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40년 전 정규 시즌 마지막 날. 다저 스타디움엔 구름관중이 몰렸다. 6회 말 홈팀 다저스의 공격. 더스티 베이커가 타석에 들어섰다. 좌익수 겸 5번 타자. 그가 과연 기록을 깨뜨릴지. 5만여 명의 눈길이 베이커에 쏠렸다.

베이커는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에이스 J.R. 리처드와 맞섰다. 제3구 째. 한가운데로 밋밋한 공이 흘렀다. 훗날 베이커는 볼이 농구공만큼 크게 보였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방망이를 슬쩍 갖다 댔는데도 공은 높게 포물선을 그렸다. 

다저스의 중계 아나운서 빈 스컬리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쉬 이즈 곤(she is gone)!" 공이 훌쩍 사라졌다는 뜻. 스컬리는 홈런을 이렇게 에둘러 표현했다.

베이커는 관중들에게 키스를 뿌려대며 천천히 다이아몬드를 돌았다. 홈에서 그를 맞이한 선수는 팀의 막내 글렌 버크. 다음 타순을 기다리고 있던 그는 오른손을 머리 위로 번쩍 치켜들었다. 손바닥을 편 채. 베이커도 거의 반사적으로 자신의 손을 들어 올렸다. 

두 사람의 손바닥이 마주치는 바로 그 순간, 역사는 이 장면을 일컬어 '하이 파이브(high five)'라고 불렀다. 기쁨의 표시인 손뼉 맞장구, 이른바 '하이 파이브'는 이렇게 세상에 나왔다.

우연일까, 아니면 운명일까. 버크도 이날 메이저리그 데뷔 첫 홈런을 쳤다. 이번엔 베이커가 그를 홈에서 기다렸다. 멋진 '하이 파이브'와 함께. 감독은 타미 라소다. 그 역시 초짜 매니저였다. 감격에 겨운 나머지 경기가 끝난 후 선수들과 일일이 '하이 파이브'를 하며 부둥켜안았다.

그날 베이커의 홈런으로 다저스는 야구역사를 새로 썼다. 한 시즌에 4명의 선수가 홈런을 최소 30개씩 터트린 최초의 구단으로 기록된 것이다. 주역은 베이커를 포함해 스티브 가비, 레지 스미스, 론 세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다저스는 영원한 라이벌 뉴욕 양키스와 월드시리즈에서 맞붙는다. 아깝게 우승은 놓쳤지만 '하이 파이브'는 환희와 격려의 상징으로 지금도 세계인들에 깊숙이 각인돼 있다.

야구는 알려진대로 정신, 곧 멘털의 경기다. 하이 파이브를 더 자주하는 팀이 승률이 높다는 분석도 나와있을 정도로 신체 접촉은 팀워크를 강화하고 성과를 높여준다. 어디 야구뿐이랴. 요즘은 풋볼과 농구, 축구 등 전 스포츠 종목에 걸쳐 하이파이브가 선수들 사이에 유행이다.

심지어 면역력을 높여줘 사망률을 낮춘다는 의학계의 보고서도 발표된 바 있다. 하루에 몇 차례 하이 파이브를 하면 기분이 '업' 돼 암세포의 번식을 막아준다는 것. 임상실험 결과이니 그 효과를 믿어도 괜찮을 듯싶다. 

덴마크에선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 600명을 A와 B 두 그룹으로 나눠 A에게는 매일 하이 파이브를 하도록 했다.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A에 속한 환자들의 수명이 B보다 5년가량 늘었다는 것이다.

의학계 일각에선 악수 대신 하이 파이브로 인사를 대체하자는 캠페인도 일고 있다. 감염 가능성이 그만큼 적다는 이유에서다.

야구에서 비롯됐다지만 하이 파이브를 일상으로 끌어들이면 삶의 질이 업그레이드되는 건 분명할 터. 직장에서 동료를 만나도 하이 파이브, 아내와 남편에게도 하이 파이브, 손님들에게도 하이 파이브. 긍정의 힘이 온몸을 휘감아 활력이 넘쳐나지 않을까.

바야흐로 야구 시즌이다.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는 류현진, 추신수, 김현수 등 한국 선수들에게도 응원을 잊지 말자. 직접 '하이 파이브'는 못할 테니 TV 중계를 보면서 '에어 파이브(air five)'를 날려 보내도 괜찮을 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