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 그 뒷맛 / 김상립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말이 있다. 사람 누구나 공짜라면 몹시 좋아한다는 것을 빗댄 말일 터이다. 또 공짜를 좋아하면 머리가 벗겨진다는 우스갯소리도 있고, 공짜라면 신발을 거꾸로 신고 뛴다는 과장된 표현도 있다. 나는 이런 말을 들으면, 무조건적으로 공짜를 좋아하면 되려 뒤끝이 좋지 않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실제로 사람들을 대해보면 공짜를 무척 즐기는 사람도 있고, 무관심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일부러 피하는 사람까지 있다. 개개인의 가치관이랄까 또는 성격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인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하게도 어렸을 때부터 나에게는 공짜가 잘 걸리지 않았다. 아이들끼리 뽑기 내기를 해도 늘 지는 쪽이었고, 소풍 가서 보물 찾기를 해도 제대로 상품이 돌아온 적이 없다. 어른이 되어서도 그러긴 매한가지였다. 무슨 행사에서 가서 행운권 추첨에 참여해도 결과는 꽝이었고, 다른 여러 경품행사에서도 역시 그랬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주위에서 그렇게 열을 내어 사는 복권을, 나는 집도 없는 주제에 쳐다보지도 않았다. 동료끼리 점심 내기하는 짓도, 가위바위보로 당직을 바꾸는 일도 나는 마다하였다.

슬롯머신은 물론 어떤 사행성 오락도 하지 않았고, 노름 같은 것은 더더욱 멀리하고 살았다. 그러다 보니 지인들끼리 재미로 하는 고스톱마저 영 서툴러서 따돌림을 받았다. 좌우간 무슨 일에서건 내기 자체를 싫어했으니 대인관계에서도 약점이 늘어나고, 또 옆에서 보면 재미도 없고 좀 모자라는 사람처럼 보였을 게다. 중년에 들어 시작한 골프만 해도 15년간이나 즐겼지만, 단 한 번도 돈내기한 적이 없으니 아마 무슨 기록에 오를 만 할 게다. 이런 경험이 오랫동안 내 삶을 지배하다 보니 ‘아, 나는 애당초 불로소득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이구나’ 하는 나름의 판단도 생겼고, 실제로 공짜를 가까이할 기회마저 점점 사라져갔다.

내가 만 65세가 되었을 때, 지하철을 공짜로 탈 수 있는 것을 비롯하여 소소하지만 노인으로써 여러 가지 혜택을 받을 수가 있었다. 그런데 당시 지하철이 적자가 심하다는 뉴스를 자주 들었고, 내 건강이나 형편이 그렇게 나쁜 편이 아니었기에 혼자 속으로 ‘그래 내가 70 될 때까지는 스스로 노인임을 미루어 보자’ 고 마음을 먹었다. 그 후 나는 죽 지하철을 공짜로 타지 않았고, 영화관을 제외하고는 전시회나 박물관, 사찰, 공원의 입장료 등, 노인에게 주어지는 여러 가지 활인 혜택을 외면하고 잘 견뎠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나는 만 70세부터 실제로 노인이 된 셈이다. 그 후로 또 1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나는 노인이기에 받는 이런저런 혜택을 썩 즐기지는 않는다.

신 정부가 들어서고부터 노인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정책을 쓴다고 뻔질나게 돈을 나누어 주는 모양인데, 지금껏 내게는 단 한 푼도 거저 준 적이 없다. 내가 돈이 많아서가 아니고 여태 한 번도 동사무소에 가서 무슨 혜택을 받겠다고 신청을 하지 않은 탓 일성 싶다. 앞으로 내가 사는 일이 갈수록 힘들고 어려워지더라도 도움을 받겠다고 동사무소를 찾는 처지는 면했으면 좋겠다고 소원하고 있다. 사실 공짜로 돈을 나누어주는 일이야 누가 해도 할 수 있는 일이겠지만, 돈을 벌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드는 일에 더 많은 예산과 관심을 쏟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도 말로는 일자리 창출을 염불하듯 내세우지만, 실제는 말과 같지 않으니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또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이나 직장을 못 구한 젊은이들에게 얼마간의 생활비를 지급해 주는 일이 당장은 인심을 살지는 몰라도, 자칫 잘못되면 뒤에 올 우리 후손들은 막중한 국가부채에 허리가 휘게 될 것이다. 그래서 국가는 우선적으로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당장 눈앞에 놓인 정치적 유 불리에 따라 혈세를 자기들의 돈으로 착각해서 처리하면 아니 되는 이유가 된다. 또 이런 일에 앞장서는 정치인들을 보면 마치 자기 자신의 재산을 공짜로 나누어주는 것처럼 생색을 내니 듣고 보기에 몹시 거북하다.

유권자에게 베푸는 공짜 선심이 투표와 직결된다고 믿는 잘못된 관습은 우리 정치사에 없어져야 할 큰 착각이요 오점이다. 코로나19로 인한 긴급 생계자금 지급에 대한 얘기가 나온 게 벌써 한 달도 넘은 것 같다. 그동안 날마다 정치권은 어떤 방법으로 주겠다, 얼마를 주겠다, 빨리 주겠다 해가며 중요 뉴스화했다. 이제 국회의원 선거가 끝났으니 또 얼마나 시일을 끌지 나는 모르겠다. 인간이란 동물에게 마지막까지 버리고 싶지 않은 게 자존심이다. 돈을 나누어 줄 때도 좀 조용히 신속하게, 격을 갖추어 받는 사람들의 자존심도 인간적으로 헤아려주면 안 될까. 이렇게 보면 정치란 게 결국 남의 것을 이용하여 어깨에 힘주어가며 공짜 놀음을 하는 허업(虛業)이란 말인가?

나는 어찌 되었던 국가에서 거저 주는 돈은 열심히 일하는 국민들이 낸 세금이니, 견딜 수만 있다면 참고 사는 게 옳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더러는 날 보고 집을 자식에게 넘기든지 적당히 요령을 피우면 매월 얼마간의 돈을 받을 수 있다고 부추기지만, 아예 못 들은 것으로 치부하고 만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날을 살아오며 주변으로부터 여러모로 도움을 받았기에, 그런 빚을 갚기에도 시간이 태부족한 처지에서, 어떤 명목으로든 마음의 빚을 더 이상 질 수야 없지 않겠는가. 또 사실을 말하자면 이렇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겠는가? 설령 지인에게서 밥 한 끼를 얻어먹어도 갚지 않으면 찜찜한 게 사람 마음이다. 공짜는 결코 즐길게 못 된다. 언제나 공짜는 뒷맛이 개운하지 않은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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