 본인 스케쥴 모두 취소하고 배행기를 타고 왔으니 엄마를 위해 희생하는 딸이 몹시 대견스러워 고마다. 

   토요일 일찍 일어나서 오렌지 카운티에서 엘에이로 달려갔지만 주차할 장소가 없었다. 행사장 근처를 빙빙 돌아 보아도 주차가 불가능했다. 할 수없이 먼 곳에 주차했다. 걸어서 멀리 있는 행사장까지 갈 일이 태산 같았다.

   지난 7월에 집에서 넘어져 무릎과 허리를 많이 다쳐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퇴원 후 두 달 동안 열심히 치료 받아 겨우 걸어 다니고 있었다. '혹시' 하고 워커를 자동차 트렁크에 넣어 가지고 간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 몰랐다. 워커에 읮해 먼길을 걸어갈 수 있었다.

먼저 전시장에 들러 시화전 관람을 하고 딸과 함께 기념 사진도 찍었다. 미술작품도 많이 전시 되어 있었다. 행사장에는 사라마들로 북적였다. 걸어다니기 조차 힘들었다. 그런데 워커를 끌고 다려니 진땀을 뺐다. 한국에서 들여 온 신선한 농산물을 사고싶어 부스마다 기웃거려 보았지만 너무 붐벼 상품을 사기도 힘들었다. 더욱이 워커를 끌고 다녀야 하니 이중삼중으로 고역이었다. 부스 마다 각양각색의 한국 상품이 진열되어 모두 구경하고 싶었지만 사람들 사이 헤집고 다니기가 너무나 힘들었다. 

   다행히 딸이 옆에서 많이 도와 주어 부스를 헤집고 들어가 상품을 좀 살 수가 있어서 그나마 퍽 다행한 일이었다. 기름 바르지 않고 살짝 구운 햇김이 정말 맛이 좋아 한 팩을 샀다. 완도 다시마, 완도 미역, 표고버섯 말린 것 등 다양하게 사다보니 짐이 많아졌다. 다행히 워커 손잡이에다 플라스틱 백을 주렁주러 매달 수 있어서 좋았다. 힘들게 워커를 끌면서 오리처럼 뒤뚱거리며 다니는 내 몰골이 정말 우스꽝 스럽게 보였으리라 생각하며 혼자 미소지었다.

   화장품 부스에 갔더니 마음에 드는 세안비누가 있어 구매했다. 비누를 워커 플라스틱 봉지에 넣으려고 옆으로 몸을 돌리는 순간 앗 어찌된 일인가! 나의 워커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하늘이 노래져 내 워커가 없었졌다고 사람들 틈을 헤집고 다니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도둑이야! 도둑잡아라”라고 고함을 지르며 뒤뚱거리며 주위를 주위를 살펴보아도 내 워커를 찾을 수가 없었다. 워커 주머니에 둔  지갑에는 현금과 함께 크래딧 카드, 운전면허 등 들어 있어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청천에 날벼락 맞은 기분이었다.

   순간 딸을 찾아 딸의 도움울 청하기고 했다. 체면 불구하고 큰 소리로 딸 이름을 부르며 찾았는데 바로 옆 부스에서 딸이 내 워커를 갖고 상품을 사고 있지 않는가! 나는 그 동안 지옥을 헤매고 다녔는데 딸은 태연하게 상품을 사고 있지않는가! 그 때 느꼈던 안도의 한숨! 겪어 본 사람은 내 심정을 이해하리라. 찰라에 일어났던 어처구니 없는 나의 쇼! 사람들이 많았기 다행이지 워커도 없이 허둥대며 이리저리 찾아 헤메는 모습 정말 가관이였을 것이다. 나 스스로가 나 자신의 몰골을 생각하며 웃음을 참느라 애를 썼다.

   집에 돌아와서 구매한 물건을 딸과 나누어 가졌다. 행사장에서 지옥과 천국을 오가며 연기를 했던 무명의 노여배우의  웃지못할 연기에 한 바탕 소리내어 같이 웃었다.

   “엄마는 왜 그렇게 웃기세요. 놀란 토끼처럼 허둥대며 워커를 찾아 헤메던 모습을 보았더라면 포복절도를 할 뻔 했어요. 엄마는 나이가 드시니 정말 어린애가 되어가시네요. 이젠 제발 그만 웃기세요.” 그당시 놀라 기겁을 한 내 심정 헤아지 못하는 딸에게 섭섭함도 잠시, 둘이서 얼굴을 마주 보며 한 바탕 웃었다.

   바로 옆 부스에 내 워커를 가진 딸도 보지 못한체 사람으로 붐비는 그 좁을 골목을 절룸거리며 놀란 토끼처럼 워커를 찾아 헤메던 모습 정말 우수꽝 스럽다고 딸과 웃고 또 웃었다. 모든 스트레스가 확 풀렸다. 엔돌핀이 팡팡 쏟아졌다.

   워커를 찾아 들고 행사장을 다시 돌아다니는 데 한국전쟁 직후 시골에서 열리던 장날이 생각났다. 삼일 마다 열리는 삼일장 오일마다 열리는 오일장이 있었다. 엄마와 함께 장날 손 붙잡고 다니던 생각이 떠 올랐다. 특히 나는 엿을 좋아해 엿 사먹고 오던 추억이 삼삼히 떠 오르면서 돌아가신 어머니가 몹시 그리웠다.

   어머니는 장날이면 안동 간고등어를 한 두루미 사다 처마밑에 걸어두고 아버지 밥상에 올렸다. 전쟁 직후라 소고기 먹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아버지 상에 올라 간 간고둥어가 왜 그렇게 먹고 싶던지 침을 꿀꺽 삼키는 를 보고 아버지는 내게 고등어를 주셨다. 어찌나 맛이 었던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버지 사랑에 목이 다. 부모님 모두 돌악시고 안 계시니 그때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하고, 그 어려움을 딛고 발전한 대한민국이 무척 자랑스럽기도 하다.

   이번 행사를 준비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를 드린다./중앙일보 문예마당/2023년 11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