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수레바퀴 / 김이랑

 

 

째깍째깍 초침이 시간을 썬다. 얇게 썰린 시간의 조각은 소리와 함께 허공에 부서진다. 일상의 소음이 제거된 새벽, 초침 소리는 더욱 또렷하게 들린다. 일 초 이 초, 생애 주어진 시간이 짧아지는 소리를 의식할수록 자꾸만 초조해진다.

S #1

철거덕 철거덕, 완행열차는 태백준령 비탈진 능선을 구불구불 돌아 힘겹게 달려갔다. 간이역에 잠시 멈춘 열차는 시골 노인 한 명을 내려주고 나서 출발하지 않았다. 원활한 교통 관계로 잠시 기다리겠다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무료하게 차창 밖을 내다보는데, 몇 분 뒤 건너편 노선으로 특급열차가 후다닥 투다닥 지나갔다. 급행에게 시간을 빼앗긴 완행은 문득 서러워졌다. 멍하니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평행레일 너머에서 민들레 노란 미소가 위로하고 있었다.

신성하다는 의무에 30개월을 저당 잡힌 청춘, 분 단위까지 빈틈을 주지 않고 나누어 훈련을 받는 해병대 졸병에게 10분은 꿀 같은 시간이다. 잠시 그늘에 누워 단잠을 잘 수 있고 담배 한 대 물고 연기에 스트레스를 실어 날려 보낼 수 있다. 4박 5일 휴가를 얻은 졸병은 그렇게 자유로운 10분을 차감 당했다.

남에게 시간을 빼앗겼다. 좋게 봐서 순서를 양보했다. 불쌍히 여겨 가상히 여겨 조물주가 그 시간을 보상해주지 않았다. 스스로 보상 받으려 그만큼 숨을 헐떡거리며 뛰어야 했다.

S #2

사업상 계약이 있어 상대를 만나기로 했다. 10분 일찍 나가 약속한 찻집에서 기다렸다. 그는 시간에 맞춰 나타나지 않았다. 조금 늦겠거니 여겼다. 10분, 20분 지나면서 시계를 보는 횟수가 늘어났다. 30분쯤 지나자 문자가 왔다, 지금 가는 중이니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20분이 더 지나서야 그는 나타났다.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그의 손목에는 말로만 듣던 롤렉스 금장이 빛나고 있었다. 그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손목시계를 툭툭 두드렸다. 나는 시간이 돈이라는 말만 던지고 사라졌다. 바쁜 사람이라는 사실은 알지만, 당연하다는 듯한 언행에 울화가 치밀었다. 그쪽 시간은 고급 롤렉스고 내 시간은 길거리 싸구려 시계입니까?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말을 꾹 눌렀다.

약속된 시간을 허비했다. 그렇다고 돈 많은 상대는 내가 허비한 시간을 돈으로 환산해주지 않았다. 1억 원짜리 시계의 시간과 만 원짜리 시계의 시간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롤렉스를 차면 인생이 고급스러울까. 돈이 많으면 마음도 여유로울까. 나는 한동안 통속적 의문의 덫에 걸려 허우적거렸다.

시간은 평행레일 위를 달리는 기차와 같다. 하지만 내가 잠시 멈추어도 내게 주어진 생의 시간이 멈추지는 않는다. 내가 꼼짝 안 하고 가만히 있어도 다른 것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내가 잠시 멈춘 동안 누군가는 나를 따라잡는다. 또 내가 바람만바람만 따라가던 사람은 시야에서 사라진다. 쳐졌다고 느낄 때부터 초조해지고 속도의 수레바퀴를 빨리 돌린다.

이후, 7시 조식/8시 출근/12시 중식, 이렇게 시간을 쪼개며 살 법도 한데, 오히려 시간을 정해 무엇을 도모하지 않는 습관이 생겼다. 몇 시에 어디 도착, 몇 시에 어디에서 저녁을 먹고가 아니라, 점심나절 어디쯤 지나다가 점심을 먹고 땅거미 질 무렵 어느 바닷가를 거닐다가 노을을 보는 것이다. 시간을 단위로 썰거나 토막 내지 않고 과정을 즐기니, 기억이 분절되지 않고 이어졌다.

지나온 시간은 기억으로 남는다. 돌아보면 온전한 기억이 많지 않다. 순간이 사진으로 앨범 갈피에 끼워져 있거나, 토막 난 시간의 일화는 파편화되어 기억의 창고 어딘가에 묻혀있다. 과정이 기억나지 않는 건 시간의 흐름보다 내 속도가 더 빨랐기 때문이다. KTX를 타고 시속 300Km로 달릴 때, 멀리서 쏜살같이 다가와 휙휙 뒤로 사라지는, 희미한 풍경처럼.

지구는 365일 공전하고 24시간 자전한다. 이 움직임을 시청각화한 것이 시계이다. 시간의 속도를 초침이 보여주고 그 소리를 째깍째깍 들려준다. 나는 손목시계를 차지 않는다. 시간을 볼 때마다 시간의 보폭에 맞추는 게 싫어서다. 또한 분초를 다투느라 시간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숨차게 달리면 삶의 주행거리가 늘어난다. 쉼 없이 달렸다고 해서 생의 길이는 늘지 않는다, 시간에 쫓겨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보면 녹초가 되고 그것이 쌓여 병이 된다. 잔고장이 나서 수리해 쓰다가 더 손을 쓸 수 없으면 조기에 폐차해야 한다. 같은 해에 출발했지만 과로로 먼저 세상을 떠나는 친구들을 보면 실제로 그러하다.

오늘도 초침은 쉬지 않고 남은 시간을 얇게 썰어 과거로 퇴적한다. 마지막 일 분 일 초까지 썰면 내 생에 주어진 모든 시간은 소진되고 만다. 1/5,000, 1/4,999, 1/4998… 1/3, 1/2로 토막이 나고, 하루만 남으면 시로 토막 내고, 분으로 썰고, 초 단위만 남으면 카운트다운에 들어갈 것이다.

시간을 약속이나 한 듯 오늘 다누리호 발사 장면을 보았다. 초조한 시간이 끝나고 다누리호는 지상을 박차고 올랐다. 지구의 중력권을 벗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하늘로 치솟는 장면을 몇 번이나 되풀이하며 보았다. 내 생의 마지막 10분을 시청각으로 형상화하면, 남은 10초가 저러할 것이다.

10, 9… 3, 2, 1, 0 시간의 수레바퀴에서 해방된 영혼, 우주로 발사!

 

-계간 시전문지 <THE POSITION> 2022 가을 Vol.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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