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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의균

 

 

미국에서 ‘트럼프 대세론’이 탄력을 받을수록 덩달아 주목받는 보고서이자 정책 공약집이 하나 있다.

 

 

미 보수 진영의 핵심인 헤리티지재단을 주축으로 한 80여 싱크탱크, 트럼프 측근과 전직 공화당 대선 후보, 학계·시민사회 인사들이 두루 참여한 ‘프로젝트 2025′가 펴낸 ‘보수의 약속(The Conservative Promise)’이다.

 

그래픽=백형선

 

 

900쪽이 넘는 보고서엔 정권 교체가 이뤄질 경우 내년 1월 20일 취임할 차기 대통령이 임기 첫날인 ‘데이원(Day One)’부터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분야별로 서술됐다. 이를 두고 대통령의 권한을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해석했고 일부 내용은 극단적이란 비판도 있다.

 

 

그럼에도 지난해 4월 출간된 이래 사실상의 ‘트럼프 공약집’으로 통하며 세계 각국이 밑줄을 치며 읽고 있고, 하나하나 뜯어보면 개인의 자유와 자치(self govern)를 숭상하는 미국 보수의 속내도 엿볼 수도 있다. 올해 세계 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정치 이벤트를 하나만 꼽는다면 11월 5일 있을 미국 대선일 것이다.

 

WEEKLY BIZ가 지난 18일 트럼프 측근이자 보고서를 집대성한 폴 댄스(Dans) ‘프로젝트 2025′ 총괄 디렉터를 전화 인터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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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피즘의 제도화’가 밑바탕에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집권한 2017~2021년, ‘트럼프 1기’는 혼란(chaos)으로 요약된다. 대통령이 트위터(소셜미디어 ‘X’의 전신)로 한 줄짜리 설익은 정책을 내놓으면 당국자들이 나서서 이를 뒤집거나 해명·부연에 진땀을 빼는 모습이 4년 내내 반복됐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이른바 ‘매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란 구호만 있었을 뿐 구체적인 어젠다와 이행 계획은 부재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프로젝트 2025′는 다음 보수 정부에선 이런 시행착오를 되풀이해선 안 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트럼피즘의 제도화’를 통해 같은 철학을 가진 사람끼리 똘똘 뭉쳐 8년 전 과오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생각이 밑바탕에 깔렸다는 것이다. 변호사 출신으로 2019~2021년 미 연방인사관리처(OPM)에서 근무한 댄스 디렉터는 “진정한 보수 운동과 미국 부흥을 위해선 정부 개혁이 필수”라고 했다.

 

-트럼프 1기의 교훈은 무엇인가.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이 공직 사회에 있어 불화(discord)와 비생산적인 일이 너무 많았다. 그 자리에 있지 말아야 할 엉뚱한 사람들이 권력을 잡고 있었으니 비도덕적인 일이었다. 선거 때 트럼프를 가장 강렬하게 지지한, 특히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어젠다에 공감했던 시민들이 막상 선거 후엔 정부에서 가장 소외되는 극히 실망스러운 시간이었다.”

 

-트럼프 2기가 현실화되면

최우선 과제는.

 

“미국이 활기를 되찾고 ‘자유의 등불’ 역할을 계속하기 위해 정부 개혁이 필요하다. 미 전역에 이를 지지하는 여론도 상당한 것 같다. 100년 전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테크노크라트(technocrat·기술 관료)가 운영하는 행정 국가를 주창한 이래 관료제가 켜켜이 쌓여 지금은 공무원 99%가 절대 해고당하지 않는 ‘철밥통’이 돼버렸다.

 

이 때문에 보수가 집권하든 진보가 집권하든 국민 목소리에 절대 귀 기울이지 않는다. 워싱턴만 해도 1년에 12만달러(약 1억6000만원) 이상 받아 가는 공무원이 허다하다. 그런데도 5년 근무하면 20일 이상 안식 휴가를 가고, 어떨 땐 한 달에 3번만 출근하는 부처도 있다. 우리가 사례 조사를 해보니 한 달 내내 컴퓨터가 켜지지 않는 부서도 있더라. 미국 정부에서 ‘집 청소’가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고 그 결과 우린 실존적 위협에 직면했다.”

 

일러스트=백형선

 

 

 

”즉시 전력감이 될

보수 인재 키운다”

 

 

1981년 1월 헤리티지재단 주도로 ‘리더십을 위한 지침(Mandate for Leadership)’이란 3000쪽짜리 보고서가 세상에 나왔다. 보수주의 철학을 녹인 정책 제안 2000여 개가 담긴 보고서는 그해 들어선 로널드 레이건 정부의 바이블이 됐고 임기 말엔 정책 집행률이 70~80%에 육박했다. 이른바 ‘레이거노믹스’로 대표되는 보수의 전성기는 이런 바탕 위에서 열렸다.

