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쟁이 넝쿨 / 이치운

 

 

내 고향은 소리도이다. 섬이 솔개가 날아가는 모습을 닮았다 하여 솔개연鳶자를 써서 ‘연도’라 부르기도 한다. 여수항에서 배를 타고 2시간 30분 가량 가면 남면 끝자락에 보이는 조그만 섬이다. 주민들이라고는 기껏 백여명뿐이다.

소리도 남쪽 끝에 내 안주인이 홀로 산다. 체구는 해풍에 훅 날아갈 듯 가볍고 나이 탓인지 요즘 부엌에서 밥 냄새가 나지 않는다. 기운이 빠져서인지 대문 기둥에 툭 튀어나온 돌쩌귀를 잡아야 엉거주춤 일어설 수 있다. 그나마 오 년 전 무릎관절 수술을 하여 선착장을 오르내리지만 거동하기가 수월찮다. 뒤뜰 채소밭으로 가려고 일어서는 몸을 가린 것은 기껏 헐렁한 바지와 얇은 셔츠뿐이다. 집도 돌담도 안주인도 쌀쌀한 늦가을 날씨처럼 춥다기보다는 외로워 보인다.

한창 힘을 쓰던 시절에 바깥어른과 안주인이 손수 흙집을 짓고 돌담을 쌓았다. 필봉산 기슭의 붉고 찰진 흙을 이고 지고 와서 벽을 올렸다. 갈라지는 틈을 줄이려고 작두로 자른 보리 줄기와 흙과 짓이긴 덩어리로 벽과 천장을 바르고 또 발랐다. 섬 집의 울타리답게 돌담을 둘렀다. 돌담이라야 겨울 큰바람을 막고, 찌는 듯한 여름에는 바닷바람을 잡아 집안으로 밀어 넣어 줄 정도이다. 소리도에서는 돌 울타리가 가족을 안는다. 그래도 방 두 칸, 조그만 부엌, 쪽마루를 갖추어 동네에서 집 같은 집이었다. 그때가 60년 전 이다.

바깥주인이 마지막으로 한 일은 나를 심은 것이다. 처음 이 씨 집 돌담에 뿌리를 내릴 때 무척 힘이 들었다. 짠기가 묻은 바람 때문에 뿌리를 제대로 내리지 못하고 흙 두엄도 얕아 어린것들은 충분히 키울 수 없었다. 바람이 불고 난 다음날이면 바깥어른은 바가지로 지하수를 퍼서 내 몸에 묻어있는 소금기를 씻곤 했다. 육십 년이 지난 지금은 나의 몸체가 사람 새끼손가락만큼 굵어졌다. 이젠 큼직한 호박만 한 돌멩이를 매달 수 있을 만큼 뻗치는 줄기의 힘도 강해졌다.

십오 년 전 유난히 구름은 잿빛이었고 바다 물빛이 흐렸던 4월 봄날이었다. 평생 지게를 졌던 바깥어른은 틈만 나면 동백나무 지게작대기에 불편한 몸을 의지한 채 집 안팎을 두루 살폈다. 어른은 환갑 나이 먹은 돌담과 돌담을 얽은 나를 쓰다듬으며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자네도 이 집 식구이니 내 말 들어주게. 이제 먼 길을 가야 하니 집과 안주인을 부탁함세.” 그리곤 먼 바다를 지켜보았다. 그리고 몇 달 후 소리도 어른 한 분이 줄어들었다.

어른과 약속한 후 할 일이 많아졌다. 갯바람이 심하게 불면 바다를 면한 돌담이 무너질까, 안주인이 텃밭에 심어 놓은 배추, 무, 꽃상추 잎이 마르지 않을까, 지붕을 덮은 양철 지붕이 소금기 바람 먹을까, 집안 쇠붙이 용품들이 사라지지는 않을까. 한숨 자지 못하며 용을 쓰지만 한 자리에 박힌 몸이라 마음만 용쓸 따름이다. 안주인이 대문 외출을 할 때 몸을 잡아주는 끈 역할이나마 해드릴 뿐. 하지만 동네 사람들은 나를 보면 세월이 갈수록 운치를 더하는 담쟁이넝쿨이라고 칭찬해주셨다.

내 나이 어느덧 육십이다. 사람으로 치면 백 살이 넘는다, 그 나잇살이면 온갖 소리를 들어도 마음에 거슬리는 바가 없다.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이지 않아 세상 돌아가는 일도 웬만하면 이해한다. 안주인이 속상해하거나 즐거워하는 일, 동네 대소사에도 참견하고 몰라도 되는 자식들의 집안일도 알게 된다. 최근 1년 동안 두 아들은 바쁘다는 핑계로 오지 않았다. 효도가 뭐 큰일인가, 얼굴 보여주러 오고 아침저녁으로 전화하면 되는 일인데.

갑자기 추워진 날이었다. 옆집 춘옥네와 전화하는 안주인 목소리가 맹맹했다. 감기 걸린 것이 틀림없다. 기름을 절약한다고 보일러를 자주 틀지 않았던 차에 소금기바람에 보일러가 삭아버렸다. 용접으로 땜질을 하지 않으면 보일러를 작동할 수가 없단다. 손기술이 좋은 작은아들이 와서 보일러를 수리해주면 좋을 텐데. 그게 아니면 여수에서 보일러 기사를 불러와야 한다. 출장수리비가 얼마나 비싼가. 차라리 감기약 사먹는 것이 더 낫다는게 안주인의 생각이다.

그래도 힘이 나는 때가 있다. 어쩌다 큰아들의 전화가 오면 목소리에 활기가 넘친다. 느릿한 진양조에서 생기가 확 살아나는 자진모리나 휘몰이로 바뀐다. “하이고, 영진네 아범인가. 큰아들이 여름휴가 때 온다고.” 이때는 돌담 옆집 춘옥이네 집까지 들리도록 목소리 음계가 높아진다.

오늘은 집안 분위가가 예전과 다르다. 큰아들이 온다고 한다. 좋은 소식이 흘러나갈까 봐서 아침부터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앙다물고 아픈 다리를 마다하고 밭으로 갯가로 나가 찬거리 준비한다. 출세했다고 동네 사람들에게 축하도 받고 단풍나물 캐고 쑥 뜯어 돈 만들어 음료수와 막걸리를 한턱냈던 큰아들이다. 걔는 이런 사실들을 알기나 할까.

‘부~웅 부~웅’ 여객선 고동 소리에 부리나케 대문 밖으로 나선다. 오른발에는 거의 퇴색한 회색 고무신을, 왼발은 바깥어른이 신었던 빛바랜 검정색 슬리퍼를 신고 있다. 그래도 오랜만에 웃는 안주인의 얼굴이 소리도 진달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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