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 / 김순남

 

 

친정집 큰 항아리 속에는 엄마의 물건들이 모여 있었다. 자루가 긴 나무 주걱과 큼지막한 국자, 닳아빠진 뚝배기 옆 낡은 도마에 눈길이 머물자 콧잔등이 시큰해진다. 가장자리에는 세월의 찌든 때가 짙게 드리워지고 가운데는 칼자국에 닳아 타원형으로 속살을 드러낸 채, 도마는 그렇게 세월을 되돌리고 있었다. 고향을 떠나 도회지로 이사를 한 지 스무 해가 지났건만 어머니는 그 도마가 무어라고 여태 버리지 않고 항아리에 넣어두고 먼 길을 홀연히 가셨을까.

잠결에 들려오던 도마소리는 우리 가족에겐 힘의 원천이었지 싶다. 열대여섯 식구의 음식을 조리하기 위해 부엌에서는 칼과 도마가 장단을 맞춰 온 집안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무 하나만 있어도 어머니의 도마는 요술을 부렸다. ‘뚜걱뚜걱’ 써는가 싶으면 어느새 ‘다다다다 다다다닥’ 물결을 이루듯 채를 썰어 맑은국을 끓이고 맛깔난 생채를 탄생시키셨다. 막내 삼촌이 좋아하는 된장찌개에 넣을 무를 썰 때는 또각또각, 소리조차 네모를 그리듯 정갈하게 들려왔다.

도마는 몸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부엌 한쪽에 세워져 있다가 시시때때로 부뚜막에서 품을 펼쳤다. 울타리에 달린 애호박이나 텃밭의 감자도 도마를 거쳐 맛있는 반찬으로 거듭났다. 맛깔나게 담근 김장김치도 그 위에서 나뉘어져 밥상 위에 올랐다. 질기고 단단한 식재료도 거부하지 않고 잘게 썰어 부드럽게 만들었으며, 마르거나 젖은 것, 뜨겁거나 차가운 것을 가리지 않고 썰고 다지는 본분을 다했다. 부엌에서 도마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숫돌에 날을 세운 칼날에 상처가 나고 셀 수 없는 칼질에 자신이 닳아 없어져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종부宗婦였다. 하지만 어머니에게 그 자리는 고택의 품위 있는 종갓집 맏며느리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많지 않은 농토를 일구어 시부모를 봉양하고 시동생 시누이들을 출가시키기 위해 손발이 닳도록 밭일을 하셨다. 객지에 나가 공부하는 시동생들 하숙비와 학비를 장만하기 위해 산나물을 뜯고 도라지를 캐러 온 산을 누비셨다. 나보다 한 살 아래인 막내 삼촌은 곧잘 밥투정을 했다. 된장찌개에 들어 있는 무만 계속 먹겠다고 떼를 쓰면 그때마다 할머니보다 어머니가 어르고 달래곤 하셨다. 식구도 많았지만, 손님도 끊이질 않았다. 삼시 세끼 외에도 새참과 야식을 준비하기 위해 부침개를 부치고 때로는 메밀묵을 쒀 대접했다.

어머니는 종종 동네 어른들의 칭찬을 받곤 했다. 어른들은 칭찬 끝에 늘 안쓰럽다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할아버지께서 맏이인 내 이름에 사내 ‘남’자를 넣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내리 여동생이 태어났다. 온 집안 대소사를 지혜롭게 잘 치르고 열심히 일해 농토를 늘려나가도 아들 못 낳는 흠 아닌 흠을 덮을 수는 없었다.

어머니의 도마소리는 늘 평화롭지만은 않았다. 그날 아침에는 유난히 도마소리가 둔탁하고 부뚜막에 그릇을 떨어뜨리는 소리도 예삿날과 달랐다. 설을 쇠고 서울로 온 지 일주일 만에 동생 졸업식에 꼭 참석하라는 어머니의 당부를 받고 내려간 참이었다. 평소에 딸만 보면 집안 이야기며 온 동네 소식을 빠짐없이 전하던 어머니께서 밥을 지으면서도 말이 없으셨다. 어릴 때 경기驚氣를 자주 하던 동생이 초등학교를 무난히 졸업해 대견해서 그러시려니 여겼다.

졸업식을 마치고 꽃다발을 든 동생을 중심으로 부모님과 동생들을 앞세우고 처음으로 사진을 찍었다. 어머니는 일 년에 한 번 운동회 날에나 갈 수 있었던 국밥집으로 딸들을 데리고 가셨다. 앞앞이 국밥 한 그릇씩을 받은 철없는 동생들의 눈길도 밥상을 건너와 허공에서 잠시 맴도는 듯싶었지만 맛있는 국밥 삼매경에 빠졌다.

꽁꽁 언 강기슭을 따라 신작로를 걸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동생들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묵묵히 걸으셨다. 어머니가 한참을 머뭇거리다 입을 떼셨다. “내가 니 아부지한테 시집와 대를 이을 아들을 못 낳았으니 이제 아버지를 위해 내가 집을 나가야 한다. 작은댁이라도 들여서 아들 하나 얻으면 좋겠다고 권해도 막무가내니, 도리가 없구나.” 맏딸에게만은 얘기를 하고 동생들을 당부하고 떠나실 생각에 동생 졸업식을 핑계로 큰딸을 불러 내린 것이다. 어머니 얼굴을 마주 볼 수가 없었다. 하늘이 캄캄해지고 강이 대신 울음을 우는 듯 얼음 깨지는 소리가 정적을 깼다. 어머니께 어떤 말을 해드렸는지 지금 생각해도 그저 까마득하다. 오 리 남짓한 길이 얼마나 아득하던지 진눈깨비 핑계를 대며 어머니와 내가 번갈아 손등으로 얼굴을 훔치던 기억뿐이다. 긴 밤을 뒤척이다 새벽녘에야 잠시 잠이 들었는데 어머니의 도마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려왔다.

어머니 나이 불혹을 넘기고서야 신기루 같던 남동생이 태어났다. 모유가 부족해 쌀가루로 이유식을 끓여 먹여도 남동생은 튼튼하게 잘 자랐다. 부엌에서 흘러나오는 어머니의 도마소리와 함께 온 집안에는 사시사철 봄기운만 감돌았다.

남동생이 장성해 결혼식을 올렸다. 그날 밤 서리서리 긴 옛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가문의 대를 잇도록 여섯이나 되는 딸들을 두고 집을 나가려고 결심하셨을 때 심정을 그제야 들었다.

“엄마, 우리가 딸이면 어때서 그래. 이다음에 아들이 없어도 우리가 부모님 잘 모실 테니 우릴 보고 살면 안 돼?”

딸의 그 말에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생각을 바꾸어 딸들을 의지하고 힘을 얻어 버틸 수 있었다며 눈시울을 붉히셨다. 그러다 보니 아들도 낳아 이렇게 장가도 보냈다며 지난한 세월을 더듬으셨다.

뒤뜰에서 안식을 하고있는 큰 항아리에 도마를 넣어 두신 걸 보면 분꽃같이 고운 며느리에게는 당신의 애환을 전해주고 싶지 않으셨던 모양이다. 보잘것없이 낡은 도마. 수많은 칼자국을 온전히 몸으로 받아낸 흔적들과 가녘에 난 실금 위에 어머니의 짙은 고난의 시간이 겹쳐 진다. 본래 있었던 목리문은 닳아 없어지고 어머니의 삶을 닮은 새로운 결이 새겨져 있다. 왜, 생전에 좀 더 그 아픔을 어루만져 드리지 못했는지…. 어머니 가슴의 상처와 같은 도마를 가만히 쓰다듬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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