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롱 / 조미정

 

발레리나가 춤춘다. 긴 팔을 둥글게 말았다 펴며 발끝으로 사뿐거린다. 한쪽 다리를 던졌다가는 제자리에서 빙글 돌고, 회전하는가 싶으면 풀쩍 뛰어오른다. 몸이 공중으로 붕 떠오른다. 가오리연 같다. 실낱을 달고 펄럭거리다가 허공에 그대로 붙박인다.

무용수가 도약하는 동안 공중에 머물러 있는 듯 보이게 하는 동작을 ‘발롱’이라고 한다. 치켜올린 팔과 앞뒤로 쫙 벌린 다리가 바람과 보폭을 맞춘다. 바닥에 도전장을 던진 후 반대편 하늘로 뛰어오르려 안간힘을 썼을 텐데 어쩌면 저리도 가뿐해 보이는 몸짓일까. 튀튀를 입고 스프링이 튕기듯 팡 뛰어올라 눈처럼 사뿐 내려앉는다.

역전 모퉁이 카페에서 딸아이가 분주하다. 주변 상가들은 불 꺼진 지 오래건만 저 혼자 바(bar) 이쪽저쪽으로 뛰어다닌다. 전공을 살린 직장에서 퇴직한 후 새로운 삶을 스텝 밟느라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슬쩍 이마를 훔친다. 문턱이 닳도록 드나드는 배달 기사의 오토바이가 굉음을 울린다. 뒤질세라 초보 바리스타도 커피 샷을 내린다.

하루의 시작과 끝은 단단하다. 누구보다 일찍 문을 열고 어느 가게보다 늦게 셔터를 내린다. 자칫 지치기 쉬우나 매일 반복한다. 차근차근 기본기부터 다지기 위해서였다. 발끝으로 춤추기는 힘들다. 자정이 훌쩍 넘어 퇴근해서는 화장을 지우지도 못한 채 곯아떨어지기 일쑤였다. 아침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웃으며 출근한다. 손은 물 마를 새 없어 습진이 아물었다가 도졌고, 발톱은 무게를 지탱하느라 뿌리째 뽑혔다가 새로 돋았다. 지켜보는 내 가슴에는 토슈즈의 딱딱한 코가 바닥으로 부딪치는 소리만이 쿵! 하고 떨어졌다.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음 날이면 또다시 토슈즈의 작은 코에 몸을 실었다.

어느 날, 갑자기 손님의 발길이 뚝 끊어졌다. 코로나 팬데믹마저 비껴가기 어려웠나 보다. 휴일까지 반납한 청춘은 해가 바뀌어도 좀처럼 날개 펼 줄 몰랐고, 거리에는 빈 점포들이 하나둘 늘어갔다. 단골손님들마저 호주머니 깊숙이 손을 찔러 넣은 채 총총걸음으로 스쳐 지나갔다. 통유리 밖으로 거리를 내다보던 딸아이의 한숨도 따라서 무거워질 수밖에 없었다.

몸부림칠수록 바닥이 깊다. 안전모 하나에 생명을 담보한 채 하루하루 먹고사는 막노동꾼의 땀방울도,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하다가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던 취업재수생의 발걸음도, 폐지가 산더미처럼 쌓인 수레를 끌던 노인의 굽은 등도 중력을 이기지 못해 비틀거린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다. 바닥이 있기에 언젠가는 딛고 일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한번 추진력을 얻고 나면 저마다의 꼭짓점을 향해 또다시 발뒤꿈치를 들어 올릴 수도 있다. 그래서 바닥은 발롱과 이음동의어이다.

발롱의 마지막 기술은 ‘비우기’쯤 된다. 비워야 새롭게 들어설 수 있다. 갈대는 속을 비운 후에야 거센 바람에 부러지지 않는다. 둥글게 뭉쳤던 민들레의 꽃씨는 뿔뿔이 흩어져서 곳곳에 후손을 퍼뜨린다. 송장개구리는 겨울 오면 심장 박동까지 멈춘 채 알래스카의 송곳 추위를 견딘다. 딸아이도 내심 걱정이 없었을까마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 번뇌와 조바심을 떨쳐낸다. 그렇게 반복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다시 마음이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누구나 발롱을 꿈꾼다. 대부분은 제자리에서 폴짝거리거나 팔다리를 힘껏 뻗기 전에 휘청거리며 넘어지고 만다. 그러고는 얼마 못 가서 춤추기를 그만둔다. 하지만 무슨 일이든 위로 뻗치기만 해서는 안 된다. 숙련된 무용수라 하더라도 구부린 무릎으로 반동을 주어야 더 높이 뛰어오를 수 있다. 착지할 때도 구부려야 바닥의 충격을 흡수해 다치지 않는다. 인생사도 마찬가지 아닐까. 한 걸음 후퇴할 줄 알아야 두 걸음 전진할 기회를 얻는다.

딸아이가 인터넷으로 하계 패럴림픽을 시청하고 있다. 양팔 대신 몸과 머리로 물살을 가르는 접영 선수, 입에 문 라켓으로 강력한 스매싱을 날리는 탁구 선수, 의족으로 도움닫기 하여 제 키보다 높은 바를 넘는 높이뛰기 선수 등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도전을 보며 남 일 같지 않았던 모양이다. 눈시울을 적신다. 학창 시절, 딸아이는 친구들이 삼삼오오 모여 수다 떠는 동안에도 매일 아르바이트했었다. 학비며 용돈이며 부모에게 손 내밀기는커녕 생활비까지 보태었던 지난날을 소환해 보면 넘어지고 좌절했던 숱한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다. 그런데도 벌새처럼 쉬지 않고 다시 두 발로 폴짝거릴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발롱하는 무용수는 근육의 힘을 폭발적으로 이용해 균형을 잡는다. 한사코 끌어당기는 바닥으로 함몰되지 않기 위해서다. 겉으로는 새처럼 가벼워 보인다. 속으로 진물이 흘러도 내색 없이 춤추기 때문 아닐까. 남몰래 흘린 눈물과 땀은 도움닫기가 된다. 밀랍으로 만든 이카로스의 날개여도 상관없다. 하늘을 꿈꾸는 한 이제는 자꾸만 등을 토닥여주고 싶다. 바닥은 힘차게 도움 닫을수록 더 높이, 더 멀리 도약할 것이다.

코로나 시국을 틈타서 딸아이가 시간을 쪼개 쓴다. 소믈리에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네트워크 마케팅 범위도 대폭 넓혔다. 직접 판촉하며 물집 잡히도록 발품도 팔았다. 그러자 무대를 누비는 스텝이 갈수록 가벼워진다. 돌고, 멈추고, 다시 뛰어오르는 동작 또한 갈수록 완곡하게 포물선을 그린다. 속도를 올려 회전해도 뿌리 깊은 나무처럼 흔들리지 않는다. 이대로 가다간 머지않아 발레 기술의 최고봉인 서른두 번의 회전도 가능하겠다며 슬며시 올리는 입꼬리가 예쁘다.

역전 카페는 삶의 무대이다. 매 순간 새로운 공연이 펼쳐진다. 저마다의 인생 열차표를 손에 쥐고 누군가는 떠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돌아온다. 그때마다 기적이 토닥인다. 가끔 흐린 날에는 울부짖는다. 소용돌이치다가 반대편 하늘을 향해 거꾸로 치솟는다. 상승기류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바람. 다른 사람들이 모두 둥지로 숨어들 때 하얀 깃털의 새 한 마리가 카페 문을 활짝 열어젖힌다. 지금 벼랑 끝에서 힘차게 날아오를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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