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견디는 사람들/ 장미숙

 

아침 일곱 시, 어김없이 그녀가 지나간다. 아직은 어두컴컴한 길을 휘적휘적 걸어가는 한 사람, 그녀의 뒤를 따르는 그림자의 발걸음 소리가 자박자박 들린다. 빈 상자를 밖에 내놓기 위해 나갔다가 한참 그녀를 바라본다. 눈길이 간다는 건 인연의 깊이를 뜻하기도 하지만 두터운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자꾸 마음이 간다. 하현달이 여윈 얼굴로 바람의 옷자락을 붙잡는 이른 아침, 추위가 만만찮은데 쉴 수 없었나 보다.

그녀의 딸이 지금 몇 살인지는 정확히 모른다. 십오 년 전쯤, 맨 처음 보았을 때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로 짐작되었다. 그러니 서른쯤 되었을까. 그녀가 딸의 팔을 붙들고 건널목에 서 있었을 때 인사라도 건넬까 싶어 다가가려다가 멈칫했다. 그리고는 바로 길을 꺾어 골목으로 빠졌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왠지 그래야 할 것만 같았다. 그들은 나를 못 봤고 길을 건넜다.

며칠 전에도 모녀를 길에서 만났다. 그녀는 딸의 팔을 꼭 붙들고 정류장 앞에 서 있었다. 두 사람의 키는 거의 같았지만, 딸의 체격이 훨씬 더 컸다. 딸은 동그란 눈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았고 그녀는 특유의 수더분한 목소리로 어디 갔다 오느냐고 물었다. 나는 호들갑스럽게 대답하며 그들 곁을 지나왔다.

오래전에 한 번 피한 뒤, 몇 번 길에서 갑작스럽게 마주친 적이 있어 다시 피할 필요는 없었다. 내가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음을 그녀가 알려준 덕분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딸 이야기를 들려준 적은 없었다. 그저 옆에 끼고 있는 걸 보며 그녀의 마음을 읽었다. 그런데도 뭔지 모를 무거운 감정을 떨쳐버리기 힘들었다.

현실이 괴롭다고 해서 모두가 절망적이거나 한탄을 쏟아놓는 건 아니다. 오히려 더 밝게 사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감추려 해도 드러나는 표정이 있다. 그녀가 그랬다. 만나면 늘 웃는다. 목소리가 괄괄해도 친근하다. 약간 엉뚱한 소리를 할 때도 있지만 편한 성격이다. 그런데 감정 언어가 깃든 깊은 슬픔이 보인다.

그녀를 알게 된 건, 집 근처 공원에서 하는 운동 프로그램에서였다. 이사한 후 처음으로 공원에 나가 쭈뼛거리고 있을 때 여러 사람 중에 그녀가 있었다. 내게 연락처를 물어왔고 아침 운동에 관한 설명을 곁들였다. 알고 보니 동네 통장을 맡아서 할 만큼 삶에 적극적인 사람이었다.

누구보다도 그녀는 열심히 움직였다. 공원 운동이 쉬는 날도 동네를 걷는다고 했다.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눈이 온 날도 아랑곳없이 가게 앞을 지나는 그녀를 보곤 했다. 그리 절박하게 운동을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을까. 당시 나도 꽤 열심히 움직이는 사람이었지만 그녀의 열정에는 따라가지 못했다. 아프면 안 되는 이유, 약해져서는 안 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게 한 건 딸이었다.

그녀의 사정을 수녀님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가게에서 어려운 이웃에게 나눠줄 빵을 가져가던 수녀님이 그 집 사정을 알고 있었다. 어려운 줄은 알았지만, 생각보다 더 힘든 생활을 하는 듯했다. 성치 못한 자식을 돌보며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녀는 아프면 안 되는 엄마였다. 한겨울 쉬고 싶은 욕망을 떨치고 바람 속을 걷는 그녀의 강한 의지가 보였다.

 

얼마 전 일이다. 가게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순간 시끌벅적 야단법석이 났다. 근처에 있는 장애인 시설에서 선생님들이 열 명 정도 되는 장애인들을 데리고 빵을 사러 온 것이다. 일 년에 두어 번 있는 일이어서 낯설지는 않았다. 그날 온 아이들은 자폐를 앓고 있는 청소년들로 보였다. 조용한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계속 말을 하고 물건을 만지는 아이도 있었다.

그중에 한 아이가 갑자기 물건 하나를 집더니 호주머니에 넣었다. 그러자 남자 선생님이 제지하며 “안돼!”라고 크게 말했다. 하지만 그 아이는 손에서 물건을 놓지 않고 꾹 움켜쥐었다. 체격이 선생님과 맞먹을 만큼 큰 아이였다. 선생님이 몇 번을 제지했으나 아이는 막무가내였다. 급기야는 온몸을 뻗대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당황한 선생님은 아이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쉽지 않아 보였다. 한참 몸 실랑이가 이어졌다. 마치 어른들이 시비가 붙어 싸우는 모습을 방불케 했다. 보고 있는데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겨우 아이를 밖으로 밀쳐내듯 데리고 나갔을 때 선생님이고 아이고 진이 다 빠진 상태였다. 그 아이가 밖에서만 그런지 시설 안에서도 그런지 알 수 없었지만 막막함의 실체를 보는 것처럼 불편했다. 선생님의 훈육이 어떻게 이루어질지, 아이가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지 그들의 하루 길이가 가늠되었다. 어쩔 수 없이 시설에서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아이들이나 집에서 지내는 아이들 모두 장애를 가지고 있으면 부모가 힘들기 마련이다.

초코빵을 유난히 좋아하는 남자아이를 둔 엄마도 그랬다.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한 아이가 엄마랑 함께 빵집에 드나든 지는 꽤 되었는데 아이 체격이 좋았다. 증세가 심하지는 않았지만 한번 고집을 부리면 기계처럼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그런데도 엄마는 무표정했다. 아이의 어떤 반응에도 조용하고 차분하게 대응했다. 얼마나 감정에 시달렸으면 저런 표정일까 싶을 정도로 무념무상의 얼굴이었다. 하지만 고집을 당할 수는 없는 듯 결국은 아이가 원하는 걸 들어주는 게 결말이었다.

장애에 어떤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녀의 딸이 얌전해 보이는 건 다행일까. 다운증후군 증상은 장애로 분류되지 않는다고 한다. 단지 다운증후군이 신체의 여러 장애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아 그로 인한 지적장애나 심장 장애 진단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의 딸 외모는 전형적인 다운증후군이었다. 물론 다른 환자를 가까이서 본 적이 없으니 대중매체를 통해 알고 있는 상식에 기준 한 것이다.

그런데 비단 장애라는 게 의학적으로 규정된 특정한 증상에 한한 것일까. 그건 아니다. 점점 아닌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로 인해 가족이 고통을 받고 있다면 그것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약물이나 알코올중독, 혹은 움직일 수 없는 상태의 환자를 둔 가족이라면 깊은 시름에서 헤어나기가 어렵다. 고치기 힘들고 평생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한정성이 정해졌을 때 절망의 깊이는 평온한 삶을 앗아가 버린다.

누군가를 위해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 그런데 그 희생에 정해진 끝이 없다는 건 잔인하다. 그 잔인함 속에서 하루를 견디는 사람들의 얼굴에 스민 슬픔을 누가 알 것인가. 어쩌면 그래서 더욱 억세게 걷고 움직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의 걷는 모습이 오래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에세이문학 - 에세이 광장 2022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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