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을 건너는 우덩 / 김추리

 

 

자갈밭을 겅중겅중 뛰는 풀이 있다. 뛰는 게 그의 특성이라 모래밭을 걸을 때도 성큼성큼 걸음 너비가 멀다. 그는 뿌리로 덤벙덤벙 달음질을 한다 하여, 또는 뿌리를 달고 다닌다 하여 이름이 달뿌리풀이다. 키다리 달뿌리풀은 뿌리가 가늘고 줄기도 가냘프다. 무더기로 바람에 쓰러지기 쉽다. 덤벙거리니 자칫 넘어지기도 할 것이다. 달뿌리풀을 ‘덩굴달’이라고도 하며 그냥 ‘달’이라 부르기도 한다.

우리 아버지는 달뿌리풀을 ‘우덩’이라고 한다. ‘강을 건너는 우덩’이란다. 우덩이라니. 풀이 강을 건너다니? 우덩이라는 풀이름이 낯설어 몇 번이나 되물으며 확인하다가 슬며시 말머리를 돌리고 만다. 딸이 시원스럽게 알아듣지 못하니 아버지도 못내 아쉬울 게 분명하다. 내가 못 알아들어 안타까운들 아버지 당신만큼 답답하랴.

아니, 그렇게도 정정하던 아버지가 언제 그리도 늙으셨는지. 어느새 귀는 어두워져 큰 소리를 쳐야 하는지. 소리가 클수록 웅웅 울린다는 보청기가 얼마나 거추장스러울까. 안타깝고 송구스러운 마음이 가슴을 짓누른다. 나이 칠십이 되도록 모르는 것 있으면 “아버지, 이러저러한 그것이 무엇이지요?” 또는 “아버지, 그 옛날 어쩌고저쩌고 했을 때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 하며 어리광을 부리고 살았는데. ‘이제 어쩌지?’ ‘이제 누구에게 임의롭게 물어보며 세상을 살지?’ 가슴이 싸하도록 깊은 슬픔이 밀려온다. 아버지는 딸의 물음에 도움이 될까 하여 숨찬 소리를 이어 달뿌리풀 얘기를 건네주신다.

“고것이 갱변 자갈밭이서 사는디 가물어 강물이 줄어들잖여? 고게 그걸 어떻게 알고 ‘때는 이때다’ 허고 얼릉 서둘러 강바닥을 기어 건너간당게. 고것이 소한티는 쌀밥이여.”라는 그 말로 풀이 강을 건너간다는 수수께끼는 풀렸다. 그럼 혹시? ‘소가 좋아하는 덩굴’이란 뜻으로 ‘우덩’이라고 이름을 붙였을까? 아버지가 힘들까봐 나 혼자만 속으로 생각해 본다. 물이 밭은 강을 가로질러 줄기를 뻗으며 자갈밭에 뿌리를 내리는 달뿌리풀의 마디진 줄기가 눈앞에 선하다. 섬진강 최상류 강가에 살면서 실제 보아온 눈에 익은 풍경이다.

우리 형제들은 해가 설핏할 무렵이면 아버지가 새벽에 메어둔 소를 데리러 가곤 했다. 달뿌리풀이 무성한 강변에서 배가 불룩하도록 풀을 뜯은 소는 우리 형제들을 먼저 알아보고 “움무~~.” 길게 소리 내어 반겼다. 소는 달뿌리풀을 무척이나 잘 먹었다. 하루 종일 고삐가 닿는 만큼의 반경을 돌며 달뿌리풀을 뭉텅뭉텅 잘라 먹고는 풀섶 그늘에 배를 부리고 앉아 되새김질을 한다. 커다란 눈을 껌벅이면서 가끔 꼬리를 흔들어 파리를 쫓기도 하고 부드러운 소리로 송아지를 어르기도 하면서.

달뿌리풀 이름이 여럿인 것은 지역에 따라 다르게 불렸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처럼 온 국민이, 또는 온 세상 사람이 함께 누릴 수 있는 대중매체가 없던 옛날, 하나의 풀을 부르는 이름이 지역마다 다를 수 있어 하나로 통용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한 이름들이 어찌 달뿌리풀 하나뿐이랴. 이름뿐이 아니다. 비슷한 식물들을 구별하기도 매우 아리송하다. 우리는 흔히 갈대와 억새를 두고 혼동을 한다. 식물들은 비슷비슷하여 이름 가리기 어려운 것들이 꽤 많다.

식물에 관심을 기울인지 퍽 오래되었다. 그렇지만 식물은 각각이면서 하나인 듯 이름 외우기가 쉽지 않다. 평생 산과 들을 누비며 살아온 아버지는 야생식물에 대해 잘 아신다. 식물도감이나 인터넷 검색으로 아리송할 때 아버지께 여쭈면 웬만한 것은 거의 알려주셨다. 게다가 덤으로 얻는 아버지와 딸의 스토리텔링은 더욱 알졌다. 오늘도 제법 오랫동안 이런저런 방법으로 공부를 했지만 막상 줄과 달뿌리풀 구별이 헷갈려 전화를 드렸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덧 구순에 이른 아버지가 전화 소리를 잘 듣지 못하시니 어찌 섧지 않으리.

나는 아버지가 스무 살 때 아버지의 맏딸로 태어났다. 자라면서 늘 아버지가 어려우면서도 든든했다. 옆 마을의 어르신들이 “뉘댁 따님이신가?” 물었을 때 아버지 이름을 대는 게 왠지 뿌듯했다. 아버지를 신뢰하는 만큼 세상 남자들을 마냥 좋은 눈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물가에 사는 달뿌리풀은 이삭이 달린 벼과식물이다. 물을 맑게 해주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환경정화식물이기도 하다. 환경파괴가 심한 요즘 세상에 물을 깨끗하게 해줄 수 있는 꼭 필요한, 참으로 소중한 식물인 셈이다.

