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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                                         

 

   짜장면은 서민들이 좋아하는 중국 음식이다. 언제부터 짜장면이 우리나라에 서민 음식 문화로 자리 잡게 되었는지 궁굼하다. 짜장면은 1883년 인천항이 개항되면서 인천에 청국지계가 만들어지고, 이때 물밀 듯이 들어온 중국인들이 부두 노동자들을 상대로 팔았던 싸구려 음식이다. 곧 중국 산둥 지방에서 전해 내려오는 밀가루 장을 볶아 국수 위에 얹어 비벼 먹게 한 것이 짜장면인데, 그래서 한자로 쓰면 불에 튀길 작(炸), 간장 장(醬), 밀가루 면(麵)하여 ‘작장면’(炸醬麵)이다. 그런데 ‘작’(炸)은 혀를 입 안으로 말아 올리면서 ‘짜’에 가깝게 발음되기 때문에 현재의 표준말인 ‘자장면’보다는 ‘짜장면’이 더 맞다. 안도현은 어른을 위한 동화 <짜장면>에서, 자기는 어떤 글을 쓰더라도 짜장면을 자장면으로 표기하지 않겠다고 한다. ‘자장면’은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것일 뿐, ‘짜장면’의 추억이 가득한 아이들에게 맞춤법이라고 하여 ‘자장면’이라 할 수는 없을뿐더러 어느 중국집도 ‘짜장면’일 뿐일 것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짜장면으로 발음을 해 왔기 때문에 자장면 보다는 짜장면에 더욱 친근감을 느낀다. 짜장 특유의 맛 때문에 짜장면이 우리에게 인기가 있는 것 같다. 짜장을 무엇으로 만드는지는 나는 잘 모른다. 중요한 사실은, 이상하게도 나는 짜장면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대신 짬뽕을 좋아했다. 곁들여 다른 요리를 주문해서 먹곤 했다. 손녀들은 짜장을 어찌나 좋아하는지 온 얼굴에다 짜장을 칠갑하고도 맛있게 먹는 모습이 희극 배우를 보는 것 같아 배꼽을 쥐게 하지만, 그렇게도 잘 먹는 모습이 나에겐 신기하기만 했다.    

   그런데 나에게 요즈음 이변이 생겼다. 짜장면을 별로 좋아하지 않든 내가 짜장면을 사 먹으러 중국 식당을 자주 드나들게 된다는 사실이다. 내 입맛에 변화가 생긴 것도 아닌데 참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와 친분이 두터운 분이 경영하는 중국식당 ‘취성루’ 때문에 내 입맛에 변화가 온 것 같다. 이 분은 모든 사람에게 존경을 받는 훌륭한 분이다. 이 분이 경영하는 ‘취성루’에서 는 짜장면 한 그릇에 2.99불에 판다고 그 동네에 소문이 자자 하다. 나는 처음에 생각하기를 ‘싼 것이 비지떡’이란 옛날 속담처럼 싼 대신 별로 맛이 없겠지 하고 나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어느 날, 이 식당에 갈 일이 있어서 내 친구와 둘이서 찾아가게 되었다. 저녁인데도 앉을 자리가 없어 한참을 기다렸다가 자리에 앉게 되었다. 주인인 이 분은 얼마나 반가워하는지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나는 값싸다는 짜장면을 주문했다. 일년 반만에 $3.99로 올렸는데도 낮에는 앉을 자리가 없어 기다렸다가 식사를 한다고 했다. 이 불경기에도 불구하고 문전성시를 이루는 ‘취성루’기업 정신을 이분께서 말씀해 주셨다.    

   한국에서 큰 기업을 경영하다가 파산을 하고 그야말로 맨손으로 이곳에 도착했는데 처음에는 살길이 막막 했단다. 무엇을 할까 하고 시내를 아내와 둘이서 돌아다니다가 하루는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식당을 찾았다. 중국 식당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짜장면을 사 먹으려고 주머니를 털어 봐도 두 사람 식사비가 없었다. 짜장면은 포기하고 배고픈 서러움을 달래며 집에 돌아왔다. 아내가 두 다리를 쭉 뻗고는 참았던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는 모습을 보고 무엇인가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 후 수년이 흐른 후 갖은 고생 끝에 칠전팔기의 정신으로 일어서 취성루를 경영하게 되었다. 고생했을 당시의 추억을 떠올리며 결심한 데로 배고 픈자의 서러움을 덜어 주기 위해 $2.99의 싼값으로 서민들이 먹을 수 있게 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아내가 돈이 없어서 짜장면을 못 사 먹고 발걸음을 돌렸던 때의 아픈 기억이 동기가 된 것이라 말했다. 그러면서도 음식값이 싸다고 절대로 싸구려 재료는 쓰지 않고 최상급 재료를 쓴다고 하였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짜장면에 익숙지 않았던 나의 입맛에 꼭 맞아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맛이 매우 좋았다. ‘입맛은 못 속인다.’는 옛말처럼  손님이 먼저 맛을 알기 때문에 싼 재료로 맛없게 만들면 손님이 뚝 끊어진다고 하였다.    

   나는 이 분의 얘기를 다 듣고 나니 어쩐지 마음이 흐뭇해 졌다.. 불경기로 인심이 얼어 붙은 요즈음 우리를 훈훈하게 녹여주는 미담이 아닐 수 없었다. ‘취성루’는 고구려 역사에 나오는 술집을 겸한 식당 이름이다. 대조영이 발해를 건국하는 과정에  고구려 요동 땅에 세워진 술집으로 겉으로는 당나라 고관대작들에게 유흥을 제공하지만 사실은 항당운동에 군자금을 대는 장소로 유명했다. 당나라로부터 고구려를 구하려는 당나라 요인 암살 모의 장소로도 유명했다. 이러한 연유로 ‘취성루’란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고 이 분은 말씀 하셨다.

   엄청난 축복이 이 식당에 쏟아지리라 생각하면서 나는 집을 향하여 가벼운 발걸음을 옮겼다. 취성루 주인의 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삶이 무지개처럼 황홀하게 꽃필 날을 그려 보았다..(2010년)/늘 추억의 저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