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봉침의 변신 / 최미아
농지기만 하면서 하세월 기다렸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어떻게든 얼굴을 내밀어보려 했지만 뽑히지 않았다. 손님이 오면 불러주려나 싶었지만 허사였다. 한번 태어났으니 본분을 다하고 생을 마쳐야 하는데 내 신세가 애련하다. 꿈은 소박했다. 하룻밤만이라도 주인과 함께 하는 것이었다.
나는 구봉침九鳳枕이다. 네모난 얼굴에 일곱 마리 새끼를 거느린 봉황을 새기고 태어났다. 하얀 옷을 입고 목화와 함께 꿈을 안고 신혼집으로 왔다. 신혼부부 단꿈을 책임지리라 각오했다. 그때만 해도 박복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 줄 몰랐다. 원앙금침에서 운우지정 나누는 주인을 어떻게 대할까 혼자 얼굴도 붉혔다. 헌데 첫날밤도 지키지 못하고 바로 소박맞았다. 함께 온 목화도 마찬가지였다. 이유라도 알면 시원하련만 속수무책 당한 일이니 답답했다. 밤낮도 모르고 계절도 모른 채 어둠 속에서 살았다.
일하고 온 친구들은 나를 부러워했다. 몸에 땀이나 침 묻는 일은 다반사고, 눈물 세례를 받을 때도 있단다. 속살속살 베갯머리송사를 할 때는 한없이 좋다가도 싸울 때 만만한 것도 우리란다. 깨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쉽게 던진다니 상상이 안 된다. 품위 있게 놀고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며 한숨이다. 품위로 말할 것 같으면 나를 따라올 친구가 없긴 하다. 화려한 얼굴은 차치하고라도 갖추갖추 입은 옷부터 친구들은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갖춤새다. 양반 상것 따지는 세상은 아니지만 납작한 몸통에 통옷 하나만 두른 요새 것들 꼴이라니. 상것이 따로 없다.
목화는 십여 년 전 변신 했다. 옆에 묵묵히 있어서 몰랐는데 지금은 귀물이라고 대접을 받았다. 녹의홍상을 벗어던지고 꽃무늬 옷으로 갈아입고 나타났다. 몸피도 날씬해졌다. 그 뒤 가끔씩 손님이 올 때면 나들이를 하고 왔다. 지친 몸으로 피곤하다고 말을 아끼지만 부러울 따름이었다. 그때 나도 울며불며 몸부림쳐서라도 따라 나갔어야 했다. 바깥 구경 한번 못하고 어둠 속에서 죽느니 나가서 산전수전 겪는 게 백배 낫다.
내 마음이 통했을까. 대낮에 문이 열리더니 주인이 나를 찾았다. 생전 처음 있는 일이라 어안이 벙벙했다. 주인은 나를 안고 거실로 나왔다. 내 민낯을 들여다보더니 마음에 들었는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세월은 흘렀지만 귀골로 태어났으니 인물이 어디 가겠는가.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나를 잊지 않았다니 감격스러웠다. 삼십 년 독수공방 설움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나를 주인이 잊으면 안 되지. 내가 누군가. 친정엄마가 해 준 혼수가 아닌가. 주인이 결혼할 때 친정엄마는 연세도 많고 혼수 해 줄 여유도 없었다. 막내딸 혼사에 겨우 목화와 나를 마련해 주었다. 내 얼굴은 수 놓는 조카딸에게 특별히 부탁하여 받아왔다. 구봉침 봉황에게 막내딸 자손 번창과 부귀영화의 염원을 담았으리라. 그런 나를 모른 척하더니 드디어 찾는구나 싶었다.
주인이 거실 바닥에 신문지를 깔았다. 나를 올려놓고 태어날 때 입었던 무명옷을 벗기더니 몸을 이리저리 살폈다. 벗은 몸이 부끄러웠지만 새 옷을 입혀주려나 싶어 마음이 설렜다. 주인이 가위를 들고 왔다. 웬 가위일까?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무작스럽게 내 배를 가르는 게 아닌가. 사랑을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해 사랑의 손길이 어떤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건 아니지. 알몸이라는 부끄러움도 오간 데 없이 꾸역꾸역 뱃속 쌀겨를 토해내느라 정신이 혼미해졌다. 아직까지 버림받지 않았던 게 엄마 뜻을 알기에 그런가 했더니 그게 아니었다니. 엄마를 생각해서라도 내게 이러면 안 되지. 배신, 허탈, 허무함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정신을 놓지 않으려 혼신의 힘을 다했지만 의식이 가물가물해졌다.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걸까. 여기가 어딘가. 몸이 산산이 부서졌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쌍둥이 얼굴 한쪽이 나와 함께 누워 있다. 주인이 모르는 남자와 이야기를 나눈다. 주인이 얼마 전 식당에서 찍었다는 사진 한 장을 보여준다. 사진 속에는 친구 목단牧丹이 있다. 몸통은 없고 얼굴만 납작하게 유리 속에 들어 있는 목단. 나도 똑같이 만들고 싶은 거 같다. 남자는 보관을 잘했다고, 수가 정교하다고 칭찬한다. 주인은 친정엄마 유품이니 잘해달라고 신신당부한다.
나는 이제 주인이 아끼는 애장품이 되었다. 봉황으로 태어나 비록 곤륜산을 날아 보지는 못했지만, 유리 속에 갇혀 있지만, 당당히 주인 거실 벽에 걸려 있다. 주인집 자손 번창과 부귀영화를 빌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