 

1994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1952년 이후 42년 만에 상·하원을 싹쓸이했을 때도 막후에서 보수의 정책과 어젠다를 끊임없이 고민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예산만 220만달러(약 29억4000만원)가 넘는 ‘프로젝트 2025′에 투신한 이들은 트럼프·헤일리 중 누가 집권하든 이런 보수 전성기의 재림(再臨)을 목표로 하고 있다.

 

 

-재단을 중심으로 차기

 

보수 정부의 공약을 준비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프로젝트 2025′는 공약뿐만 아니라 ‘대통령 행정 아카데미(PAA)’란 걸 만들었다. 학자·사상가 400여 명이 온라인으로 될성부른 떡잎들을 교육하는 것이다. 정부의 기능이 무엇이고 그 안에서 당신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지명직 자리를 찾는 방법과 효과적인 언론 대응법 등 공직에 관한 모든 것을 알려준다.

 

비행기를 조종하는 파일럿이 콕핏(cockpit·조종석)에 들어서고 나서야 버튼 사용법을 익혀야 되겠나. 다음 대통령을 위해 ‘데이원’부터 함께 일할 수 있도록 즉시전력감을 키우는 것이 목표다.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는 자리가 4000명이나 되는데 미리 교육하고 검증하자는 취지다.”

 

-어떤 사람들이

PAA에 배우러 오나.

 

“이제 막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부터 여든을 바라보는 시니어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우리가 교육하는 내용이 고도의 지능을 필요로 하는 일(rocket science)은 아니다. 다만 프로그램을 통해 거미줄 같은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고 집권 후 같은 철학을 가진 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일할 수 있다. 워싱턴에 오는 많은 이는 그저 이력서 한 줄 채울 곳을 찾고 이게 잘되면 그걸 영향력이나 돈으로 승화시키려 한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보다는 가족 같은 가치를 우선순위에 두면서 헌법을 존중하고 보수주의 철학을 가진 사람이 국가를 위해 봉사했으면 좋겠다.”

 

-일부 정책은 극단적이란

비판이 있다. 트럼프 재집권에

대비해 방어 전략을 취하는

‘트럼프 헤징(hedging)’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인데.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사람들의 웃긴 소리에 불과하다. 우리는 그저 민주당이 매번 해온, 정권 인수를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다. 공화당 사람들은 일과를 마치면 집에 가서 가족·사업을 돌보지만 민주당은 끝까지 남아 그들의 생태계 구축에 골몰한다는 얘기가 있다. 바이든 정부가 펼치는 정책에는 찬성하지 않지만, 준비가 잘돼있었기 때문에 집무실에 들어선 첫날부터 대통령이 행정명령에 사인했고 1200명 이상이 정부 곳곳에 배치됐다. 우리는 이걸 따라잡으려고 워싱턴 바깥의 아웃사이더들에게 이제 ‘당신이 국가를 위해 봉사할 차례’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11월 선거에서 승리하고 취임 전까지 주어진 90일 동안 준비하면 이미 늦다.”

 

-트럼프 한 사람만을 위한

프로젝트인가.

 

“그렇지 않다. 물론 보고서 집필에 참여한 인사 상당수가 트럼프 정부 출신이기 때문에 트럼프 2기가 들어서면 우리가 제안한 정책이 더 많이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만을 위해 공약을 만든 것은 아니다. 니키 헤일리, 론 디샌티스(21일 후보 사퇴) 같은 유력 후보들에게도 브리핑할 기회가 있었고 그들도 우리가 만든 공약을 지지하겠다는 긍정적 의사를 내비쳤다.” (케빈 로버츠 헤리티지재단 회장은 21일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바이든 대통령이라도 우리 제안을 받아들이면 매우 환영할 것”이라고 했다)

 

 

”재생에너지 집착이 인플레 원인”

 

미 대선의 승부를 좌지우지하는 건 굵직한 외교·안보 현안이나 거시 경제가 아닌 기름 값처럼 유권자가 매일같이 피부로 체감하는 것들이다. 바이든 대통령 역시 물가 안정에 사력을 다하고 있다. 본인의 공식 X 계정에서 주기적으로 가격 동향을 브리핑하며 “유가, 우유·달걀값, 자동차 렌트 요금이 떨어지고 있다”고 밝힌다.

 

댄스 디렉터는 “비효율적인 재생에너지, 그린 뉴딜에 집착해 에너지 가격이 크게 오른 것이 물가 대란의 원인”이라며 “자원을 적극 개발하고 ‘탄소와의 전쟁’도 중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보고서는 바이든 기후 정책의 전진기지 역할을 한 에너지 부서 일괄 폐지까지 제안했다.

