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앞에서 / 강돈묵

 

 

전혀 생각지도 않은 일이다. 대학에서 정년퇴직할 때만 해도 마음이 그리 가벼울 수가 없었다. 내 생활에 변화가 일어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퇴임이 아니라 이임이라며 보따리를 쌌던 나다. 강의는 전과 같이 이루어지되 장소만 바뀔 것이고, 여전히 수필문학 속에서 하루하루를 밀어 넣으며 살 것이 분명하였다.

대학 연구실에 있던 서적은 동생 회사에 공간을 얻어 옮기면 그만이다 하루속히 고향으로 이사하여 친구들과 시간을 죽이다가 때가 되면 천국이든 지옥이든 따라나서면 될 일이라 생각했다. 한 번도 지옥에 떨어지면 어쩌나 하고 조바심한 적이 없다. 이생에서의 삶이 잘못되었으면 당연히 벌을 받아야 마땅할 일이고, 혹 염라대왕이 내 삶을 들춰보다가 조금은 싹수가 있네, 하며 극락이든 천당이든 보내 주시면, 슬쩍 ‘제 마누라도 선처해 주시면 안 될까요’ 하고 너스레 피우며 나서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아직도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일곱 해가 넘도록 지루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집만 해결되면 당장 올라갈 수 있으련만, 부동산 시장의 불안은 나의 이사를 허락하지 않았다. 전세라도 내놓고 그것으로 고향에 가서 방 한 칸 얻어 살면 되지, 하지만 딸린 식구가 많다. 홀가분하게 두 늙은이만 가서 산다면야 얼마나 좋을까.

대학의 연구실과는 달리 집에 데리고 있는 책들은 어찌해야 할지 당최 방도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평생 곁에 두고 내 생의 공간을 채웠던 것들을 내칠 일도 못 되었다. 고민 끝에 얻은 결론은, 나보다 더 아껴줄 사람을 찾아보자는 것이었다. 전공 서적은 나와 전공이 같은 후배나 제자에게 보내 준다면 얼마나 환대해 줄 것인가.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겠다 싶어 퇴임을 앞두고 책을 분류해 보았다. 조선 시대 고문헌의 복사본은 대학으로 보내 대학원생들이 요긴하게 활용하도록 따로 모았다. 책이 제법 된다. 옛 책의 분량이 쌓이면서 지난 세월의 기억이 스멀스멀 되살아난다.

이 책들을 구할 때는 참으로 어려웠다. 셋방살이하면서 아이들이 초등학교에서 배움을 시작했다. 매달 반의반을 떼어내고 얇은 봉투를 아내에게 내밀어야 하는 미안함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리 구한 책인데, 지금은 떠나보내야 한다. 그래도 그게 가장 지혜로운 해결책이기에 모교에 근무하는 후배 교수에게 내 뜻을 전했다.

“선배님, 그걸 넣어 둘 곳이 없어요.”

누구누구 문고는 아니어도 ‘감사하다’는 말은 들으려니 했다. 책들이 학문하는 대학에서조차 비치해둘 공간이 없어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아야 할 일인가. 당혹스러웠다. 제 능력을 맘껏 펼쳐 보이지 못하는 자식을 지켜보는 것처럼 안타까웠다. 그렇다고 책들을 폐지로 고물상에 넘길 일은 전혀 아니다. 후배 교수에게 애걸하다시피 하여 대학원생 과제도서실로 보내고 나니, 과년한 딸아이를 시집보낸 기분이다.

저널들을 보낼 곳은 더 막막하다. 전문 서적도 거들떠보지 않는데, 저널이야 누가 탐내겠는가. 이것은 말 그대로 폐지로 내보내는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 선다. 하지만 그게 그리 쉽게 내쳐지지 않는다. 두고 찾아보면 꼭 필요한 곳이 나오겠지. 외출에서 ‘작은 도서관’이란 간판을 보았다. 그곳은 내가 가끔 들렀던 음식점의 삼층에 있었다. 식당에 연락하여 상황을 이야기했다. 주인장은 자기 매형이 하는 도서관이라고 반색하며 연락처를 알려준다. 기다린 보람은 있었구나. 제대로 보낼 곳을 찾았다 싶어 바로 전화를 넣었다.

“저널이 좀 있는데, 귀 도서관에 기증하고 싶은데요.”

식당 사장까지 들먹이며 이야기했지만, 답이 오기까지는 단 몇 초가 걸리지 않았다. 돌아온 답은 아주 짧았다.

“필요 없어요.”

바로 기계음이 뒤를 따랐다. 흐릿하게 책들이 눈에 어른거린다. 중신아비에게 내놓았던 자식이 씁쓸한 전갈에 방구석에 틀어박힌 꼴을 바라보는 심정이다. 자식을 많이 둔 부모의 마음이 이런 것일 거라는 생각을 하며 서재를 둘러본다.

입양하여 애지중지 돌보던 기억이 지워지지 않는다. 돌아보면 책을 모으는 데 유별났던 것 같다. 자취하며 대학 공부를 했던 나는 새 책을 구할 여유가 없어 언제나 헌책방을 뒤지고 다녔다. 뙤약볕이 쏟아지는 여름날에도 책만 구하면 하루가 즐거웠다. 틈만 나면 헌책방을 기웃거리는 것이 버릇처럼 되었다.

하루는 쌀독이 빈 걸 보고 저녁거리를 구하러 나왔다. 그러나 문을 나서는 순간 외출의 목적은 잊고 자유인이 되었다. 당도한 곳은 쌀 가게가 아닌 헌책방이었다. 이곳저곳 뒤적이다가 소중한 책을 발견하면 바로 내 것으로 만들었다. 가슴 설레며 집으로 돌아온 나는 문득 내게서 쌀값이 도망친 것을 깨달았다. 그 밤은 비록 배는 고팠지만, 밤새도록 눈은 즐거웠다.

그러나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제는 모두에게 버림받은 상처만을 끌어안고 있다. 정년퇴임하고 일곱 해가 지나도록 전문 서적만 간신히 모교로 보내졌을 뿐, 나머지는 먼지를 뒤집어쓴 채 퇴색되어 가고 있다. 망연자실하여 서재를 둘러보며 고민에 쌓인다.

사람들이 변하고, 시대도 바뀌었는데 대처하지 못하고 내 안에서만 성을 쌓고 산 죄가 산더미처럼 밀려온다. 모두 전산화하고 종이책을 멀리하는데, 그 변화의 조짐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온 것이 나의 큰 죄다. 부모의 아집으로 낙오가 되어 있는 자식들을 지켜보는 아픔이다. 서재에 서니 꼭두서니 빛 노을이 한창이다. 노을빛마저 흔들리고 내 발걸음이 무거워지기 전에 제 짝을 찾을 수 있도록 서둘러야겠다. 물론 제구실은 할 수 있는 것들이니 언젠가는 임자가 나타나려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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