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형과 O형 / 송귀연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검사결과 혈액형이 O형이란 것이었다. 나이 오십이 넘도록 A형으로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O형이라니 눈앞이 아찔해졌다. 혹 다른 사람과 바뀌지 않았냐고 물었지만 전혀 그럴 일은 없다고 했다. 병원에 들렀다 혹시나 싶어 해본 검사였다. 예상치 못한 결과에 나는 잠시 뒷골이 당겨왔다. A형으로 살아온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나를 두고 사람들은 전형적인 이조의 여인 같다고 했다. 나는 낯선 자리나 처음 대하는 사람과의 대면이 언제나 부자연스러웠으며 소심하고 세세하여 스스로 쉬 지쳐버리곤 했었다. 매사에 완벽주의자였으며 다른 사람과 다투기를 싫어했다. 아주 작은 흐트러짐도 용서가 되지 않았고 남에게 비위를 맞추다보니 필요이상으로 나를 낮추게 되었다. 그 결과 발생되는 스트레스는 고스란히 나의 몫이었다. 거기에다 ‘척’ 한다는 오해를 자주 받기도 했던 나의 반평생은 영락없는 A형의 삶이었다.

그러나 내안에 꿈틀대는 또 다른 나를 완벽하게 제어하지는 못했다. 가슴 저 밑바닥에서 분출하려는 반A형적인 생각들을 나는 애써 외면했다. 즉흥적인 쇼핑으로 물건을 사고 난 뒤엔 반드시 후회를 했고, 가끔씩 신중하지 못해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으며, 짜증이 나면 아이들에게 버럭 화를 내서 이조의 여인임을 무색하게 했다. 집안의 대소사에 이래라저래라 하는 남편의 말을 무시하고 내 독단으로 일을 처리하거나 외출 나갔다 돌아오면 덜렁대며 꼭 한가지씩은 잊어버리곤 했다. A형의 성격과 전혀 다른 내 모습을 보곤 내 자신조차 당황했었다. 그러다가 “나는 A형이야” 라며 황급히 A형의 굴레에 나를 가두었다.

 

상전벽해(桑田碧海)란 말이 있다.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로 변한다는 의미로 자신도 모르게 세상이 달라진 모습을 비유한 고사 성어다. 며칠 전까지도 A형이었던 내가 O형으로 바뀌었다. 드디어 내안에 웅크리고 있던 또 다른 나의 정체를 알아차린 것이다. 천기를 안 것처럼 두려웠지만 한편으론 가슴이 벅찼다. 오십 평생 억제하고만 살았던 나의 본성을 만나는 순간이었다. 나는 일순간에 순종적이며 소극적인 나를 버리고 반항적이며 적극적인 성격의 나를 택했다. “나는 이제 자유를 찾은 거야” 새처럼 푸른 하늘로 비상하는 기분이었다.

세상사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뜻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는 화엄경의 핵심사상이다. 비슷한 뜻으로 유식사상(唯識思想)에선 ‘일수사견(一水四見)’ 이란 비유를 든다. 같은 물을 보고 네 가지 사견이 나올 수도 있다는 뜻이다. 결국 모든 세상이치가 우리들 마음속에 있다는 의미인 것이다. 지금까지 A형으로 알고 또 A형으로 살아왔듯이 O형으로 바뀌어버린 후의 나는 다시 O형의 기질로 변화하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우리 삶을 이끌어가는 주체는 마음이며 사물을 보는 현상도 마음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두 개의 삶을 살게 되었다. 전자는 A형의 삶을, 후자는 O형의 삶을. 그러나 O형으로 바뀌었다고 해서 A형의 나를 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A형의 단점이었던 것을 O형으로 보완하고 또한 O형의 단점을 A형으로 보완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O형이 되자 비로소 A형을 이해하게 된 것처럼 첨예하게 대립하는 어떤 사회적 갈등들도 그 입장을 서로 바꾸어보면 어떨까? 여자와 남자가, 여당과 야당이, 부자와 가난한 자가, 권력이 있는 자와 없는 자가 바뀌면 서로에 대한 불신들은 신뢰로 전환 될 것이다. 소설 “왕자와 거지”와 “신데렐라”이야기는 서로의 처지가 되면서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는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는 것을 말한다. 입장을 바꿔 상대의 처지가 되어본다면 미움도 원망도 시기하는 마음도 눈처럼 녹지 않을까.

지금까지 A형의 틀을 만들어 나를 가두고선 그것에 맞춰 살아왔던 것 같다. 그것은 혈액형 이전에 가지고 태어난 본성을 철저하게 억압하는 굴레였다. 그러나 이제부턴 A형과 O형의 장점을 융합한 새로운 유형에다 나를 맞춰가고자 한다. 플라시보효과란 병이 있는 환자에게 가짜 약을 진짜로 속여 먹이고 치료에 들어가면 거짓말 같이 병이 낫는 현상을 말한다. 그 반대현상이 노시보효과인데 의학계에서는 이미 이러한 현상을 치료에 응용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고 보면 모든 것은 마음의 병인 것 같다. 사람들은 플라시보효과처럼 저마다 혈액형에다 자신을 맞춰 이미지화 했는지도 모른다. 색안경을 끼면 안경의 색깔과 같은 세상이 보이듯 A, B, O, AB 등의 구분은 마음의 색안경인지도 모른다. 안경을 벗으면 모두가 똑 같은 색깔로 보이는데도 우린 굳이 혈액형이라는 안경을 쓰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혈액형이 달라졌음을 통보받았을 때 이제 만산홍엽(滿山紅葉)으로 물들기 시작한 나의 생에 낯선 초대장을 받은 느낌이었다. 단골의사의 의미심장한 한마디가 귓전을 맴돈다. “ A형과 O형의 장점을 긍정적으로 생각해서 내 것으로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그날 의사는 나에게 정확한 병의 진단보다 값진 인생지침서를 선물한 것이었다. 혈액형이 삶에 미치는 영향은 전혀 없지만 우리 마음이 희노애락(喜怒哀樂)을 만들어 천당과 지옥을 오락가락 하는 것 같다. 혈액형이란 최면을 없애면 우리는 우리의 본성대로 살아가리라. 그래 나는 다시 태어난 것이다. 남들은 받아보지 못한 삶을 덤으로 받았으니 이제부턴 A형과 O형의 장점을 두루 아우르며 살고 싶다.

문득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는 듯 간지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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