여름이 무르익어 가는 소리에 끌려 강줄기를 찾아 나섰다. 기관이나 주민들까지 합세하여 자연환경에 관심을 둔 덕에 크고 작은 강들은 말끔하게 꾸며져 있다. 강가에는 공원이 만들어지고 다방면으로 길을 내어 다양한 식물들이 색색의 꽃을 피우고 있다. 가는 곳마다 꽃길, 꽃동산이다. 강가의 촉촉한 물기로 식물이 우거지니 새들이 모여들고 물에는 물고기도 많은지 새들의 눈초리가 분주하다. 가뭄에 식물들이 타들어간다고 아우성인데 강가의 식물들은 싱싱하다. 긴 세월 마른 땅에서 길들여진 식물들까지 물 찾아 강가로 내려와 버젓이 자리를 잡고 꽃잔치에 흥겹다.

그 가운데서도 물을 좋아하는 버드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강변을 따라 여기저기 달뿌리풀이 한창이다. 초록으로 한껏 멋을 부린 자연 덕에 내 마음도 푸르러진다. 지천으로 널린 초록빛깔이 이렇듯 찬란하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그렇다고 물가에 달뿌리풀만 있는 건 아니다. 키가 큰 그와 비슷한 갈대, 줄, 모새달, 억새와 같은 무리들이 울창하여 풀밭, 아니 풀숲이다. 겨우 반세기 전, 벌겋게 벗겨진 채 신음하던 산과 메마른 들녘이 언제 이렇게 초록 숲이 되었는지.

지금이 그때라면 이 많은 풀들은 퇴비나 땔감으로 베어졌을 테고 드넓은 풀밭은 군데군데 누런 어미 소가 쉼 없이 풀을 뜯을 것이다. 옆에는 그림처럼 송아지가 어미젖을 먹으며 긴 속눈썹을 깜박이면서 한가롭겠지. 마루에 둔 책도 거뜬히 먹어치우던 까만 염소는 배가 똥그래질 때까지 이 많은 풀을 뜯으며 행복하겠지. 그때는 소, 염소, 토끼, 닭, 돼지까지 풀을 먹여 길렀다. 사료라는 말 대신 ‘꼴’이라는 예쁜 우리말을 쓰고 살았지. 아이들도 학교에서 돌아오면 으레 꼴망태를 짊어지고 꼴을 베러 나가곤 했지.

물가에 우거진 달뿌리풀이나 갈대를 볼 때면 먹먹한 감정이 앞선다. 이른봄부터 돋기 시작하는 그들은 언제나 혼자가 아니다. 군락을 지어 산다. 텅 빈 줄기에 2~3미터나 되는 큰 키로 살아야 하는 제 몸의 특성을 고려한 삶의 방식이다. 가늘고 크니 바람이 세차게 불면 쓰러지지 않고 어이 버티랴. 장마에 큰물이 지면 영락없이 쓸려가고 말 것을 왜 모르겠는가. 이 풀들도 지혜로워 그걸 잘 알고 방책을 세운다. 저희들끼리 무리를 지어 가는 뿌리일망정 서로 얽히고설켜 뗏장처럼 단단히 붙잡는다. 가는 줄기가 쓰러질까봐 서로서로 의지하며 산다. 물가에 터를 잡았으니 물이 불었을 때 잠기지 않으려면 덜썩 클 수밖에 없다.

내가 이맘때쯤 일부러 그 광경을 보며 감동의 눈물을 짓는 이유는 그것만이 아니다. 줄기 속이 텅 빈 초록줄기가 짱짱해지는 여름까지 줄기들 사이에서 차마 사그라지지 못하고 서 있는 누렇게 바랜 노구 때문이다. 풀의 어미는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폭풍성장하는 여린 것들에 마음을 놓을 수 없다. 계절이 지나고 죽어서 삭은 몸은 벌써 비바람에 꺾여 나갔지만 어린 줄기를 보호할 만큼의 길이로 남아 새 줄기를 지키는 버팀목이 된 것이다. 그 모습이 어찌 제 자식의 홀로서기를 돕는 인간과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어찌 포유류만이 모성이 있다고 할 것인가.

이 깨달음 전에는 때깔 좋은 초록 무리에 누리끼리한 모습으로 서있는 모습을 ‘죽어서까지 무슨 미련이 남아 저럴까.’ 하고 비웃었다. 지금은 곡해를 한 게 몹시 부끄럽다. 팔십 세 노모가 육십 세 자식에게 ‘길조심하라’는 건 괜한 기우가 아니라 부모의 진정한 사랑인 것을. 주검이 되어서도 새로 돋는 풀이 짱짱하게 설 때까지 곧추 받혀주는 코끝이 시큰해지는 보살핌이다. 죽어서도 아주 죽지 못하는 부모의 사랑이다.

칠십이 되어도 인터넷 검색보다 몇 백 배 아버지의 말씀이 그립고 미더워 나는 다시 전화를 한다. “아버지, 우덩이 맞지요?” “그려. 그려. 소 쌀밥 그것이 강을 건너는 우덩이여.” 아버지의 목소리가 달뿌리풀의 빛바랜 줄기에 실려 숨이 가쁘다.

날이 밝으면 나의 뿌리를 들고 아버지에게로 겅중겅중 달려가야지. 나는 아직도 사그라지기 직전인 아버지의 누런 줄기에 기대고 사는 유월의 여린 우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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