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 밑에 까만 점이 모두 벌들이다
벌(bee)과의 전쟁
오 년 전에 뒤뜰 처마 밑에 무수한 벌들이 벌집을 지어 진을 치고 사방에 날아다니며 살고 있었다. 그 당시 멕시코에서 날라온 살인 벌이 오렌지 카운티에 날아와 여러 명의 사람이 벌에게 쏘여 죽은 일이 보도되었다. 주민은 벌에게 물리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하라는 보도가 있었다. 살인 벌인 지 아닌지 확인은 안 해 보았지만 나는 겁이 나서 페스트 컨터롤 회사에 전화해서 벌들을 깡그리 죽인 일이 있었다. 그리고 난 후 몇 년 동안 잠 잠 했는데 갑자기 한 달 전부터 벌떼들이 같은 장소에다 벌집을 또 지어놓았다. 윙윙 소리를 내면서 자기들 세상 만났다는 듯이 활개를 치고 처마 밑을 맴돌며 날아다니고 있다.
살인 벌이 아닐지라도 벌침에 쏘이면 쑤시고 아파서 벌 소탕작전을 펴기로 했다. 올해에도 페스트 컨터롤(Pest Control)회사에 의뢰해서 벌들을 없애야겠다고 마음먹고 예약을 하려고 벼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경남 밀양 얼음골에서 사과 과수원을 하는 친구한테서 편지 한 장이 날라왔다. 작년에는 풍성한 사과 수확을 거두었는데 올해는 흉작이 될까 봐 걱정이라며 한숨 어린 내용이었다. 올해에는 벌이 별로 없어서 사과 꽃이 수정이 잘 안 되어 인공수정을 해서라도 사과수확을 해야 한다며 걱정이 태산이라고 했다.
나는 그 편지를 받아보는 순간 벌 소탕작전 계획을 전면 취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 뒤뜰에도 레몬, 오렌지.아보카도 나무가 있어서 벌들이 이들 꽃의 수정을 도와주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구 온난화로 기후변화가 일어나 벌들이 많이 자라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사실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생명과도 직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과일 수확이 급격히 줄고 오이 호박 도마도 등 꽃 열매로 이루어지는 채소나 과일의 생산량이 급감하여 소비자 가격이 올라갈 뿐 아니라 식량이 그만큼 줄어들어 인간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벌을 죽이지 않고 쫓아내어 다른 곳으로 이동시켜야겠다고 생각을 바꾸었다. 뒤뜰에 나가다 벌에 쏘일 수도 있고 정원사가 잔디 깎다가 쏘일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쫓아낼 방도를 마련해 보지만 뾰족한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고무호스를 이용해 강한 분무기를 달아 수돗물을 벌에게 뿌려 다른 곳으로 날려 보내겠다고 생각하고 며칠을 물을 뿌려 보았다. 좀 잠잠한 것 같았는데 며칠 있다가 또 모이기 시작하였다. 물벼락을 쏘아 댔지만, 헛수고로 막을 내리고 내 옷만 몽땅 젖어 세탁하는 번거로움만 더해졌을 뿐이다. 궁리 끝에 그냥 내버려두기로 했다. 벌들의 수명이 길지 않고 날씨가 쌀쌀해지면 벌은 다 죽기 때문이다. 벌에게 쏘이지 않도록 조심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벌 때문에 신경을 써서 은근히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스트레스가 사라지게 되어 다행이었다.
벌은 꽃들의 수정을 도와 열매를 맺게 할 뿐 아니라 꿀을 만들기 때문에 인간에게 참으로 유용한 곤충이다. 그런 곤충을 나에게 유익이 없다고 몇 년 전에 몰살시킨 나의 무지함이 부끄럽기도 하고 안타까운 생각마저 들었다. 수년 전 약을 잘 못 먹어서 의식을 잃고 혼수상태로 응급실에 실려 간 일이 있었다. 일주일 동안 병원에 입원하는 소란을 피웠지만 불행 중 다행하게도 일주일 후에 의식이 돌아와 퇴원하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왔으나 입맛을 잃고 원기가 빨리 회복이 안 되어 고생하고 있었다.. 친한 친구가 문병 왔다가 파김치가 다 된 나를 보더니 생 로열젤리를 한 번 복용해 보라고 적극 권유를 했다.