 

그래픽=김의균

 

 

-바이든 경제 정책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

 

“인플레이션의 제1원인은 에너지 비용이다. 잘못된 에너지 정책, 재생에너지와 그린 뉴딜에 대한 집착이 문제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지만 국민들은 에너지를 경제적인 가격에 누리지 못하는 모순적인 상황이다. 물론 환경도 중시해야겠지만 에너지 가격은 삶의 질과 직결된다. 중국은 지금도 열심히 석탄을 태운다. 우리도 ‘그린 인플레이션’을 타파해야 한다. 다시 석유·가스를 시추하는 등 적극적으로 자원을 개발해야 한다. 그래야 한국같이 미국에 에너지 자원을 의존하는 국가들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난방비와 기름 값이 치솟으니 소비재, 부동산 가격도 눈덩이처럼 커지는 것이다.”

 

 

-바이든 정부는

4000억달러의 친환경 세액공제와 보조금이 포함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치적으로 내세운다. 보고서는 IRA 폐기를 주장하고 있는데.

 

 

“이른바 ‘바이든 이니셔티브’라고 하는 많은 것이 본래 목적에서 벗어나 매우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본다. 엄청난 보조금을 뿌려대고 있는데 ‘정실 자본주의(정경 유착 등으로 특정 집단에만 혜택이 쏠리는 불공정 경제 체제)’에 불과하다. 이러니 물가가 치솟는 것 아닌가. 의회가 IRA를 폐지하거나 개정하기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본다. (보조금을 받으려) 외국 기업이 국내에 투자를 많이 한 것은 맞지만 이게 워싱턴의 일부(지역구 정치인)만 수혜를 보는게 아니라 경제 전체가 혜택을 받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그래픽=백형선

 

 

그래픽=백형선

 

 

 

”美 동맹이라도

 

공정한 부담 필요

 

 

트럼프 재선이 실현되면 세계·외교 안보 지형에도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국제법과 기존 제도를 경시하는 ‘미국 우선주의’가 또 대두되는 것 아니냐는 게 국제사회 우려다. 한국도 예외가 아닌데 재집권이 현실화할 경우 윤석열·바이든 정부에서 업그레이드된 한미 간 핵 확장 억제(핵우산)와 한·미·일 협력이 흔들릴 수 있다는 걱정이 나온다.

 

 

이미 트럼프 1기 때 방위비 분담금을 놓고 한미 갈등이 있었는데 양국은 최근 2026년부터 적용되는 제12차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체결을 위한 협상에 조기 착수할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일각에선 트럼프 2기가 들어설 경우 방위비를 더 지불하되 확장 억제를 넘어선 전술핵 배치 또는 자체 핵무장, 오랜 숙원인 한미원자력협정 개정까지 반대급부로 얻어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차기 보수 정부는 동맹이라 해도 더 많은 역할을 요구할 것이란 관측이 많다.

 

 

“미국의 국익을 먼저 생각하는 외교 정책을 펼쳐야 한다. 미국이 지난 수십 년간 발을 담근 전장(戰場)을 보면 현실적인 목표나 전략이 없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러면서 우리와 동맹에 직접적 위협이 되는 중국의 부상, 북한 핵·미사일 문제는 바라만 보고 있었다. 다만 각국이 알아서 스스로의 자원을 충분히 활용해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 우리의 파트너들이 ‘공정한 부담(fair share)’을 해야 미국도 함께 대처할 수 있다. ‘트럼프 2기’에서는 이런 모습을 더 자주 보게 될 것으로 확신한다.”

 

 

-한국은 미국이 큰 무역 적자(2022년 회계연도 기준 약 356억달러)를 보고 있는 국가들 중 하나로 언급됐다.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미국인들은 한국을 매우 높게 평가(great regard)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는 것도 알고 있다. (중국·북한같이) 위험한 국가들을 이웃에 두고도 굉장한 영감을 주는 지역의 엔진이자 민주주의 핵심 파트너다. 미래에도 동맹에 대한 양국의 의존도가 커질 것이고 한국 기업들은 다음 4년간 벌어질 일에 희망을 가져도 좋다. 차기 정부는 아시아 지역에 더 집중할텐데 한국·호주·일본 같은 핵심 동맹들과 협업할 일이 많을 것이다.”

 

 

☞프로젝트 2025

 

보수 정권 집권에 대비한 정책을 개발하는 프로젝트로 헤리티지재단이 주도하고 80여개 싱크탱크, 트럼프 측근, 학계·시민사회 인사들이 참여한다.1.gif

 

폴 댄스(Paul Dans)는 누구...

 

 

Paul Dans of the Heritage Foundation, the conservative think tank behind Project 2025, in April. (Leigh Vogel/The New York Times)

 

 

변호사 출신으로 트럼프 정부 1기 때 연방인사관리처(OPM) 수석보좌관, 주택개발부 선임고문을 지냈다. 1·6 의회 습격 사태 이후에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옹호하고 곁을 지켜온 트럼프의 측근 중 한 명이다.

 

2022년 4월부터 2200만달러가 투입된 헤리티지재단의 ‘프로젝트 2025′의 총괄 디렉터로 차기 보수 정부의 정책 개발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매사추세츠공과대(MIT)에서 도시계획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버지니아대 로스쿨에서 법학 박사 학위(JD)를 받았다.1.gi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