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 쪽에서 겨울이 오면 / 배귀선

 

 

 

겨울이 가까이 오면 그리워지는 게 있다. 차가운 막걸리 한 사발 들이켜고 넘기는 물메기탕이 그것인데, 물메기는 겨울 한철 부안상설시장에서 파시를 이룬다.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제철인 이놈은 생긴 것만큼이나 사람들 입에 여러 이름으로 오르내린다. 곰치국을 시작으로 물곰국, 물잠뱅이탕, 미거지국, 물메기탕 등이다. 이는 지역 정서에 기인한 것이기도 하겠지만, 생긴 모습과 맥없는 식감 때문에 붙여진 이름들이지 싶다.

흐물흐물한 몸뚱이는 둘째 치고 체형에 맞지 않는 큰 머리와 사람 닮은 듯한 낯바닥에 뚫린 콧구멍하며 균형감 없는 위아래 턱을 보고 있노라면 웃음이 절로 난다. 생선 중에 못생기기로 둘째가라면 서운하게 생긴 이놈은 어민들에게 재수 없는 생선으로 천대를 받았었다.

그러니까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육칠십 년대만 해도 물메기는 아귀, 전어와 함께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생선이 아니었다. 그러던 게 요즘 아귀는 찜 요리의 대명사가 되었고, 전어는 집 나간 며느리를 돌아오게(?) 하는 귀한 몸이 되었으며, 천덕꾸러기였던 물메기는 겨울철 시원한 술국으로 꾼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당시 외갓집 동네 해창에는 제법 큰 규모의 어판장이 있었다. 새만금방조제가 세워지기 전까지 해창 갯벌에는 백합과 바지락을 비롯 수많은 종류의 조개들이 살았다. 발가락으로 갯벌을 조금만 딸싹여도 튀어나오는 백합을 툭툭 차며 놀던 그때, 물메기나 아귀 따위는 판장 구석에 나뒹굴다가 경매가 끝나기 무섭게 지게에 얹혀 두엄자리로 옮겨지거나 바닷물에 다시 텀벙텀벙 던져졌다. 그런 푸대접이 요즘엔 최고의 계절 별미로 바뀌었으니 그야말로 상전벽해다. 그도 그럴 것이 물메기는 관절염과 당뇨에도 효능이 있는 걸로 알려져 있고, 19세기 백과사전 형식의 책인 『오주연문장전산고』를 보면 양로養老에 좋다고 하였으니, 세월 지긋한 사람들이 어이 찾지 않겠는가.

그날, 펑펑 눈 내리고 바람 불었던가. 내 팔뚝보다 굵은 물메기 한 마리를 만 원에 사들고 지인과 함께 찾아간 곳은 부안상설시장에 있는 장안식당이었다. 그곳은 손님이 먹을 생선을 사가면 양념값만 받고 끓여주는 곳이다. 생것전 초입에 자리한 식당은 밖에서 보기에 좁아 보였다. 미닫이문을 밀치고 들어선 공간은 추측대로 대여섯 평 남짓이었다. 조붓한 공간에 주인인 듯한 여자가 곱송그린 채 모로 누워 있었다. 점심시간은 한참이 지났고, 저녁은 좀더 있어야 하는 시간대라서 쉬고 있는 것 같았다. 손님이 뜸한 시간에 왔으니 반갑게 맞아줄 것이라는 생각은 한순간에 지워졌다. 주인의 피곤해 하는 표정을 밀치고 무작정 안으로 들었다. 하는 수 없다는 듯 주인은 가져온 물메기를 조리대로 가져갔다.

이 대목에서 알려드릴 게 있다.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은 그저 고개만 끄덕이시라. 물메기탕의 중심재료인 물메기는 기호에 따라 꾸덕꾸덕 말린 것에서부터 바싹 말린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누가 뭐라 해도 물메기탕은 수족관에서 유영하는 팔팔한 놈을 가져다 끓여야 제맛이 난다. 말린 놈은 깔끔한 맛에서 멀어지고, 좌판 위 늘어진 물메기를 끓이면 살점이 풀어져 둥둥 떠다니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미끄덩하면서도 껍질의 탄력이 살아 있는 수족관 속 물메기를 선호한다. 이를테면 후루룩 소리를 내며 삼킨 껍질의 한쪽 끝이 목구멍을 넘어 식도쯤에 걸쳐 있고, 반대쪽 끝은 아직 입안에 남아 있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러니까 뱉을 수도 그렇다고 쉽게 삼킬 수도 없는 눈물겨운 지경이 좋은 것이다. 싱싱한 물메기 껍질을 무심코 목구멍에 넘겨 본 사람은 요 사정을 알 것이니, 인생살이가 어찌 이 같지 않겠는가. 놓을 수도 잡을 수도 없는 상황에 한 번쯤 젖어보시려거든 물메기 껍질을 생각 없이 호로록 넘기시라. 그런 다음 차디찬 막걸리 한 사발 단숨에 들이켜 목구멍의 수난을 달래시라.

식당 안에는 우리와 주인만 있었다. 볼륨을 줄여놨는지 구석의 티브이가 가상화폐 투자로 떼돈 번 젊은 부자들 소식을 자막으로만 보여주고, 바랜 벽의 곡진한 시간은 기울어진 채 멈춰 있었다. 어색함도 물릴 겸 막걸리 한 병을 밑반찬과 함께 주문했다. 모든 음식은 나름의 궁합이 있는 법, 내 경험상 물메기에는 단연코 막걸리가 제격이다. 단, 멸균을 한 막걸리보다는 살아 있는 생막걸리가 좋다. 기왕이면 그 출생이 보름 남짓 묵어 맛이 살짝 고부라진 것이면 더 좋다.

어찌되었든, 한 갑자를 목전에 둔 지금의 물메기탕은 겨울을 손꼽아 기다리게 하는 나의 대표 술국이 되었다. 하지만 어렸을 때는 먹기 싫은 음식 중 하나였다. 그때 어머니는 왜 그토록 못생긴 물메기와 아귀를 다라이 가득 가져오는지 알 수 없었다. 버려지거나 썩혀서 거름으로 쓰는 것을 먹는다는 게 어린 마음에 창피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 이유를 알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큰 몸집에 커다란 입을 가진 아귀와 함께 물메기 뱃속은 화수분 같은 곳이었다. 배를 가르는 동안 어머니의 낯꽃은 피어 있었다. 그런 날엔 적쇠에 구워진 감잎만한 조기가 아버지 밥상에 올려졌고, 생기다 만 오징어라도 뱃속에서 나오면 아궁이 속 끝불에 구워 내 입에 물려주시곤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한 냄새가 풍겨온다. 막걸리 한 병 거반 비워질 때쯤 초벌 끓인 물메기탕이 식탁 위에 올려진다. 참기름 한 방울 떨어트렸는지 얇은 고소함이 코 끝에 닿는다. 잡냄새를 아우르는 참기름은 딱 한두 방울만 넣어야 한다. 너무 많이 넣으면 물메기 특유의 맹한 맛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충 썰어 넣은 무와 미나리가 유년의 기억처럼 들썩인다. 국물 한 숟갈 떠먹는다 배고픈 시절,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그 맛이다. 명태만큼은 아니어도 연두부 같은 살점이 순하다. 씹어도 씹히지 않는 느른한 껍질을 삼킨다. 이물감 때문인지, 그리움 저편에서 배고픈 시절을 살아낸 어머니 때문인지, 글썽해진다. 마주 앉은 지인이 그런 내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그렇게 그리움 쪽에서 찾아온 또 한 번의 겨울이 깊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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