나는 친구의 권유대로 생 로열젤리를 육 개월 치를 주문해서 상복을 했는데 놀랍게도 효능이 탁월하여 거뜬히 병상에서 일어날 수가 있었다. 그 후 나는 로열젤리의 성분이 궁금하여 좀 알아보았다. 로열젤리는 보통 부화가 된지 5-15일 정도 된 어린 일벌이 꿀과 화분을 원료로 하여 인두 선에서 분비되는 유백색의 물질이다. 이것은 벌꿀과는 성분이 전혀 다른 것으로 새콤한 맛을 지니고 있으며 일벌의 왕대에 모인다.
이러한 로열젤리는 여왕벌과 장차 여왕벌이 될 애벌레에게 영양분으로 제공된다. 부화된 수천 마리의 애벌레 중에서 로열젤리를 제공 받은 애벌레만이 여왕벌이 되고 나머지 애벌레는 일벌이 된다. 그리고 로열젤리를 먹고 자란 애벌레는 다른 애벌레보다 3배나 빨리 성장하고 수명은 무려 30배나 길어 4-5년을 살면서 평생약 3 백만 개의 알을 낳는다. 이와 같은 여왕벌의 엄청난 산란능력과 스테미나는 바로 로얄젤리의 특수한 성분이 효과적인 것으로 밝혀졌다.
여왕벌이 두 마리가 될 경우 이 두 마리는 일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한쪽이 죽을 때까지 싸운다. 살아남은 여왕벌은 로열젤리를 먹고 자라는 다른 애벌레들을 모두 독침으로 쏴 죽여버린다. 일벌과는 달리 여왕벌은 독침을 여러 번 사용할 수 있다. 일벌들은 결국 30-40일밖에 못 살고 기꺼이 죽어가는 것이다. 한 마리의 여왕벌을 주축으로 다시 벌집은 돌아가는 것이다.
로얄젤리의 효능은 완전식품의 영양분을 지녔다. 자연이 준 최고의 건강식품인 로얄젤리의 성분을 살펴보면 종합 비타민이 풍부하고 빈혈의 특효인 엽산(Folic Acid)을 대량 함유하고 있으며 여덟 종류의 필수 아미노산과 열 가지의 단백질을 함유하고 있다. 로얄젤리는 우리 인체 내에서 대사, 호르몬, 면역과 중추신경의 네 가지 요소를 정상으로 유지하는 작용이 있다. 특별히 10H2DA는 항균 제압물질로 암 예방 및 암세포 성장억제를 하고 R 물질은 미지의 물질로 생명력의 근원으로 알려져 있다.
여왕벌은 처음부터 여왕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일벌이 여왕벌을 만든다. 일벌이 온 힘을 다하여 꿀과 화분을 통해 자기 몸 인두 선에서 분비하는 최고 영양제가 로열젤리다. 로열젤리를 먹여서 키운 여왕벌을 결국 일생을 따라다니며 자손을 번식시키고 여왕처럼 섬기다가 아름답게 죽어가는 일벌들.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 인간이 본받아야 할 희생정신이 아닌가 싶어 일벌들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일벌들은 자기 생명과 같은 값진 로얄젤리를 다 쏟아부어 여왕벌을 키우고 자기는 미련 없이 죽어가는 것이다.
뒤뜰 처마 밑에 모여드는 벌들을 보면서 몇 년 전에 죽음의 문턱에서 로열젤리를 먹고 원기회복을 한 것을 추억하니 벌에게 감사할 줄 모르고 무조건 죽이려고 했던 나의 무지를 탓해본다. 여왕벌을 섬기기 위해 그토록 헌신적으로 로얄젤리를 만들어 여왕벌에게 다 바치고 진액이 소진되어 얼마 살지 못하고 죽어가는 일벌. 만물의 영장인 사람보다 희생정신이 더 많은 일벌의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생각하니 벌과의 전쟁을 종식한 내 마음에 평화가 찾아오는 것이 아닌가./늘 추억의 저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